섹스는 섹스일 뿐이다 <정사>
섹스는 섹스일 뿐이다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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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09-08 15:53
  • 승인 2009.09.08 15:53
  • 호수 802
  • 5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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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더 큰 ‘쾌락’을 위하여

‘여자는 자녀를 양육하는데 지장이 없을 능력과 체력을 가진 남자이어야 하고, 남자는 여자의 젊고 아름다운 피부, 얼굴,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곧 왕성한 생식능력과 번식능력을 상징하므로 자연 선호할 수밖에 없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 (David M. Buss)

사랑과 섹스. 아마 어떤 논리로도 딱히 정의 할 수 없는 영원한 미스터리다. 인간의 구조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자연 생존의 법칙에 따라 섹스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시 말해 섹스는 사랑과는 별개의 독립된 문제로 감정과 연관이 없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01년 제5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무려 3개부분의 상을 수상한 프랑스 ‘파트리스 셰로’ 감독은 영화〈정사(Intimacy)〉를 통해 인간의 ‘사랑과 섹스’라는 문제를 심도 있게 다뤘다.

영국의 작가 하니프 쿠레이시(Hanif Kureishi)의 단편소설을 각색한〈정사〉는 상영시간 2시간 중 35분이 넘는 시간이 섹스씬으로 채워졌다. 당시만 해도 스크린을 통해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남자의 성기와 오럴섹스 등이 여과 없이 보여진다.

영화는 사십대 중년의 남녀의 시선을 절묘히 교차해나가며 포르노그래피적 시선을 양성(兩性)의 중심에 둔다.

남자 주인공 ‘제이’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나와 지하실 방에 혼자 산다. 설명을 하지도, 이해를 구하려하지도 않는다.

단지 섹스를 하려다 잠옷을 입고 자는 아내를 보고 화장실로 들어가 혼자 자위를 하는데 아들이 들어와 멈추는 장면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연극배우 지망생 ‘클레어’는 매주 수요일 2시가 되면 찾아와 말없이 오로지 섹스행위만 하고 나온다. ‘클레어’가 왜 수요일마다 찾아가고 왜 말없이 섹스만하고 헤어지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감독은 그저 ‘제이’가 거리에서 만난 수다스러운 여자와 관계를 하다가 시끄러운 것이 싫어서 뛰쳐나오는 장면만 보여줄 뿐이다. 감독은 섹스 행위에 의미를 두기 싫어한다.

텅 빈 지하실에서 아무런 장치도 없이 마치 야생동물이 뒤엉켜 뒹구는 것처럼, 그들의 섹스에 의미를 두려하지 않는다.

섹스와 사랑은 별개다. 사랑을 하기 때문에 섹스를 할 수는 있지만 사랑한다고 내 맘대로 섹스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서로가 성욕을 느낄 때 비로소 가능한 일로 사랑의 감정이 없다고 섹스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절정의 오르가슴을 느낄 때나 온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사정을 할 때 사랑 따위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사〉의 ‘파트리스 셰로’ 감독은 거기에 어떤 의미나 이유조차도 걷어내 버린다. 오히려 거추장스런 장애물이란다. 섹스는 곧 충동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떠한 의미도 개입시키지 않는다.

사랑도, 도덕도, 윤리도, 그 어떤 이유도 없다. 섹스는 그냥 섹스일 뿐이다. 다만 뭔가 있다면, 그것을 감독 파트리스 셰로는 사랑이 아닌 친밀(Intimacy)이라 말 한다.

폴과 잔느가 텅 빈 집에서 아무런 걸림 없이 오로지 충동에 의해 이뤄진 섹스관계가 잔느의 익명성이 밝혀지는 순간 단절이 되고 죽음으로 끝을 맺듯이, ‘제이’ 또한 ‘클레어’의 실체를 아는 순간 둘은 헤어지게 된다.

둘의 관계가 점차 무르익을 즈음, 수요일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던 ‘클레어’가 오지 않자 지하실 방에 초조하게 기다리던 ‘제이’가 다시 만나 격렬하게 벌이는 정사씬은 감동의 언어이자 소통이다.

지저분한 지하방이 그들이고, 그 안에서 말없이 벌이는 동물적인 섹스가 그들이고, 매주 수요일 2시면 어김없이 만나는 게 그들이다.

말 하지도 묻지도 않는, 의미도 이유도 없는 그 자체가 그들의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제이’가 ‘클레어’를 사랑하고 집착하게 되면서 그녀에게 갖지 말아야할 관심을 갖게 된다. 택시 운전수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라는 실체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장애물이 된 것이다.

사랑을 비롯한 인간간의 어떠한 관계이든 그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데는 그만의 룰이 있게 마련이다.

룰이 깨지면 관계도 깨진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다른 연적이 끼어도 깨지고, 섹스 할 때 머릿속에 잠시 잠깐 딴 생각이 끼어들어도 발기됐던 거시기도 맥없이 죽는다.

사랑은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하는 것이어야 하고, 관계할 땐 어떠한 잡생각도 금물이다. 오로지 오르가슴 하나에만 골몰하고 집착해야 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폴이나〈정사〉의 제이는 넘지 말아야 할 금기의 선을 넘고 지켜야 할 룰을 지키지 못했고, 룰이 깨진 그들의 관계는 결국 종국을 맞는다. 친밀을 넘어 집착이 사랑의 관심으로 변질되는 순간 관계는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한다.

지하방, 수요일 2시, 그리고 ‘동물적 섹스’와 ‘묻지마 관계’, 이 모두는 ‘클레어’와 관계에 있어서 지켜져야 할 룰이다.

우리는 일생 여러 사람들과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산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관계가 성공적이진 않다. 분명 룰을 지키는데 문제가 있음이다.

특히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런 현상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감추려는 그녀의 비밀은 어떻게든 캐내야 하고, 무조건 덮으려는 그놈의 과거지사는 기를 쓰고 파헤치고 싶은 게 인간 심리다.

그때는 무조건 알아야 되고, 밝혀야되고, 그래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고 어리석었다는 걸 깨달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때다.

영화 <정사>에는 아름다운 색조에 그림 같은 정사씬은 없다. 너저분한 지하방 안에 알몸으로 뒤엉켜 동물적인 섹스만 사실적으로 그려질 뿐, 그들의 몸부림은 애로틱하거나 섹슈얼하지 않다. 사랑의 환타지는 없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주인공 두 남녀배우의 연기다. 제이(마크 라일런스)와 클레어(케리 폭스)의 연기는 실로 대단하다.

실제 정사씬이었다는 자극적인 흥밋거리보다는 미묘하고 섬세한 정서와 감정을 연기하는 두 배우의 연기는 정사씬이 아니더라도 압도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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