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은 이날 밤 미 대사관 옆 광화문 네거리가 깜박이는 촛불 빛으로 가득찼으며, 5만여 명의 시민들은 “미선, 효순을 살려내라” “소파 개정” 등의 구호를 외쳤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특히 “한때 급진적인 대학생들에게 주로 한정됐던 반미감정이 스타 운동선수들과 유명 영화배우, 음악가들을 포함하는 주류 한국인들에게 퍼졌다”고 분석했다. AP통신은 집회 관계자의 말을 따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30만명이 참가하는 집회가 개최됐으며, 미국·영국·독일·러시아 등 해외에서도 항의집회가 열렸다고 소개했다. 통신은 서울 시민들이 촛불을 든 채 전통민요인 ‘아리랑’을 부르며 행진했다고 보도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에 앞서 12월 13일 밤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 “깊은 애도와 유감(deep sadness and regret)의 뜻을 전한다”고 직접 사과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유사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미군 수뇌부로 하여금 한국측과 긴밀히 협조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 관계를 이토록 어렵게 만든 사건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에서 여중생 심미선, 신효순 양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 관해 범대위는 현장검증도 거치지 않은 의정부지청 수사 발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진보단체들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의 개정과 형사재판관할권의 이양을 요구했다. 8월 7일 국방부는 “재판권 이양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상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으며 범민련은 “재판권 이양은 한국민의 최소한의 요구다”라고 맞섰다. 한편 반미친북성향을 보여온 한총련은 미군부대로 몰려 들어가 장갑차 위에서 반미데모를 감행하는가 하면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주한미군 감축인가, 철수인가’라는 제목의 토론 주제를 걸고 주로 젊은층을 대상으로 광범한 의견을 모았다. 2003년 2월 27일 오후 3시 현재 이 토론방에는 4천48명이 들어와 의견을 개진했다. 한총련 홈페이지의 성격상 이곳에 들른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을 극렬하게 비판하거나, 미군의 주둔을 반대하고, 당장 철수를 주장하기도 했다.
전교조의 일부 교사들은 “이 사건을 미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했다”는 평판을 들었다. 전교조 전남지부가 제작한 공동수업자료(교사용)에는 미군에 대해 “친일 민족반역자 세력을 이용해 미군정을 유지하면서 민족모순의 시발점, 발전의 걸림돌이 됐다”고 규정했다. 이 자료는 이어 지난 10년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미군 범죄사건을 컴퓨터로 정리해 학생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전남지부는 교사용 보충자료에서 “아직도 우리 땅에는 외국군대가 버젓이 머물면서 온갖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는 등 미군 철수를 함축하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수업 중 느낀 점을 학생들에게 말하게 해 이를 수행평가에 적용할 것도 권고하고 있다.진보 성향의 정치집단(예를 들면 범민련, 노사모 등)은 한총련과 전교조 등에 의해 청년·학생들에게 불질러진 반미·친북 흐름과 여중생의 처참한 사망을 동정하는 국민의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대통령선거기간 중에 반미 촛불데모를 수시로 벌여 상대적으로 더 보수적인 이회창 후보를 견제하고,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인 노무현 후보를 옹위하고 선전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이것은 젊은층에 의한 선거혁명으로 기록되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낳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미 촛불데모는 국론을 양분시켰다. 그 극명한 대비는 2003년 8월 15일 서울의 도심지에서 일어난 진보와 보수진영의 대규모 상반된 데모에서 드러났다. 양쪽의 논리와 분위기는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진보 진영은 이날 오후 6시40분쯤 서울 종로1가 제일은행 앞 4거리에서 ‘반전평화 통일대행진’을 시작했다. 나창순 통일연대 상임대표는 대회사에서 “우리나라는 전국 곳곳에서 반전 평화 통일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오로지 미국만이 이를 방해하고 있으며, 이라크를 침략하고도 모자라는지 이제는 그 총부리를 우리에게 향하고 있다”면서 미국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세력으로 암시했다. 그는 핵개발에 대한 북한의 책임은 거론하지도 않은 채“우리의 전쟁위기는‘북미간 불가침조약’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상임대표는 “친미 활동을 한 한나라당은 미친 놈들”이라고 폭언을 퍼부으며 “이번 한총련이 미군 스트라이크 부대에서 한 시위행위는 전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최고의‘저비용 고효율 데모’다”라고 추켜세웠다.
이때 집회에 참석한 한총련 학생들은 함성을 질렀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는 “미국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침공의사가 없다면 국제사회에서 당당히 약속해주길 바란다”고 북한을 배려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이어 “남북 7천만이 하나가 되어 전쟁을 막아내고 조국평화통일을 이룩하자”고 북한과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주장을 하기도 했다. 보수 진영은 이에 앞서 이날 오후 5시 50분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건국 55주년 반핵·반김(김정일) 8·15 국민대회’를 열었다. 허문도 전 국토통일원 장관은 궐기사를 통해 “대한민국이 자유와 번영의 문을 민족 앞에 열게 된 것은 공산 좌익을 쓸어낸 다음이었다”며 “보수가 대한민국의 안방에서 쫓겨 난 이유는 기회주의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동맹인 미군 부대로 쳐들어가고 보수 야당 당사를 공격하는 이적단체 한총련을 비호하려 드는 청와대는 어느 나라 정부인가”라면서 현정권에 대해 직격탄을 퍼부었다.
이어 김동길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은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이라고 부른 적도 없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며 “그는 링컨을 존경한다고는 하지만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이사장은 “링컨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했지만, 그는 자기를 반대하는 야당의원과 언론에 소송이나 걸고 있다. 비록 반미·친북으로 대통령이 됐다 하더라도 그런 사상으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라고 극언했다. 대규모 반미 데모가 거세진 국내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상당수의 보수세력이 군사쿠데타와 군사독재를 펴는 동안 사회 변동의 논리를 개발하는데 실패했고, 정권과 결탁하여 안일과 부패로 시종했으며, 해방 직후에 반공의 일선에서 투쟁했던 보수 1세대들이 노쇠한 반면 후계자들을 육성하는 데 소홀한 반면 북한은 대남선전·선동의 초점을 현실에 불만을 품은 젊은 세력을 반미·친북 성향으로 물들이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등 북한에 우호적인 정권을 파트너로 맞았다는 점 등으로 분석된다.
이밖에 반미 데모를 초래한 미국측 요인으로는 소련이 망한 후에 미국이 단독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이른바 오만한 패권주의에 탐닉하여 크고 작은 부작용을 양산했으며, 부시 대통령이 등장한 이래 미북한 관계에서 강경일변도로 나와 한국에 광범하게 퍼져 있는 진보세력-그 가운데 친북세력-을 자극하다가 여중생 피살사건을 초래하여 기름에 불을 붙인 꼴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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