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2016년 한해는 ‘촛불의 해’였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타오른 촛불이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를 뒤흔들었다. 촛불은 아직도 꺼지지 않고 꼿꼿이 타오르고 있다. ‘촛불’은 ‘대의민주주의’ ‘대의 정치’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정치체제와 정치인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라고 뽑은 국회의원 그리고 대통령 모두 ‘최순실 국정농단’의 책임자다. 자신들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노한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 2016년은 ‘대의정치 실종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당리당략, 이해 유불리 따지며 머뭇거리는 모습에 실망
집회부터 청문회까지 직접 참가 “정치인들 환골탈태 하라”
‘대의 정치’란 대표를 뽑아 정치를 대신하는 간접 민주 정치를 이르는 말이다.
오늘날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대의 정치를 하고 있다. 국민들이 뽑은 시의원, 시장, 국회의원 등이 모두 대의 정치의 결과물이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만큼 대의 정치는 사회와 국가를 효율적으로 이끌어 가기에 알맞은 정치체제다.
하지만 대의 정치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하나 있다. 정치를 대신하기 위해 뽑은 대표에게 국민의 의사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 참여를 위한 편리성, 대표성 등을 이유로 시행된 대의 정치의 치명적 약점이다.
이러한 문제를 감안해 그래도 국민의 뜻을 잘 대변할 국회의원 등을 뽑는 것도 국민의 능력이지만 아무리 잘 골라 뽑은 국회의원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마련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눈앞에 쌓인 일들을 먼저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을 뽑아준 국민들의 의견 청취는 2순위 3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국민 실망시킨
국민의 대변자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시작된 국민들의 촛불집회는 우리나라 정치사에 전무한 사건이었다. 촛불집회 참가자가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대의 정치를 추구하던 국민들이 광장에 모여 자신들의 뜻을 직접 표출했고 정치인들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광화문 광장과 전국 각지의 주요 공원에 모여 촛불을 들고 집회를 벌인 이유는 단 하나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라고 뽑아준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분노하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국회의원들은 언제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명확히 밝혀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물론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국민들도 짐작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에 대처하는 국회의원들의 자세에 있었다. 당리당략과 이해 유불리를 따지며 머뭇거리는 모습에, 국민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국회의원들에게는 질책과 용기를 준 것이고 사건의 주인공인 최순실과 가담자들에게는 사건의 진상을 솔직히 고백하고 죗값을 치를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은 국민이 아닌 국회의원들이 했어야 할 일이다. 그것이 대의 정치의 참 모습이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적어도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 일대를 가득 채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국민이 준 권한과 힘
제대로 사용하라
대의 정치에 실망한 국민들은 광화문으로 나섰다. 뜻은 다르지만 보수, 진보 모두 집을 떠나 광장으로 나왔다. 정치인도 하나둘 국민들을 따라 광장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국민의 지지에 힘입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청문회가 열렸고 특검이 열렸다. 국민이 없었다면 이러한 일들이 가능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이 부여한 권한과 힘을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직접 나서 길을 열어줬다.
청문회가 열리는 과정에서도 국민들의 참여는 빛을 발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활약하는 일명 네티즌 수사대들은 청문회 주요 증인들의 거짓말을 반박할 중요한 증거자료를 실시간으로 찾아 청문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했다.
IT기술 발전으로 가능한 새로운 정치참여 방법이었다. 기존의 대의 정치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오죽하면 국민들이 직접 나섰을까 싶을 정도다. 청문회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지 여러 해 지났지만 청문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입에서는 한숨 섞인 말들이 나온다.
“질문같지 않은 질문을 한다” “준비를 하나도 안 한 것 같다” “뭘 하나도 모르고 질문을 한다” 등 대부분 국회의원들의 준비 부족과 대응 부족을 지적한다. 물론 ‘모르쇠’로 일관하는 증인들의 입을 열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자물쇠 채운 입을 여는 열쇠를 마련하는 것 또한 청문회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이 할 일이다.
미국정치에 몸 담았다 국내에 들어와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한 원로 정치인은 국내 국회의원들에 대해 “공부를 참 안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국내 정치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미국 등 유럽과 달라 국회의원들이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모르면 배워야 하고 시간이 없으면 선배 정치인들을 찾아가 물어라도 봐야 하는데 그런 국회의원들이 별로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촛불집회를 지켜본 국회의원 중에는 “국민이 무섭다”고 말하는 의원이 있다. 국민들의 분노와 적극적인 참여 의지에 놀랐다는 뜻이다. 하지만 위기의식을 느끼는 의원은 거의 없다. 어느 국회의원 하나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무릎 꿇고 석고대죄하는 의원이 없다.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건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용기가 없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국민들은 똑똑히 보고 있다. 국민들이 직접 나설 만큼 커다란 사건이었고 국가적으로 큰 위기 상황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파부침주 정신으로
나라·국민 위해 일해라
실종된 대의 정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촛불 민심’으로 대변되는 국민의 부름에 정치인들이 제대로 답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고 만들어 놓은 테두리 안에서 적극적인 해결책과 역할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문제는 아직도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국회의원들이 많다는 점이다. 국민들의 뜻이 먼저가 아니라 ‘자신의 뜻’ ‘주군의 뜻’을 먼저 살피고 있다. 그런데다 조기 대선론까지 등장하다 보니 유력 대선 후보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는 철새 정치인들이 많다.
최순실 국정논란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미래만 생각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반성이 먼저고 환골탈태는 다음이다. 지난 잘못에 대한 반성 없이는 새롭게 태어날 수 없다.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파부침주(破釜沈舟) 정신이다.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를 없앤다’는 뜻이다. 죽기로 싸우라는 국민들의 명령이다. 오직 나라와 국민만을 위해 충성해야 한다.
대의 정치에서 국민은 모든 힘의 원천이자 가장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이런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의원은 더욱 막강한 권한과 권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한 국회의원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대다수 의원들이 자신들을 대표로 뽑아준 국민의 존재조차 잊은 듯하다.
국회의원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다. 대통령도 아니고 사정기관도 아니다. 자신을 직접 뽑고 막강한 권한을 부여해 준 국민이다. 결국 국회의원이 돌아갈 곳은 국민의 품이다.
국민 위해 정치하는
국회의원들 보고 싶다
2016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는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 빠졌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단순한 개인 비리를 넘어 정치·사회 분야 구석구석 숨겨 있던 모든 문제들을 끄집어냈다. 자칫 그대로 숨겨질 뻔한 문제를 국민들이 직접 나서 공론화했고 국회의원들에게 해결할 기회를 넘겨줬다.
국회의원들은 헌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국민들이 부여한 권한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면 된다. 당리당략과 이해관계를 따지기 전에 양심과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 뒤 행동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국민들은 다가오는 2017년에 성숙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기를 바란다. 실종된 대의 정치와 대의 민주주의를 이번에는 정치인들의 손으로 회복하기를 기대해본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