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들 위해 죽을 수 있다

엄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뭐든지….
극한의 모정은 때로는 괴물에 버금가는 괴력을 뿜는다. 아들을 향한 애정은 집착으로, 광기 어린 모정으로 분출될 수도 있다. 아들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피끓는 모정이 무한대(∞)로 발산된다. 괴물급이다.
스릴러를 통해 구현된 ‘마더’의 모정은 봉준호(40) 감독의 작품들을 집대성하고 있다. 가족을 위해 한강 괴물과 사투한 ‘괴물’, 감정적으로 살인사건을 추적한 ‘살인의 추억’이 동시에 발견된다. 아들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어머니의 사건 해결방식은 ‘살인의 추억’ 이상으로 감정적이다.
‘마더’ 속 엄마(김혜자)가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끔찍하다. 일을 하면서도 아들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어리숙하고 바보 같은 아들 ‘도준’(원빈)은 아직까지도 품 안의 자식이다. 모자란 아들이기에 더욱 각별한 모정이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여고생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보란 듯 옥상에 시체를 걸어놓고 달아났다. 누가 어떻게 왜 죽였는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사건은 그러나 손쉽게 종결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도준의 물건을 근거로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몰고간다.
도준은 사건 당일 그 현장에 있었다. 만취 상태로 여고생을 쫓아가며 치근댔다는 사실까지도 진실이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도통 기억하지 못한다. 남의 죄를 대신 덮어쓸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도준이다. 남들은 그를 바보라 업신여기지만, “바보”란 말만 나오면 도준은 자동반사적으로 흥분한다. 진짜 바보라는 증거다.
‘살인의 추억’을 능가하는 시골 경찰의 비과학적 수사가 영화 ‘마더’를 가능케 한다. 살인사건 수사의 관례와도 같은 과정조차 무시해버린다. 주변인물 조사, 원한관계 파악 같은 상식적인 단계들을 생략한다. 사소한 현장증거만 주워담아 도준을 범인으로 점찍은 뒤 수사 종결이란다.
그러나 어머니는 알고 있다. 아들은 결코 살인사건의 범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리숙하고 바보 같다는 이유로 살인범의 누명을 썼다고 울부짖는다. “내 아들은 죽이지 않았어요. 뭔가 잘못된 거예요!”라는 예고편의 대사가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경찰이 하지 않는다면, 변호사도 돕지 못한다면, 내가 직접 범인을 찾겠노라 동분서주한다. 동네 꼬마와 청년들, 피해자의 친구들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피해 여고생의 가정 환경, 남자 관계 등은 얽힐대로 얽혀 있었다. 사회적 파장을 몰고올 휴대폰 사진도 존재했다.
아들의 무고를 증명하고자 엄마는 빗 속에서 전쟁한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용의자들을 추적해 나간다. 도준 역시 교도소 안에서 관자놀이를 눌러가며 기억을 더듬는다. 스치며 지나가는 모든 인물들이 사건의 관련자들이었다. 이렇게 영화는 반전 같은 결말로 마무리된다.
영화를 이끄는 김혜자(68)의 연기력은 관객을 압도하기 충분하다. TV드라마에서 숱하게 김혜자의 엄마 연기를 봐 온 관객이라도 놀랄 준비를 하고 가야 한다. 반면 저능아 역의 원빈(32)은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어렵고도 쉬운 캐릭터가 바로 바보다.
살인사건을 추적하지만 치밀한 추리극은 아니다. 비과학적이고 감정적인 해결방식으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다. 허를 찌르는 반전 대신 곱씹을수록 긴 여운을 남기는 휴머니티가 두드러진다. ‘살인의 추억’, ‘괴물’이 또 다시 연상되는 대목이다. 반복되는 우중 투쟁 장면은 봉 감독의 작품 특징으로도 여겨진다. 그래서 봉 감독의 작품들은 습(濕)하다.
하지만 대중성으로는 ‘괴물’이나 ‘살인의 추억’에 미치지 못한다. 스릴 면에서는 ‘살인의 추억’에 뒤지고, 볼거리는 ‘괴물’에 처진다. 모정을 다룬 영화라지만 전혀 슬프지 않다는 점 역시 대중적인 코드에 비껴나있다.
봉 감독의 영화 가운데 작가주의적 속성이 가장 많이 묻어나는 듯한 작품이 이번 ‘마더’다. 따라서 누군가의 눈에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다.
윤근영 기자 iamygy@newsis.com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