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들 무더기 ‘출국금지’ 흑역사
총수들 무더기 ‘출국금지’ 흑역사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6-12-23 19:54
  • 승인 2016.12.23 19:54
  • 호수 1182
  • 4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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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의 입증 정조준 vs 기업 활동 위축
<뉴시스>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의 출국을 금지했다.

특검은 더불어 기업들의 추가적인 압수수색과 총수들의 소환 조사까지 시사하고 나섰다. 재계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그동안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조사와 국회 청문회 등에 총수가 직접 나가 성실히 조사에 임해왔는데 특검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데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총수의 출국금지 흑역사를 알아본다.

삼성·롯데·두산·효성 등 총수 일가 불명예 안기도
글로벌 경영 마비…해외 신성장 동력 발굴 ‘빨간불’

출국금지는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범죄의 입증을 위해 반드시 수사가 필요한 관계자의 경우 이뤄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이와 함께 사건 관련자가 해외도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경우 이를 막기 위한 사전조치로 처해진다. 거주가 분명한 총수들에게 출국금지 조치가 이뤄지면서 논란과 함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재 특검팀은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범위와 영향력이 막강한 만큼 이들 기업이 모종의 대가를 기대하고 최순실 씨 측에 돈을 건넸다고 보고 출국금지를 요청한 상태다.

도피성 출국 등 악용사례도

해당기업들은 불안한 정국으로 국내 사업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전력을 쏟아야 할 해외사업이 연초부터 동력을 잃게 될 수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한 기업 임원은 “온 국민들의 이목이 쏠린 이 때 기업 총수들이 도피성 출국 같은 도박을 할 수 있겠나”며 “현 정국이 국가적으로 엄중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정상적인 최소한의 기업 활동까지 막는 것은 국가경제에 득보다 실이 크다고 본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에 사법 당국은 기업의 신인도 하락 등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될 경우 융통성을 발휘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룹 총수가 해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 출국금지 조치를 운용함으로서 편의를 봐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선의의 조치를 기업인들이 악용하는 사례가 잇따라 논란이 된 바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검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출국한 후 도피생활을 했다. 중국에서 호화롭게 생활을 했다는 주장과, 반대로 유럽 등지의 3류 호텔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어렵게 생활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그는 5년 8개월간의 해외 도피 생활을 지속하다가 2005년 6월 14일 입국해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2006년 11월 3일 열린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횡령 및 국외 재산도피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의 형을 구형받았고,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2007년 12월 31일 대통령 특사로 사면됐다

당시 검찰은 ‘재벌에게 뒷문 열어둔 출국금지제도를 썼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뿐만 아니다. 검찰과 재계의 출국금지 흑역사는 더 있다. 가장 최근에는 롯데그룹일가가 출국금지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지난 7월 8일 검찰은 롯데그룹 최고 지도부인 신격호 총괄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의 맏딸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구속한 데 이어 그룹 총수인 신격호-동빈 부자(父子)를 출국 금지하면서 롯데그룹 오너 일가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4부(부장검사 조재빈)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손영배)는 롯데그룹이 계열사 간 거래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총수 일가에게 부당 이득을 안겨준 정황을 포착해 수사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 부자가 롯데그룹 계열사로부터 받아간 돈은 연 3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이인원 그룹 정책본부 부회장,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 김용수 롯데제과 대표 등 그룹 및 계열사 핵심 임원들이 출국 금지되기도 했다.

2014년 6월에는 탈세 의혹 등을 수사 받던 효성그룹 오너 일가에 대해 출국금지를 요청한 바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윤대진)는 국세청 조사 당시 출국 금지됐던 조 회장과 이상운 부회장, 조 회장의 개인재산 관리인 고모 상무를 비롯해 조 회장의 세 아들 현준·현문·현상 씨와 비리 연루 임원 수명을 함께 출국금지 조치했다.

2005년 10월에도 오너 일가가 출국금지 당한 사례도 있다. 두산 비리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검사 손기호)는 7일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박용만 부회장, 박용오 전 회장 등 총수 일가의 피진정인, 피고발인 전원을 출국 금지했다고 밝혔다.

당시 검찰은 박용욱 회장을 상대로 주방용품 업체인 넵스를 운영하면서 지난 5년여 동안 하도급 납품업체 등을 통해 물품 가격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회사에서 조성한 비자금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했다.

기업인 출국 금지 신중해야

한편 기업은 검찰의 출금 요청이 있을 때마다 청문회와 수사 등 이곳저곳 불려 다니느라 새해 사업계획도 제대로 확정짓지 못해 경영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한국 기업의 대외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지만 성역 없는 수사를 역설하는 검찰 입장에선 출국금지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경제난이 심화한 상황을 감안, 기업 활동 위축이 장기화하지 않게 재계에 대한 수사를 조속히 마무리지어야 한다. 아울러  정치권은 물론 기업인도 검찰이 수사를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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