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국민이 생활을 하기 위해 일정한 돈이 필요하듯 정부도 살림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재원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충당한다. 정부는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도로, 건물 등을 정비하고 안전을 위해 다양한 의료·소방·치안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대다수 국민들이 성실하게 납세의 의무를 지키고 있는 반면 일부 비양심적인 사람들과 기업들은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 급기야 국세청에서는 1년 이상 세금을 체납하고 있는 고액·상습체납자 및 법인의 명단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이 공개됐다. 총 1만6655명이다.
전 CNH케미칼 출자자 박국태 1223억으로 개인 1위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 법인세 53억여 원 미납
국세청은 지난 14일 고액·상습 체납자 1만6655명의 명단을 국세청 누리집과 세무서 게시판에 공개했다. 올해는 기존 5억 원 이상이었던 공개 기준 체납액이 3억 원 이상으로 하향 조정됐다. 그 결과 고액상습체납자 수가 전년 대비 6.5배 증가했다.
이번에 공개된 16,655명 중 개인은 11,468명, 법인은 5,187개다. 총 체납액은 13조3018억 원으로 1인(업체)당 평균 체납액은 8억 원이다. 명단 공개자의 체납액 규모는 5억~10억 원 구간 인원이 14,278명으로 전체의 85.7%, 체납액은 9조4866억 원으로 전체 체납액의 71.3%를 차지했다.
과자 박스 속에
담겨 있던 현금 5억 원
국세청은 은닉한 자금 추적을 위해 은행 CCTV 확인과 동시에 탐문수사를 벌였다. 그결과 현금인출자가 체납자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인 것을 확인했고 차량을 통해 돈을 상가건물로 이송한 사실을 알아냈다.
추가 확인을 통해 상가건물 입주자 중 체납자 아들과 동향인 사람을 찾아냈고 상가 입주자 사업장에 종이박스를 보관했다가 다시 찾아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후 국세청은 체납자에게 체납처분 면탈범 고발을 예고하고 추적을 계속하자 김 씨는 친척 창고에 몰래 보관 중이던 현금이 든 과자상자를 제출했다. 과장 상자에는 5만 원권 묶음으로 5억 원이 들어 있었다.
금고·서랍장에
명품 시계가 한가득
강모씨는 수억 원의 양도소득세를 체납했다. 강 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친척의 주소였다. 하지만 국세청이 확인한 결과 실제 주소지는 고급 아파트였다. 실 거주지인 고급 아파트에 은닉재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 국세청은 주거지 수색을 실시했다.
주거지 수색을 위해 강 씨 아파트를 진입하던 국세청 직원들은 집 안에 있던 강 씨를 확인했으나 강 씨는 본인이 체납자가 아니라며 부인했다. 하지만 이내 본인이 체납자임을 시인했고 아파트 내부를 수색한 결과 금고, 서랍장 등에서 바쉐론 콘스탄틴, 피아제, 롤렉스 등 명품 시계 6점과 에르메스 가방 등 총 2억 원 상당의 동산을 발견해 압류 처분했다. 강 씨는 동산 압류 후 같은 달 5억 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천경자, 오승윤 등
유명 화가 작품 나오기도
요양병원 양도대금을 채무 상환에 사용한 것으로 위장한 체납자도 등장했다. 요양병원장 이모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요양병원을 채무과다 등의 사유로 양도했고 양도대금은 채무상환에 모두 사용했다며 체납처분을 회피했다. 국세청은 이 씨 경력으로 볼 때 주소지에 고가의 동산을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 결과 이 씨 집에서는 천경자, 오승윤 등 유명화가의 작품 17점, 현금, 황금열쇠 등 총 1억 9천만 원 상당의 동산을 압류했다. 하지만 이 씨는 동산 압류 이후에도 양도대금 대부분을 채무상환에 사용했다고 주장해 국세청은 체납처분 면탈범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
세무조사로 인한 과세와 부가가치세 등을 체납한 웨딩업체 운영자 정모씨는 체납 발생 직전 예식장 건물, 아파트 등을 매각해 체납을 회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예식장 매각 당시 예식장 내에 비치됐던 수석 등은 매각대상에서 빠진 점을 알아냈고 2차례에 걸친 압수수색을 통해 수석, 분재, 뿌리공예품 등 총 88점을 압류했다.
국세청은 압류한 수석 등을 한국자산관리공사에 공매 의뢰해 매각대금 총 1억 7천만을 회수했다. 이후 예식장 건물 양도대금 중 미수채권도 압류해 총 2억 원을 추심했다.
신은경·심형래·이규태
명단에 올라
올해 공개된 고액·상습 체납자 중에는 유독 눈길을 끄는 유명인들이 있다. 연예인으로는 영화배우 신은경 씨가 7억9600만 원을 개그맨 겸 영화감독 심형래 씨는 6억1500만원의 세금을 체납했다.
신 씨는 2001년 종합소득세 등 총 13건에 대한 미납금, 심 씨는 제로나인엔터테인먼트 대표이던 2012년 양도소득세 등 15건에 대한 미납금이다.
이 밖에 방위산업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이규태 전 일광공영 대표가 199억3800만 원의 세금을 내지 않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법인 중에는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법인세 53억1200만 원을 체납했다. 청해진해운은 파산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 중 1위는 전 CNH케미칼 출자자인 박국태 씨로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1223억 원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법인 중에는 상일금속 주식회사가 부가가치세 872억 원을 납부하지 않아 1위를 기록했다.
한편 고액 상습 체납한 개인의 경우 연령은 50~60대가 62%를 차지했다. 법인의 경우 체납액 규모는 5억~10억 원 구간이 86.4%였다. 업종별로는 건설, 제조 업종이 공개인원의 53.6%였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