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마음에 비수 꽂는 영화 만들고 싶었다”

칸이 놀랐다. 프랑스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칸느영화제에 출품되어 관객들로부터 열광적 호응을 받았다. 살인 누명을 쓴 아들의 구명을 위해 애쓰는 엄마의 모정을 담고 있다. 엄마 역엔 김혜자가, 아들 역엔 원빈이 출연해 열연을 했다. 영화를 연출한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연출변을 들어봤다.
‘마더’를 6글자로 함축하면 “‘엄마가 미쳤다’ 정도가 될 것 같다.”
봉준호(40) 감독은 탄탄한 구성력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반전, 화려한 미장센과 깔끔한 연출력까지 고루 갖춘 영화 ‘마더’를 이렇게 정의했다.
“영화는 광끼에 관한 이야기다. 6글자로 함축하자면 ‘엄마가 미쳤다’, ‘미친년 꽃다발’, ‘미친년 널뛴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정도로 형상화할 수 있다.” 봉 감독은 그래서 춤을 생각했다. “춤이라는 단어는 미친 ‘광’자라 연관이 된다고 생각했다.”
‘마더’는 살인범으로 몰린 아들(원빈)을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 범인을 찾아 나서는 엄마의 사투를 그린다. 극한으로 치닫는 모정이 기존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느 모정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광기이며 히스테리다.
봉 감독은 이 때문에 광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춤으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려고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춤도 이런 의도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오프닝 춤 장면이 없었다. 엔딩 장면에만 춤의 이미지를 넣었다.
“지난해 시나리오를 탈고 할 때 시작도 춤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정반대의 공간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전혀 춤을 출 수 없는 상황이 아닌데 춤을 추고 있는 그런 장면에서 관객들은 초반부터 어이없게 만들어 재미를 주고 싶었다.”
이러한 장면은 봉준호 감독의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조화, 충돌을 추구하는 성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마더’에서 엄마는 어떤 인물인가. 주인공 김혜자(68)의 표현을 빌려 ‘짐승 같다’. “처음 김혜자 선생님과 완성된 필름을 봤을 때 선생님께서 ‘자신의 새끼를 지키려고 으르렁 대는 짐승 같다’고 말씀하셨다”며 “광끼는 추상적이지만 자신의 새끼 때문에 광기로 치달아 맹수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급격히 변하는 것, 참 적절한 표현”이라고 회상했다.
영화에서는 전작 ‘살인의 추억’의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의 초기작인 ‘플란다스의 개’에 등장했던 소품들도 볼 수 있다.
전작 흥행으로 얻게 되는 부담감은?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마음이었다. 즐겁게 의식하면서 살인이 추억을 추억해 보자고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변주하는 느낌이 같으면서도 다르다”며 “의식할수록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자체가 워낙 다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인상적인 소품 ‘후드’도 같은 사람이 썼을 때와 벗었을 때 달라 보이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좋아한다.
‘마더’는 국민배우로 알려진 김혜자를 변신시켜 놓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봉 감독은 “김혜자 선생이 신인처럼 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국민엄마라고 불리는 김혜자를 새롭게 표현하고 싶었고 선생님 자신도 기존과 똑같이 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봉 감독은 “김혜자 선생님은 연기의 신이고 더 올라갈 수 없는 위치”라며 “그럼에도 한 단계 더 올라가려는 것 자체는 어떻게 보면 잔인한 것”이라고 평했다. “영화 한 편하고 두 편째 하는 신인배우가 점프하는 것과 이미 30~40년 하신 분들이 발전 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라고 덧붙였다.
신이 울고 갈 연기에 봉 감독의 영악한 연출력이 찰떡궁합을 이루게 된 시점은 2004년이다. 그해 김혜자를 만나 마지막 30분 분량의 시나리오를 구두로 말했다.
봉 감독은 마더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마다 김혜자 라는 배우를 놓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 만약 김혜자가 출연을 거부할 경우 영화를 접으려고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배우에 대한 무한한 신뢰다.
봉 감독과 김혜자는 5년이라는 비교적 오랜 시간을 준비하면서 호흡을 맞췄다. 작업을 하면서 해석이 달라 애를 먹거나 의견 충돌로 얼굴을 붉히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같은 장면을 18번, 31번씩 촬영했다.
“워낙 찍기 힘든 복잡한 샷 이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 자꾸 찍는다고 오해하셨다.” 봉 감독은 “30번을 찍은 샷은 엔지의 개념이 아니다”며 “재미있는 장면을 찾아보기 위해 이렇게도 저렇게 찍어보는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함께 작업했던 변희봉(68)을 회상하기도 했다. “변 선생님은 플란다스의 개를 촬영할 때 테이크가 많아지는 것을 불안해했다. 계속 재촬영을 하니 변 선생님이 주변사람들에게 오랜만에 영화를 하면서 이게 무슨 망신이냐, 창피해서 말을 못 하겠다고 하소연하셨다”며 옛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나 “그분들이 사실 엔지를 내겠냐”며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또 다른 일화로, 4번 만에 오케이를 외친 장면을 소개하기도 했다. 100%의 확신이 섰기 때문이란다. 아주 단호하게 오케이를 외치며 절대 다시 찍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시 김혜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4번 만에 끝낸 것으로 오해했다고 한다. “더 이상의 촬영은 무의미 하며 계속 촬영을 한다면 성공적인 샷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해 카메라를 치우게 한 것”이라고 소회했다.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이율배반적 욕구의 소유자라는 봉준 감독은 사람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마더’는 그런 봉 감독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아쉽게도 칸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지 못했지만 차기작인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설국열차’는 지금의 아쉬움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천금주 기자 juju79@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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