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인 유재석 씨의 ‘정치적 발언’이 계속 논란이다. 지난해 12월 말 열린 ‘2016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영예의 대상 주인공이 된 유 씨는 “요즘 역사를 통해서 나라가 힘들 때, 나라를 구하는 것은 국민이고 이 나라의 주인 역시 국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고?수상소감을 밝혔다. 유 씨는 이어 “요즘 꽃길 걷는다는 얘길 많이 하는데, 소수의 몇몇 사람이 꽃길을 걷는 게 아니라 내년(2017)에는 정말 대한민국이 꽃길을 걸어서 모든 국민 여러분들이 꽃길을 걷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일부 회원들이 유 씨의 수상소감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 회원은 인터넷상에서 유 씨를 ‘좌파 연예인’으로 묘사했고, 어떤 이들은 “유재석이 광고 출연하는 제품 불매운동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멤버들도 다 좌빨일걸요? 그냥 깨끗하게 폐지하고 피디부터 나오는 출연진들까지 방송 못하게 막아야 한다” “언론을 온통 좌빨이 장악했으니 그도 눈치를 보는 것이다” “대상 소감으로 말한다는 게 고작 이런 거였나? 당신은 김제동이랑 다를 게 없다”는 등의 댓글로 유 씨를 비판했다.
그러자 유 씨 팬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제는 유재석도 좌빨이냐” “소수의 박사모 빼고 나머지 국민들은 다 좌빨로 보이느냐?” “유재석이 저런 말했다고 좌빨이면 김정일한테 편지 쓴 박근혜는 뭔가?”라고 반박했다. 유 씨가 아무 문제될 발언도 하지 않았는데 박사모 회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괜히 트집을 잡는다는 투였다. 또 한 네티즌은 “유재석이 맞는 말 했는데 왜 발끈하지? 유재석씨 대상 축하드리고 수상소감 멋졌습니다”라며 유 씨를 감싸기도 했다. “유느님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라는 협박성 댓글도 있었다.
유재석 씨는 논란을 자초했다. 유 씨는 그저 자신을 아껴준 팬들에게 감사하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말로 수상소감을 갈음했어야 했다. 시사토크쇼도 아니고 정치개그 코너도 아닌 셍방송 프로그램에서 그런 ‘정치적 발언'을 할 필요가 없었다. 유 씨는 평소에도 정치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 연예인이다. 그런 그가 시국이 어지러운 시기에 작심한 듯 그렇게 말했으니 왜 논란이 일지 않겠는가. 본인은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 생각을 달리 하는 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다.
일부 박사모 회원들은 오버했다. 유 씨의 발언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그가 ‘좌파’라는 단서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유 씨가 출연하는 제품 불매운동’ 운운은 유 씨의 발언내용과 하등의 상관이 없다. 비판을 할 때에는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해야 함에도 이들은 선입견만으로 유 씨의 정신세계를 재단했다. 보수의 가치는 통합, 화해 그리고 포용이라고 어느 정치 평론가가 정의했다. 박사모가 진정 보수를 지향하는 집단이라면 설사 유 씨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다 하더라도 통 크게 포용하는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그것이 ‘진짜보수’의 가치다.
일부 유 씨 팬들도 역시 오버했다. 누구나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자유가 있는 만큼 그 발언에 대한 책임도 있다. 책임에는 비판의 수용도 당연히 포함된다. 유 씨 팬들의 입장에서는 유 씨가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상대방의 비판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맞받아쳤다. 유 씨를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신봉하는 행위도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무조건식 두호(斗護)는 그를 오히려 난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유 씨 발언 논란이 우리 사회가 그동안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얼마나 적대시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숙청해야할 적으로 간주한다. 모든 사안을 사생결단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상대는 죽든 말든 나만 살겠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특히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인들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이 되고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인사들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자신만이 나라를 구할 영웅이라고 큰소리친다. 비정상이 정상인양 판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정치인들이 그렇다 하여 우리 보통사람들마저 그들의 장단에 춤을 추어서야 되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촛불시위 때 흥분한 시민이 경찰버스 위에 올라가 경찰에게 폭행을 가하자 대부분의 시민들은 “내려와”를 외쳤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이제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은 일에 매진해야 한다. 공인들은 논란을 일으킬만한 발언들은 자제하자. 비판할 때는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자. 내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필요하다.
논어의 자로편에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말이 나온다. 군자는 화합하고 화목하되 남들에게 똑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는 반면, 소인은 같은 점이 많아도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어떤 학자는 화이부동의 부동(不同)을 남에게 똑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소신 없이 남과 똑같아지려고 하지 않는다, 즉 부화뇌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다고 풀이한다. 이념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지만 화합하고 화목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상대방을 인정해야 한다.
필자에게 후배이긴 하지만 그에게서 배울 점도 많은 기자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적 정체성에서 서로 반대편에 서 있다. 그는 한 술 더 떠 자신의 정체성이 ‘빨갱이’라고 농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이좋게 지냈고, 지금은 서로 다른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별 문제 없이 잘 어울린다. 민감한 정치 이슈에 대해 서로 격렬하게 논박하지만, 우리는 그 치열한 논쟁 속에서 서로 공유할 만한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서로 상대방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는 사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것이라는 말에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정받고 싶으면 상대를 먼저 인정하라는 말도 있다. 이는 내가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상대 역시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호주의 베스트셀러 작가 매슈 켈리는 자신의 저서 '왜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걸까'에서 이렇게 말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의견이 다름에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할 때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바로 친밀함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장성훈 편집국장 seantlc@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