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2013년 ‘포스코 라면 상무 사건’, 2014년 ‘땅콩 회항 사건’ 그리고 지난 20일 벌어졌던 ‘만취 승객 기내 난동 사건’까지 항공 내 불법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3배 넘게 증가했고, 올해 상반기에만 3백건 가까이 발생했다. 여행과 업무 등으로 이용하는 비행기가 언제부턴가 ‘갑질’의 아이콘으로 변질됐다. 문제는 기내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승무원들은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항공기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래서 승무원들의 신속·정확한 대처가 중요하다. [일요서울]에서는 승무원들의 교육 실태에 대해 살펴봤다.
항공보안법 위반해도 솜방망이 처벌뿐
승객들의 올바른 시민의식도 필요하다
지난 2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출발해 인천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KE480)내에서 승객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비즈니스 석에 탑승한 임모(34)씨가 위스키 2잔 반을 마신 뒤 난동을 부렸다. 임 씨는 옆자리 승객 A(56)씨의 얼굴을 때리고 객실 사무장 박모(36)씨 등 여승무원 2명의 얼굴과 복부를 가격했다. 이를 말리던 정비사에게도 욕을 하고 정강이를 걷어찼다. 임 씨는 주변 남자 승객들과의 몸싸움 끝에 제압됐고 팝가수 리차드 막스도 포승줄을 들고 제압에 나섰다. 임 씨는 결국 제압됐지만 승객들은 공포감에 떨었다.
임 씨는 착륙 후 인천국제공항 경찰대에 체포됐고 경찰은 임 씨를 항공 보안법 위반 및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리차드 막스는 자신의 SNS에 현장 사진을 올리며 “나와 아내는 무사했지만 한 승무원과 두 명의 승객은 피해를 입었다”며 “여자 승무원들은 이런 승객을 제압하는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고 글을 게시했다.
항공기 내 보안요원 운영 지침에 따르면 기장과 승무원이 기내에서 사법 경찰관과 같은 보안요원을 맡고, 항공사는 1년에 3시간 이상 비무장 공격·방어 기술, 경찰 인계 절차와 구금 기법 등 보안교육을 하게 돼 있다.
“테이저건 여러 번 쏴본
승무원 본 적 없어”
하지만 대부분 이론 위주이며 보안교육 시간이 1년에 3시간에 불과한 데다 상당수 보안 요원은 여성 승무원이 맡는다. 만취 승객 기내 난동 사건에서도 보였듯이 여성 승무원이 난동자를 제압하기란 쉽지 않다. 한 경찰은 사건 당시 여성 승무원이 테이저건을 들고 있는 자세를 보고 조작법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직 승무원 임모씨는 “한국 기내 보안요원의 교육은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난동 승객 발생 시 대처방안에 대해 매뉴얼 대사를 외우는 것이 전부”라며 “해상 에서(선박) 벌어지는 사고만큼 위험할 수 있는 항공기 기내 사고지만 승무원들은 ‘외모’와 ‘워킹 연습’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군인들을 살펴보면 사격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여러 가지 훈련을 거치고 지속적인 실전 연습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 상황 훈련에서 테이저건을 여러 번 쏴봤다는 승무원들은 단 한 명도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머리, 표정, 화장, 액세서리, 손·손톱, 스커트, 스타킹, 구두까지도 점수를 통해 관리한다. 또 바지 유니폼이 있지만 바지를 입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품위를 훼손시킨다며 공항에서 핸드폰 사용도 금지시키고 있다. 이처럼 품위 유지만 강조하는 항공사와 승무원 덕분에 사고 상황에 ‘속수무책’인 승무원들만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있다. 항공사들의 사건·사고 대처 방안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성 승무원이 보안요원?
사복 경찰관 두는 선진국
영국의 심리학자인 라마니 더바슐라의 2014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비행기 내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기내라는 좁은 공간과 항공기의 소음 속에서 승객들은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이로 인해 신체에 대한 자율권을 잃게 되면서 동시에 감정 조절 능력도 상실하게 된다. 이처럼 기내난동은 생리학적 측면이 아닌 심리학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2001년 9·11테러 이후 항공기 내 전문 보안요원을 늘리는 추세다. 미국은 터키, 이스라엘 등 테러 위험 노선에 한해 사복 경찰관을 두는 ‘에어마셜’ 제도를 운영한다. 호주, 캐나다, 일본, 중국도 일부 노선에 승객으로 위장한 사복 경찰관을 탑승시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성 승무원과 기장이 전부다.
한편 한국 항공기 기내 난동에 대한 처벌 수위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2016년 1월부터 기내 소란·난동 등의 행위는 1000만 원 이하 벌금, 기장·승무원에 대한 업무 방해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을 물리도록 강화됐다. 하지만 인천공항경찰대에서 항공보안법 위반으로 입건한 사람 가운데 징역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1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그쳤다. 외국에 비해 아직까지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을 하고 있다.
실전교육 강화하고
승객 과음 제재 필요
전직 승무원 임 씨는 “난동 사건 이외에도 테러가 발생하면 승무원들이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항공사들의 사복 경찰 투입 또는 기내 현장에서 보안요원으로 분류되는 기장과 승무원에게 지속적인 실전교육을 시켜야 마땅하다”며 “단순하거나 작은 사건도 항공기 내에서는 대량의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승객들의 과음도 일종의 문제다. 과음 시 행동 통제력을 상실해 좁은 기내 공간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 본인조차 모르게 될 수 있다. 승무원들의 실전 교육 증대, 기내 난동 처벌 수위 강화, 승객들의 적절한 시민의식 또한 중요한 시점이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