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청춘’에서 로맨스 파파로
강신성일(姜申星一·72). 그는 한국영화의 전설이다. 그는 60~70년대 젊은이들의 우상으로‘한국의 제임스 딘’ ‘한국의 알랭 들롱’이라 불린 문화 아이콘이었다.
그는 1년 전부터 대구 영천에 그의 이름을 딴 ‘성일가’(星一家)라는 한옥을 지어 시골에 머물고 있다. 대학교수,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이사장 등을 맡아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는 영원한 청춘로망 강신성일이 꿈꾸는 ‘인생2모작’에 대해 들어본다.
영혼이 자유로운 배우 강신성일이 돌아온다.
그를 카메라 앞에 다시 부른 작품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획 드라마 ‘동방의 빛’. 9월 초로 방영이 예정된 ‘동방의 빛’에서 그는 이토 히로부미로 분한다.
강신성일은 “영화와는 달리 드라마는 시간 싸움이라 대본에 묶인 시간이 계속될 것”이라며 “장편 드라마 출연은 처음인데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은 강신성일에겐 새로운 해이다.
내년 데뷔 50년을 맞게 되는 그는 최근 그의 인터뷰를 담은 책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신성일 지승호 지음·알마) 출간했다.
“내년이면 데뷔 50주년 되는 해다. 그동안 6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함께 했다. 그 시절을 기록하기 위해 책을 출간하게 됐다.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는 맛보기이다. 내년엔 진짜 자서전 출간할 계획이다”
강신성일은 자서전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박물관 건립을 꿈꾸고 있다.
“영천에 있는 집 근처에 영화박물관 짓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영천에 ‘별빛축제’라는 행사가 있는데 그 축제랑 내 이름에서 ‘별 성’(星) 자를 따서 ‘성일영화박물관’이라고 이름을 지을까 생각 중이다”
한국영화 기록 보존에 중요성을 강조한 그의 영화박물관에는 대본, 필름 외에 그가 입었던 의상까지 다양한 자료를 전시할 것이라고 한다.
“곳곳마다 문화에 대한 자각이 이제야 시작되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한국은 한참 늦은 셈이지만 이제라도 시작했으니 문화 콘텐츠를 활성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영화박물관은 내년 기공해 2012년 완공 목표이다.
그는 최고의 스타에서 영화감독, 사업가, 정치인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정착한 곳은 경북 영천. 여기서 그는 한옥을 짓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일벌레
“감옥 다녀온 후에 정말 자유롭고 쾌적하게 살고 싶어 한옥을 지었다. 난 도시가 싫다. 차가 콱 막히고 공기도 답답하고 못 견딘다. 감옥 다녀온 다음부터는 더 그렇다. 그래서 이 작업실도 일부러 강변이 보이는 곳에 마련했다. 영천이 제일이다. 주변 계곡이 다 내 세상이다”
그는 자신의 정성이 담긴 아름답고 단아한 한옥을 건립했다. 거기서 말 세 필에 풍산개로 다섯 마리나 키우며 살고 있다.
서울과 영천, 대구를 오가며 지내는 그는 여전히 바쁘다.
6월 15일 개막을 앞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사장을 맡고 있고, 계명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다운 삶을 산 배우
강신성일의 외모는 여전히 청춘이다. 그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운동과 승마를 통해 관리를 해오고 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매번 자신의 건강의 비결로 ‘애인’을 꼽는다.
“애인이 있으면 젊어진다. 한 일간지 유머란에서 봤는데 70대에 애인이 있으면 ‘신의 은총’을 받은 거라 한다. 난 신의 은총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영원한 애인은 물론 당대 최고의 톱스타 엄앵란이다. 지금의 아내이다.
그녀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에서 영화감독, 정치인까지 모든 것을 누린 신성일의 꿈을 지켜본 평생의 반려자였다.
강신성일은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해 ‘맨발의 청춘', ‘아낌없이 주련다', ‘날개', ‘만추', ‘안개', ‘군번 없는 용사', ‘겨울여자', ‘내시', ‘길소뜸' 등 50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70년대부터는 감독, 제작자로 영화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나단 프리랜서 기자] cjo4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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