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에로스 만나다 [17] 사랑의 유통기한 <나인하프 위크>
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에로스 만나다 [17] 사랑의 유통기한 <나인하프 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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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07-21 15:50
  • 승인 2009.07.21 15:50
  • 호수 795
  • 5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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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지속되는 9주 반의 이야기

신이 내려준 여체 37-23-36! 세기의 섹스 심볼 마릴린 먼로의 풍만한 가슴 곡선의 비밀이 최근 밝혀졌다.

영국 경매장에 올라 온 마릴린 먼로가 착용했다는 ‘1950년대식 원더브라’는 그 안에 4개의 컵이 있는 복잡형으로 2개의 보통 컵은 숨겨져 있고 그보다 좀더 큰 2개의 컵이 가슴을 담는 구조라 한다. 컵 외에도 곡선을 만들어주는 11자 어깨끈과 홀터넥 스타일의 어깨끈이 ‘먼로 가슴’의 비밀이었다고 한다.

사랑을 먹고 사는 여자에게 변신의 욕망은 무죄다. 만약 그녀가 성형이 판을 치는 오늘을 살았다면 그 신화적 사이즈는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정형의 반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탈피 지향적 본능이다. 락의 영웅 마이클잭슨은 ‘흑인’이란 굴레를 벗기 위해 모든 걸 버렸지만, 그럴수록 더 큰 굴레의 수렁에 빠지게 됐고 끝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인간은 관습의 동물로 환경에 쉽게 순응하고 길들여진다.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건 장점이기도하지만 때론 좋지만은 않는 단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군을 이루며 문명사회를 사는 인간은 영악한 두뇌로 인해 스스로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1986년, 화제 속에 발표된 에드리안 라인 감독의 <나인하프 위크>는 제목이 얘기하듯 사랑의 유통기한이 ‘9주 반’이라는 이야기다. ‘미키 루크’와 ‘킴 베이싱어’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던 이 영화는 당시 모든 연인들의 화두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됐다.

또 영화 전편의 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유행되었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어 입에 오른다.

세월의 흐름을 무색케 할 만큼 세련된 스타일과 영상미는 지금 보아도 손색이 없는 에로스 영화의 바이블, 비주얼 영화의 바이블이라 할만하다.

“내가 그대에게 빠질 거란 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대 안에서 나를 보았거든.”

영화는 화랑을 운영하는 젊고 매력적인 여자 엘리자베스(킴 베이싱어)와 부유한 주식중계인 존(미키 루크)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중국인 생선가게에서 처음 만나 첫눈에 사랑을 느끼게 되는 이들은 존의 의도적인 만남에 엘리자베스는 자신도 모르게 존에 이끌리게 된다.

이 때부터 엘리자베스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존의 심리적 포로가 되어 날마다 존에 의한 애정행각이 이루어진다. 엘리자베스는 존으로부터 성적 감각을 느끼며 만족해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존의 변태적 요구는 정도를 넘어서자 점점 갈등을 느낀다.

어느 날, 삼류 호텔방에서 존은 엘리자베스의 눈을 가리고 애무를 한다. 곧이어 한 창녀가 들어오고 존은 창녀에게 엘리자베스의 몸을 애무하게 한다. 엘리자베스가 이를 거절하자 존은 엘리자베스가 보는 앞에서 창녀와 사랑을 나눈다. 마침내 엘리자베스는 존을 떠나기로 결심을 하게 되는데, 그 것이 9주 반(나인 하프 위크)의 이야기다.

영화사상 가장 에로틱한 영화순위에 언제나 상위에 랭크 하는 작품이다. 비 내리는 밤거리에서의 정사씬과 냉장고 앞에서 벌어지는 야릇한 정사씬, 그리고 뉴욕 지하 하수도에서 건달을 물리치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그런 일련의 에로틱한 비주얼 속에 에드리안 감독은 비장의 무기를 숨겨 영화를 천박하지 않게 했다.

인간은 늘 반복이란 굴레 속에서 산다. 그래서 항상 반복되는 것들에 공포를 느끼며, 벗어날 수 없는 것에 위협받고 산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월스트리트 주식중계인이면서도 공허함을 채울 길이 없어 매번 새디스틱한 섹스행각을 반복하는 존이 그랬다.

공허함은 인간의 욕망이 물질적 소유로도 전부를 채울 수 없는 것과 같다. 여자의 눈을 가리고, 여자에게 남장을 시키고, 물건을 훔치게 하거나 개처럼 기어 다니게 하고, 또 스트립 댄스를 추게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여자의 몸을 애무하게 하고, 여자가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와 관계도 가져보지만, 끝없는 쾌락 지향적 역할놀이로도 반복의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반면 엘리자베스는 낯설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존에 의해 그녀 속의 억압된 욕망이 자극을 받게 되고, 스스로 남자의 방식에 순응하면서 사도-마조히즘적인 관계를 맺는다.

예측불허의 신비로움에 한없이 끌려가던 엘리자베스는, 점차 보이지 않는 사슬이 되어 자신의 삶을 옥죄어 오는 또 다른 반복의 굴레에 절망을 하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존의 유희로부터 돌아서며 눈물을 흘리지만, 존은 자신의 유희가 사랑이었음을 고백한다.

모든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굴레의 수렁에 빠져 절망 할 필요는 없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야 어쩔 도리가 없지만, 분명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처음 만났을 때 마음을 설레게 했던 마누라나, 십년을 넘게 식구로 살아 온 마누라를 같은 여자로 보지마라. 같지만 다르다.

얼마 전에 한국에도 ‘벗는 뉴스’를 서비스 한다는 기사를 봤다. 욕망 채우기다. 영화 속 액션의 변천사도 마찬가지다. 열 걸음 물러나 폼 나게 권총을 빼 들던 시대는 옛날이다. 이젠 기관총을 난사하는 과정을 넘어 톱으로 사람을 썰고, 도끼로 토막을 내는 시대로 변했다. 그렇게 모든 것은 반복 가운데 진화를 시도하고, 끝없는 진화의 끝은 또 다른 반복을 낳는다.

마지막에 떠나가는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며 존은 절망적인 독백을 한다. “50셀 때까지 돌아 올 거야!”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뒷모습은 인파 속에로 사라지고, 존은 다가올 더한 반복의 공포에 극한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최근〈더 레슬러〉를 통해 나이 50이 훌쩍 넘어 또 다른 반복의 삶을 사는 ‘미키 루크’를 볼 수 있었다. 그동안 파란의 험한 인생을 살아 온 그다. 이젠 늙고 망가진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엘리자베스를 떠나보내던 그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문신구 그는 7~`80년대 영화배우로 활동했으며, 90년대 연극〈미란다〉를 연출했다. 당시〈미란다〉는 마광수 교수의〈즐거운 사라〉와 함께 외설시비가 붙어 법정에 섰다. 이후 그는〈콜렉터〉,〈로리타〉등 성과 사회적 관계를 담은 영화와 연극을 제작해 왔다. 현재 연예계 성상납사건을 담은〈성상납리스트〉를 영화화하는 작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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