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에로스 만나다
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에로스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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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04-02 09:30
  • 승인 2009.04.02 09:30
  • 호수 779
  • 6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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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버스’는 동맥혈전에 막힌 사회의 소통 시작이다
소통의 방법은 다양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음성언어이겠지만, 그것의 진실성이 의심받을 땐 문자언어로, 혹은 수화로, 심지어는 몸짓언어로라도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한 번 막힌 소통은 쉽게 뚫리지 않는다.

‘숏버스’가 개봉됐다. 공개하면 사회질서가 붕괴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열고 보니 난리도 없고 포르노그래피가 아니었다. 한 번도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한 섹스치료사, 서로 사랑하지만 구속받지 않는 성생활을 즐기고 싶어 하는 게이커플, 직업이지만 그 일에 회의를 느끼는 SM플레이어, 한 때 자신이 경영했던 뉴욕이라는 도시의 허구에 환멸을 느끼는 전직 뉴욕시장…

언더그라운드 살롱 숏버스에 모이는 이들의 공통 주제는 섹스와 사랑이다. 이들이 공통분모로 토론하고 고민하며, 해결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이 과연 섹스와 사랑일 뿐일까?

남자가 자기 성기를 물고 입에다 정액을 짜 넣는 기괴한 자위(킨제이 보고서엔 실제로 남자 5천명 중에 1명 정도 있다고 함), 동성연애, 혼음, SM 등 파괴적이고 쇼킹한 이들의 몸부림에서 우리는 결국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깨닫게 되고 슬그머니 당황한다. 소통의 부재. 거짓 오르가즘과 동성애의 불안정한 사랑, 메조키즘에 매달리는 비틀린 성욕. 이들의 절규는 모두 혈전증에 걸린 동맥을 뚫어보려는 발악이다. 영화를 보면서 불편한 것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우리의 윤리로서는 용납되지 않는 난교와 비정상적인 섹스가 스크린을 횡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통의 길을 막고 버티는 편견과 위선의 속내를 들켜버린 것에 대한 당혹감이다.

영화 속 여주인공 소피아는 온몸을 훑어 내리는 오르가즘을 찾기 위해 수음과 모험을 거듭하지만 결국 그녀가 찾아낸 열락의 세계로 이르는 길은 외부적 자극이 아니라, 내부에서 들끓는 무엇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결론을 얻는다.

섹스가 주는 판타지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허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판타지를 쫓기 위해 발작을 한다. 헛수고다. 상대와의 소통이 되지 않는 섹스는 수음보다 덧없다. 동맥혈전. 소통의 부재인 것이다. 이 영화를 단순한 포르노그래피로 속단하고 3년 동안 개봉을 허락하지 않은 한국 사회의 뭉친 근육으로 진정한 소통의 오르가즘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소통은 자유다. 눈치와 코치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자유뿐이다. 구조적 자유를 기다리기에는 늦을지 모른다.

온갖 틀과 규제에 익숙해져 버린, 그래서 DNA조차도 부자유스러워진 우리는 스스로 내면에서의 해방과 자유를 찾아야 한다. 팬티 속 말 못하는 선한 짐승(?)들까지 외곡 하지마라. 분칠하고 위장하는 것은 못 난 얼굴로 족하다. 영화 속 여주인공 소피아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야 섹스의 판타지도 열리고, 정치도 경제도 열린다.

문신구 그는 7-80년대 영화배우로 활동했으며, 90년대 연극〈미란다〉를 연출했다. 당시〈미란다〉는 마광수 교수의〈즐거운 사라〉와 함께 외설시비가 붙어 법정에 섰다. 이후 그는〈콜렉터〉〈로리타〉등 성과 사회적 관계를 담은 영화와 연극을 제작해 왔다. 현재 연예계 성상납사건을 담은〈성상납리스트〉와 재벌가의 숨겨진 사생활을 담은〈성〉을 영화화하는 작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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