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당, 게임의 법칙이 바뀌고 있다
한국의 정당, 게임의 법칙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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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11-20 09:00
  • 승인 2003.11.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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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이 갈수록 음식애호가들이 즐거워지고 있다. 일식과 중국식의 결합, 한식과 서양식의 결합 등 퓨전 음식의 출현으로 인해 메뉴가 풍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반대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주 민주당에서 분당한 열린우리당이 창당된 것은 서로 입맛이 달라서 같이 섞일 수 없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퓨전 음식처럼 서로 맛이 다른 정당들끼리의 합당이나 연합이 종종 있어 왔다. 90년도의 민정당-공화당-민주당이 합당하여 민자당을 만들었을 때와 97년도에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연합한 경우가 그렇다. 이들 정당들은 추구하는 이념과 정책노선이 매우 다름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합당하거나 연합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맛의 전문화를 추진하는 경향으로 가고 있다. 각자가 당의 색깔을 분명히 한다. 한나라당의 몇 의원들이 열린우리당에 동참한 것도 더 이상 한나라당에서 어울리지 않는 비빔밥으로 남아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합당에서 연합으로, 연합에서 분열로

한국 정당들의 게임의 법칙이 바뀌고 있다. 정당 합당에서 정당연합으로, 장기 연합에서 단기연합으로, 단기 연합에서 분당으로, 분당에서 사안별 정책연합으로 행동규칙이 바뀌고 있다. 90년도의 민자당은 3당이 합당하여 새로운 당으로 태어난 것이었으나 97년에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양당간 연합을 통해 대통령 선거 공조 및 공동정권체제를 구축했다. 정당합당에서 정당연합으로 변화한 것이다. 90년도의 3당합당은 영원하지 못했다. YS는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칭하여 93년 집권한 후 95년도에 공화당의 JP를 용도폐기시켜 축출했다. 97년의 DJP연합도 2001년에 대북정책 갈등을 계기로 깨졌다. 합당과 연합의 해체현상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그후 이러한 연합과 해체의 주기는 더욱 짧아지게 되고 연합의 강도도 약화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예를 들어 2002년도의 대선에서는 노무현의 민주당과 정몽준의 국민통합21이 후보단일화 협력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관계가 정당연합 및 공동정권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단일화 협약 내용에 따라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의 선거유세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노무현 후보측은 정몽준 측에 공동정권으로서의 구체적인 지분을 인정해주려 하지 않았다.

양자간의 이러한 기대감의 차이와 유대감의 허약성이 결국은 선거전날 정몽준측의 지지철회라는 돌발적인 사건의 모습으로 표출되었다. 민주당 구파와 신파의 연합도 사실상 얼마가지 않았다. 2002년 봄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후보가 승리하자 민주당은 일체가 되었지만 월드컵을 거치면서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급락하자 갈라지기 시작했다. 2003년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극단적인 대립을 계속하다가 결국은 지난주에 단기간의 동거를 끝내고 분당했다. 독립적인 교섭단체 구성으로 인해 실질적인 분당이 일어난 지난 두달간의 한국정치를 지배해 온 게임의 규칙은 사안별 정책연합이었다. SK 정치자금 사건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측에서 한나라당을 공격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에 대한 특검법안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공조하여 통과시켰다. 또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상대당의 대표나 추미애와 같은 대표급 인사의 지역에 대해서는 조직책 선정을 보류하여 내년 총선에서 공조할 수 있는 끈을 연결해 놓고 있다. 이렇듯이 지난 15년간 한국 정치의 게임의 규칙은 정당간 합당에서 정당간 연합으로, 정당간 연합이 사안별 정책공조로 변해왔다.

◆분극적 다당제의 출현

그러다가 지난주에는 추미애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 선거를 도운 것을 국민에게 사과한다는 발언을 계기로 열린 우리당 측에서는 추미애 의원 지역구에 강력한 후보를 공천하여 낙선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특검법안 통과문제에 공조한 것을 두고서 민주당의 정범구 의원은 강력 반발하며 탈당을 선언했다. 이러한 현상들은 이제 정당들끼리의 공조가 장기적이지 못하고 단기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정치환경의 변화를 뜻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최근에 한국의 정당체계가 ‘온건 다당제’에서 ‘분극적 다당제’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온건 다당제’하에서는 정당들간의 색깔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합당이나 연합이 쉽게 발생한다. 그러나 정당들간의 이념적인 차이나 정책 노선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분극 다당제’하에서는 자유로운 연합이 불가능하다. 정당간의 연합은 오직 이념적 노선이 가까이 위치한 정당들끼리만 가능하다. 0~10까지 한국 정당들의 이념적 위치에 대한 점수를 매겼을 때 열린우리당은 3.2, 민주당은 4.2, 의원평균은 4.7, 한나라당은 5.2, 자민련은 6.1로 나타난다. 따라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제한적인 정책 공조,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정책공조 등은 가능하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연합은 불가능한 것이다.

◆반권형(半權形) 총선

정당간 분열 현상이 증대된 주원인은 이념적 분화현상이지만 정당간 합당이나 연합의 전제가 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데도 원인이 있다. 임기가 고정된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에 정당간의 연합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상대방 당이 어떻게 보복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내각책임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에서는 사실상 권력을 분점하기 때문에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내각제 하에서 연립정권 약속 불이행은 내각의 붕괴와 국회의 해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 한나라당의 일부 중진 의원들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고 민주당 일각에서도 이에 찬동하는 의견들이 표출된 것은 사실상 내년 총선이 대권은 아니더라도 절반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극렬한 경쟁의 장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작년에 내년 총선후 제1당에 총리 자리 및 조각권을 주겠다고 공약했다. 아마 재신임 투표에 지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겠다는 지난번 제안의 배경에는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대통령의 권한이 반쪽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반쪽 대통령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즉생(死卽生)`의 심정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보존하겠다는 뜻이다. 최병렬 대표는 개헌론을 억눌렀지만 근본적으로 개헌에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개헌안 거론 시기를 전략적으로 총선 후로 하자는 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온전한 대통령직을 유지하길 원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공조해야 한다. 이념적으로 가까운 정당하고만 연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거부한다면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정책 공조를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를 추진하고 싶은 끊임없는 유혹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국회의원 대부분이 관심을 갖는다. 자신들의 역량상 대통령이 될 가능성보다는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며, 장관직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강력한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후진적이라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해보면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는 정치를 ‘우리들의 리그’`로부터 국회안의 파당에 따라 움직이는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시킬 위험성이 높다. 우리들의 ‘살맛나는 세상’ 대신에 ‘당신들의 천국’`으로 각색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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