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인물탐구]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 고정현 기자
  • 입력 2016-12-30 15:41
  • 승인 2016.12.30 15:41
  • 호수 1183
  • 14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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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인명진호’가 출범했다. 당내 주류인 친박계는 ‘2선 후퇴’를 선언했다. 조기 대선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여권이 본격적인 개혁 드라이브에 시동을 건 모습이다. 정치권은 당초 친박계의 ‘인명진 카드’를 ‘화장(化粧)용 카드’로 평가했다. 친박계가 본인들과 궤를 달리하는 인 위원장을 내세워 이미지 쇄신에 나서면서 나아가 20대 총선 직전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민주당을 구해낸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가 맡았던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명진호’의 항해가 순탄치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김종인 벤치마킹 나선 인명진, ‘글쎄’
- 정치 행보 살펴보니... 朴 ‘멀고’ 文 ‘가깝네’

새누리당이 지난 12월 29일 전국위원회를 개최하고 총 759명 위원 중 431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 선임 건을 만장일치로 추인했다. ‘인명진호’의 출범은 새누리당의 노선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인 비대위원장은 개혁 성향의 원외 인사를 중심으로 비대위를 꾸리고 친박 일부 인사들의 인적 청산과 박근혜 정부 핵심 국정과제의 노선 수정을 추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비박계가 탈당 후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을 추진하며 개혁적 정책 노선을 천명하자 자칫 보수 적통 논쟁에서 기선을 빼앗길 수 있다는 당내 위기감에 따른 행보로 풀이된다. 나아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사면초가에 몰린 친박계가 인 위원장을 추인한 속내엔 20대 총선 직전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민주당을 구해낸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 역할을 기대하는 의중이 담겼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과거 문재인 당시 새정치연합 대표는 안 전 대표와의 결별 이후 대표 자리를 물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 경제 멘토’인 김종인 교수를 비대위원장 겸 선대위원장으로 영입, 대표의 권한을 모두 넘겼다. 4·13 총선의 공천 전권을 위임받은 김 비대위원장은 당시 주류·비주류를 가리지 않고 고강도 물갈이를 단행했다. ‘김종인 독재당’이란 반발 속에서도 김 비대위원장은 흔들림 없이 본인의 길을 걸어 나갔고 결국 4·13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승리를 이끈 주역이 됐다.

인 위원장 역시 정당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위원장직을 수락한 점은 김 전 위원장과 비슷한 맥락으로 비친다. 인 위원장도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경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김 전 비대위원장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에 일각에서는 인 비대위원장이 4·13 총선 당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조치들을 벤치마킹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총선 당시 더민주 상황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김종인 대표가 비대위원장직을 맡았을 당시의 더불어민주당과 지금의 새누리당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고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지난 19대 국회 막판에 영입돼 이해찬 전 총리를 내보내는 등 일부 의원들을 축출하면서 친노 패권주의를 약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그의 거침없는 행보가 당내에서 구설에 오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더민주는 20대 국회에서 친문(親文)으로 뭉치며 더욱 공고해진 전력이 있다.

즉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이라는 대선후보가 있다는 점에서 도로 ‘친문’으로 뭉쳤지만, 친박계의 경우 아직 특정 대선 후보가 없다는 점에서 ‘친박계 해체’라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

실제로 인 비대위원장은 지난 12월 30일 당 쇄신을 위한 최우선 청산대상으로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 의원과 이정현 전 대표를 사실상 지목했다. 인 위원장은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박근혜 정부에서 당 대표를 했던 사람, 정부 주요 직책에 있었던 사람은 대통령을 잘못 모셨다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자진 탈당을 촉구했다.

그러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한 칼럼에서 인명진 위원장의 실체를 ‘좌익 요설꾼’으로 규정하며 신랄히 비판했다. 윤 전 대변인은 인명진 목사를 “심상정·노회찬이 하는 정의당에나 가서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할 전형적인 좌익 인사”라며 “어느 한 번 예외 없이 좌익에 편승하고 부추기는 길을 걸어왔다”고 평가했다.

특히 “대북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좌익 못지않은 길을 걸어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인 목사는 이명박 정권 시절 천안함 폭침 사건이 터지자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정치적인 의도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오히려 이명박 정권을 비난했다”고 공박했다.

실제로 인 위원장은 국정교과서에 반대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에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 성명에도 이름을 올렸고, 개성공단 폐쇄 반대 성명에도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북한의 요구와 동일한 주장을 하기까지 했다.

文이 치켜세운 여당 위원장

최근에는 상대 당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웃지 못 할 모습도 연출됐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4일 “새누리당도 국민의 준엄한 심판 앞에 노력을 많이 하지 않겠느냐”면서 “인명진 목사님을 비대위원장으로 모신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로 보고 싶다”며 치켜세웠다.

문 전 대표가 이례적으로 상대 당 비대위원장 인사에 호평을 한 것은 기본적으로 인 위원장이 그간 지향해온 정책의 방향이 박 대통령의 정책과 멀고 문 전 대표와는 가깝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인명진 목사는 1946년 충남 당진 생으로 대전고와 한신대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자유주의 신학으로 잘 알려진 한신대를 졸업했으나 기장(기독교장로회)을 외면하고 예장통합(예수교장로회)에 소속됐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원 박사와 숭실대 노사관계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인 목사는 1986년부터 갈릴리교회 담임목사로 시무 중이며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해방신학에 기초한 도시산업선교회에서 1972년부터 1984년까지 선교회 총무로 활동하면서 당시 재야 활동가인 손학규, 김문수, 오종쇄 등과 연을 맺었다. 1979년 YH사건 등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적극 펼치면서 4차례 투옥됐고 국외 추방까지 겪었다.

정치 경력으로는 2006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시작으로 2007년 한나라당 후보검증위원, 2009년 통일부 통일고문을 맡았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주장하면서 김영삼 후보를 앞장 세웠다. 이때 인명진 목사와 같은 입장을 내세운 인사들은 이재오 전 의원과 조영래 변호사 등이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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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017-01-03 21:24:48 121.137.56.44
새누리 의원들. 고려해주시길.
- 국가와 국민을 위한 아니면 출당시켜라. 정이든. 인이든
- 현재/내일 힘들더라도 그대들의 진정한 국가관을 보여라.
그대들이 자라목이냐?
- 촛불/태극기 집회, 그리고 현재의 국가 변란, 혼란 정국의 타개책에 대해
분명한 의견을 제시해라.
국민은 그대들 뿐만아니라, 썩은 언론/정치인/관료
모두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