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에로스 만나다 [12]
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에로스 만나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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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06-17 09:19
  • 승인 2009.06.17 09:19
  • 호수 790
  • 5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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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영화 ‘섹스’는 사랑의 ‘배려’다 항상 새로워져야 한다
『여 “왜? 뭣 땜에 멀쩡한 마누라 놔두고 다른 여자 앞에 물건 꺼내놓고 그 짓 해? 왜 매일같이 일 한다는 핑계로 지 마누라 잠재워 놓고 밤늦도록 컴퓨터 앞에서 다른 여자랑 자위 하냐고??”

남 “무슨 다른 여자? 영화야. 배우! 그냥 영상이잖아.”

여 “그게 무슨 영화야 뽀르노지. 배우는 여자 아니야? 마누라는 뭐야? 나는 뭐냐고? 나는 뭐하는 여자고, 나는 왜 있어? 도대체 나한테 뭐가 불만이야? 내가 안 해 줬어? 내가 언제 안 해 준다고 한 적 있냐고? 하고 싶으면 나하고 하면 돼지. 왜 그러냔 말이야? 이젠 내가 여자로 안보여? 난 이젠 여자도 아니야? 이제 내가 싫어졌어? 나하곤 요새 한 달에 한 번도 안 하잖아!”

남 “아니, 결혼 한지 십년인데 매일 하는 넘이 어딨어? 매일 하면 그게 짐승이지! 많이 했잖아, 옛날엔. 그리고, 안하겠다는 게 아니잖아? 여태 안하고 산 것도 아니고!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에브리 데이! 에브리타임! 하면 돼잖아!! 해달라고 해. 말 해. 말을 해야 알지.”

여 “한 번 해달라고 매달리며 구걸이라도 하라고? 그래야 해주는 거야? 그런 거야?”』

최근에 내가 준비하고 있는 ‘음란한 마누라’라는 시나리오의 한 장면이다.

부부 섹스리스를 내용으로 하는 코메디로 좀은 획기적이랄 수 있는 충돌적 요소는 있지만, 이 문화격변의 시대에 지금쯤은 꼭 한번은 살펴볼 필요가 있는 소재다.

세대를 막론하고 부부를 이루고 사는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이 문제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해간다는 현상에 심각성조차 인식을 못 갖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 주제다.

시나리오의 초고가 완성되고 몇몇 지인에게 모니터로 조언을 구할 때, 한 지인이 참고하라며 나에게 권한 영화가 있다.

2003년에 만들어진 칠레영화 ‘Sexo con amor’다.(영제는 'Sex with love'로 우리나라에서도 ‘섹스 위드 러브’로 소개됨). 보리스 퀘시아가 각본, 감독에 출연까지 일인 삼역을 한 섹스 코메디 영화로 연기파 배우 시그리드 알레그레시아가 공연을 한, 유럽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던 작품이다.

‘음란한 마누라’와 같은 ‘부부 섹스리스’를 다룬 작품으로 줄거리는 이랬다.

초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성교육을 논의하기 위해 학교 모임에 부부동반으로 참석한다. 하지만 모임에서 정작 자신들의 섹스 고민을 털어놓게 되고, 그 고민을 들으면서 각각의 커플들은 자신들의 ‘문제 있는 섹스’를 떠올린다.

사랑하지만 섹스 없이 사는 커플,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아내하고만 할 수는 없어 끝없이 바람피우는 남편, 그리고 외도하는 아내를 너무나 믿고 있는 남편 등 다양한 스타일의 부부들이 때로는 비극적이고, 때로는 희극적인 상황들 속에서 서로가 파트너를 속이고 외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외도를 통해 육체적인 성적 열정이 파트너에게 새로운 사랑의 열정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내용이다.

이런 ‘섹스리스’ 현상은 기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짝을 이루고 사는 인간 문명사회 전반의 일이다.

도심의 병원 간판이 온통 얼굴, 몸통 뜯어 고치고, 아랫도리 문제 해결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는 게 이젠 보편화된 현실이다.

그리고 요즘 동네 남탕에만 들어가도 마치 흉기 같은 모양을 한 거시기를 쉽게 볼 수 있고, 기회만 생기면 삼삼오오 귀를 세우고 갖가지 인테리어와 그 성능을 화두로 삼는 남정네들도 부지기수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빼고, 넣고, 깎고 하는 성형을 넘어 이젠 그 은밀한 곳에까지 첨단의 기술(?)로 기상천외한 모양과 성능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원만한 섹스를 위해서, 사랑하는 파트너의 기쁨을 위해서 노력하고 애쓰는 게 욕먹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해결책이 아니란 게 문제다. 모양 바꾸고, 성능 끌어올리고, 자세 연구하고, 조루 고친다고 문제 해결되지 않는다. 제 아무리 크게 예쁘게 하고, 약 먹고 몇 시간을 기발 난 테크닉으로 구사한다고 해도,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인간의 오감은 쉽게 면역되고 길들여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랑의 유효기간이란 것도 생기는 것이다. 익숙해짐을 경계해야 한다.

익숙해진다는 건 곧 상황에 면역되고 길들여져 오감이 긴장에서 헤이 된다는 뜻이다. 이는 오르가즘을 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선인 ‘흥분의 감정’ 기반을 망치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깜깜한 어두운 곳에도 열 여자 가운데 있는 마누라를 남편은 정확히 맞출 수 있다’는 와이담이 있다. 길거리 늘씬한 아가씨에 눈 돌아가는 남편이 눈앞의 아내에겐 무관심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무식하게 물건 키워봐야 여자에게 고통만 줄 뿐이고, 될만하면 자세 바꾸는 어설픈 테크닉은 파트너에게 짜증만 나게 할 뿐이다. 몇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고 온 몸에 침이나 바르고 시도 때도 없이 귀에다 바람 불어 넣는 게 대수가 아니다.

섹스가 일상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된다. 루시아(시그리드 알레그레시아)부부는 지극히 정상적인 부부로 의사의 진단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커플이다.

하지만 이들 부부생활에서 섹스가 이뤄지지 못하는 건 순전히 일상으로의 성행위를 도모했기 때문이다. 일상은 섹스의 적이다. 매번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

결국 커플은 각기 다른 파트너를 찾아나서 해결책을 모색해 보지만 답을 얻지 못한다. 대안이 아니다. 그리고 보는 내내 배꼽을 쥐게 했던 루시아의 자위도 답이 아니다. 그 모든 건 해결책이 아니라, 또 다른 반복의 연속일 뿐이다.

배려해라. 사랑하는 파트너를 위해 노력해라. ‘메이킹 러브’란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파트너의 행복한 오르가즘을 위해 변신해라.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처음 사람처럼 달라져라. 커플을 이루고 사는 이들에게 섹스리스는 누구나 다 있을 수 있다. 늘 처음 같은 새로움으로 사랑의 유통기한을 늘려라. 섹스리스를 물리치는 방법은 그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를 위해, 유일한 섹스 파트너를 위해, 그녀의 행복한 오르가즘을 위해, 곧 있을 오늘 밤의 향연을 위해 멋진 이벤트를 준비하자. 오늘 처음 본 그녀를 위하여!


문신구 그는 7~`80년대 영화배우로 활동했으며, 90년대 연극 <미란다>를 연출했다. 당시 <미란다>는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와 함께 외설시비가 붙어 법정에 섰다. 이후 그는 <콜렉터>, <로리타> 등 성과 사회적 관계를 담은 영화와 연극을 제작해 왔다. 현재 연예계 성상납사건을 담은 <성상납리스트>를 영화화하는 작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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