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정국’의 열기는 한 풀 꺾였지만 후폭풍의 영향력은 컸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검증의 타깃이었던 이명박 전시장(MB)의 지지율이 5~10% 정도 낮아졌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검증론’을 들고 나온 박근혜 전대표의 지지율은 소폭 상승 혹은 정체인 것으로 나타나 두 사람 사이의 격차는 10%대에까지 근접하게 됐다.
‘검증 정국’ 동안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MB 진영이지만 그래도 속내는 쓰리기만 하다. 일부 강성론자들과 팬클럽 사이에선 이 참에 ‘박근혜 X파일’로 반격을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캠프의 공식입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난감한 상황이다. 박 전대표에 대한 몇 가지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쉽사리 꺼내들지 못하는 데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독주하던 MB 진영에 비상이 걸렸다.
정인봉 변호사와 김유찬씨의 폭로로 절정을 달렸던 ‘검증정국’의 기세가 수그러들긴 했지만 지지율에서 적지 않은 손해를 봤다.
더욱이 친박진영과 열린우리당에서 후속 X파일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나온 MB의 “70~80년대 빈둥빈둥거리던 사람” 발언은 엎친데 덮친 격이 됐다.
“우리도 자료 있다”
당초 선거법 위반 관련 문제는 MB 진영에서 내부 대응책을 세워놓았던 사안이었다. MB 진영의 한 인사는 이와 관련 “문제가 불거질 경우 깨끗하게 사과하고 넘어가자는 게 대세였다”면서 “그러나 정 변호사의 폭로가 의외로 싱겁게 끝난 게 문제가 됐다. 방심하던 차에 생각지도 못했던 김유찬씨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아직도 1위 자리를 확고하게 고수하고 있는 만큼 MB를 향한 무차별 폭격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친박진영과 열린우리당은 이 전시장의 재산축적 과정을 놓고 치밀하게 자료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들어 청와대가 MB의 부동산 정책과 대운하 구상을 공격하고 나선 것도 정치권에 변화가 시작됐음을 반증하는 대목이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 동안 ‘검증론’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MB 진영에서도 박 전대표의 X파일 공개 등을 통해 맞불을 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한 핵심 인사는 이와 관련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면서 “저 쪽(친박 진영)의 수위에 따라 대응해 나가겠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MB측은 이와 관련된 검증 내용도 확보하고 있으며 여차하면 당 경선준비기구에 제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큰 영애가 부정 관여”
현재 MB 진영이 축적해 놓고 있는 박근혜 X파일은 크게 3가지로 전해진다.
첫 번째는 박 전대표의 과거 행위를 목표물로 삼고 있다. 유신시대 박 전대표가 퍼스트레이디로서 행한 행위와 청와대에서 나온 이후 18년간 은둔 생활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지난 1994년 작고한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가 핵심 축으로 제기될 전망이다. 박 전대표와 최 목사와의 관계는 10·26 이후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김 전부장은 항소이유보충서에서 이렇게 적었다.
“구국여성봉사단은 처음에는 총재 최태민, 명예총재 박근혜 양이었다. 많은 부정을 저질러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돼 왔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로 아무도 문제 삼지 않은 것이다. 이런 사실을 중정에서 조사해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오히려 개악시킨 일이 있다.”
이후로도 박 전대표와 최 목사는 육영재단 분규 등의 과정에서도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박 전대표는 최 목사 사후에도 “그 분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다.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고 그래서 음해도 많이 받았다”고 두둔해 왔다.
한편 정수장학회 문제를 비롯 인혁당 사건 등도 박 전대표의 과거와 관련된 X파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박 전대표 X파일이 크게 다루고 있는 두 번째 내용은 사생활과 관련된 것이다.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정치권에 나돌기 시작한 이 루머는 박 전 대표의 남자 관계에 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때로는 이니셜로 소개되기도 한다. 얼마 전 이수일씨가 정치권에 배포한 괴문서도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MB 진영이 주목하고 있는 세 번째 화두는 박 전대표의 정치자금에 관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3공의 남은 정치자금을 박 전대표가 사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5공 세력의 간접 지원도 회자된다.
구체적으로는 박 전대표가 2002년 당을 탈당해 만들었던 한국미래연합의 창당 및 정리자금 30억원설이 이야기되고 있다.
MB 진영의 딜레마
하지만 박근혜 X파일과 관련, MB측의 딜레마는 적지 않다.
최 목사 건을 포함한 사생활 문제 제기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같은 사안은 검증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여기에 김유찬씨가 MB의 여자문제를 공개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어서 쉽사리 꺼내들기는 어려운 카드다.
정치자금 30억원 문제도 MB측이 제기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재산과 관련해 갖가지 말이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 후보의 자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미 정치권에선 MB와 일가친척의 재산이 수천억원대를 넘어 1조원에 가까울 것이라는 루머와 함께 에리카 김 사건 등이 ‘뜨거운 감자’로 떠 오른 상황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검증’에 회의적이었다 X파일을 꺼내든다면 모양새도 우스워진다는 게 MB측의 고민이다.
이런 점에서 MB측이 공식적으로 ‘박근혜 X파일’을 꺼내들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김유찬씨와 같은 제3자의 폭로나 친박 진영 내부 인사의 ‘양심선언’ 등이 그 방법의 하나로 거론될 정도다.
‘검증론’은 치밀한 덫
당초 친박 진영에서 ‘검증론’을 가장 먼저 들고 나왔던 유승민 의원은 정치권에서 내로라하는 선거 기획통이다. 때문에 이번 검증 정국은 박 전 대표에 대한 역공 가능성까지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친박 진영의 한 핵심 인사는 “아무리 MB측이 우리를 공격하려 해도 마땅한 카드를 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내며 “어차피 거쳐야 하는 ‘검증’ 과정을 MB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시장은 상황 초기 “웬만한 것은 대응하지 않고 웃음으로 대신하겠다”는 여유를 보였다. 하지만 웃음은 점차 가시고 있다. ‘박근혜 X파일’ 공개를 통해 맞불작전을 펼칠지 MB 캠프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박근혜 자신감’ 이유 있다(?)
박근혜 전대표가 최근 들어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박 전대표는 친박 진영 일부에서 제기됐던 9월 경선설에 제동을 걸며 “원칙대로 6월 실시”를 재확인했다.
무엇보다 검증 정국을 거치며 이명박 전시장과의 격차가 줄어들기 시작한 게 그 원인이 됐다. 당초 양측 인사들은 박 전대표가 경선 방식을, 이 전시장측이 경선 시기를 양보하는 방안에 대해 암묵적으로 합의가 된 것으로 내다봤다.
한나라당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박 전대표가 6월 고수를 언급한 것은 경선 방식 또한 그대로 가자는 이야기”라며 “결국 6월 경선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현행 경선 방식은 대의원 20%, 당원 30%, 일반국민 30%, 여론조사 20%로 규정돼 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친박 진영의 대의원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박 전대표는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 전시장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으로 가장 적합한 후보’를 묻는 조사에서 박 전대표는 ▲1/24(박 46.7% 이 39.4%) ▲2/6(박 50.1%, 이 35.2%) ▲2/22(박 47.2% 이 39.1%)에서 우
위를 보였다.
반면 전국 여론조사 결과는 ▲1/12(이 37.1% 박 23.3%) ▲2/10(이 37.0% 박 23.8%) ▲2/24(이 34.3% 박 26.9%) 모두 이 전시장이 앞서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전국 여론조사에서 조금씩 하락하고 있는 이 전시장의 지지율과 소폭 상승중인 박 전대표의 지지율은 현행 방식 고수로 돌아온 중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김승현 okkdol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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