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유혹> <꽃보다 남자> 등 자극적인 드라마 인기

일명 ‘막장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자극적 소재와 작위적 설정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지만 인기는 식을 줄 모르기 때문. “재미를 위해 그럴 수도 있다” “시청자들의 과민반응이다”며 막장 드라마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방송가의 이슈로 떠오른 막장 드라마. 그 면면을 살펴본다.
최근 언론과 인터넷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가 ‘막장 드라마’다. 막장 드라마는 불륜,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소재, 억지스럽고 단순한 전개 등이 눈에 띄는 드라마를 일컫는다. 통속극 중에서도 지나치게 자극적인 드라마를 칭하는 셈.
막장 드라마 전성시대?
네티즌이 인정(?)하는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는 KBS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과 월화드라마 <꽃보다 남자>,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 등이다. 이들 드라마는 커뮤니티 포털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서 진행한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중 ‘막장’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각각 1, 2, 3위를 차지했다. 지난 6일부터 13일까지 총 3,291명의 네티즌이 참여한 이 설문조사에서 <너는 내 운명>은 1,475명(44.8%)의 지지를 받아 1위에 올랐다. <꽃보다 남자>는 15.1%(418명), <아내의 유혹>은 14.9%(491명)를 기록했다.
지난 9일 종영한 <너는 내 운명>엔 통속극의 모든 소재가 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아로 자란 착하고 예쁜 장새벽(윤아)이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입양, 백혈병, 고부갈등, 재벌 2세와의 연애 등이 두루 등장했다. 후반부에는 새벽의 시어머니와 뒤늦게 나타난 생모가 동시에 백혈병에 걸리고 새벽이 골수를 시어머니에게 이식하는 상황까지 펼쳐져 비난이 줄을 이었다.
비난만큼 인기도 좋아
<아내의 유혹> 줄거리도 충격적이다. 드라마는 남편 교빈(변우민)과 친한 친구 애리(김서형)에게 배신당한 ‘착한 여자’ 은재(장서희)의 복수극을 그린다. 임신상태에서 교빈에게 죽임까지 당할 뻔 했던 은재는 과거를 숨긴 채 팜므파탈로 변신, 교빈을 유혹한다. 제목 그대로 ‘아내의 유혹’인 셈. 불륜, 살인미수, 강간에 의한 임신 등이 다뤄져 방송 전부터 논란이 일었다.
일본의 동명 인기 만화가 원작인 <꽃보다 남자>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폭력적인 상황이 연출된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크다. 상류층 자제들만 다니는 사립학교에 전학 온 평범한 여고생 금잔디(구혜선)와 교내 꽃미남 그룹 F4와의 갈등 및 로맨스가 주된 줄거리. 그 과정에서 납치, 폭행, 왕따 등이 등장한다. 제작진이 한국적 정서에 맞게 순화하려 노력했지만 일본 만화가 원작인 만큼 왜색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어 보인다.
이들 드라마가 화제의 중심에 선 이유는 단순히 자극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인기를 구가 중이기 때문이다. ‘막장 드라마=인기드라마’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다. 이는 시청률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최고의 막장 드라마’로 뽑힌 <너는 내 운명>은 종영 전 14주간 시청률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최종회 시청률은 무려 43.6%(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달했다. <아내의 유혹> 역시 최근 시청률 30%대를 돌파, 승승장구 중이며 <꽃보다 남자>도 방송 4회 만에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해 부진을 면치 못하던 KBS 월화드라마의 구원 투수로 떠올랐다. 10~20대를 중심으로 신드롬까지 일으키고 있다. 디시인사이드 설문 조사에서 ‘막장 드라마’ 4위로 뽑힌 MBC <에덴의 동쪽> 역시 25%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월화극 최강자로 군림 중이다.
재미주려면 자극도 필요?
사실 선정성 강한 드라마의 성공은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지난 해 방영된 SBS <조강지처 클럽>과 임성한 작가의 <하늘이시여>, <왕꽃선녀님> 등도 비상식적 설정과 캐릭터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인기는 남부럽지 않았다.
가만히 살펴보면 막장 드라마는 사랑받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이 만들어내는 대립구도와 극적인 상황들이 사람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해 계속 보게 만드는 것. 재미가 보장되는 만큼 “욕하면서도 보게 된다”는 말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막장 드라마를 무조건 비난하는 건 지나친 일”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재미를 얻기 위해서인 만큼 자극성이 강해도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괜찮다는 주장.
국내외 드라마를 두루 즐겨본다는 직장인 박나래(부산?30)씨는 “드라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사실적일 필요는 없다”며 “자극성이 문제라고 하는데 국내 드라마는 양호한 편이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보다 큰 재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억지스런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순간보다는 전반적인 이야기 흐름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꽃보다 남자>에 대한 비난에 대해 원작 만화 팬 중 일부도 “만화에 비하면 훨씬 순화됐다”, “현실 속 학교의 폭력과 왕따가 더 심하다”며 드라마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무조건적인 비난은 자제해야
몇몇 방송 관계자들도 막장 드라마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자극적이라고 주제까지 없는 건 아닌 만큼 지켜봐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막장 드라마라는 말 자체가 과한 것 같다”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은 원인이 있고 이를 완전히 무시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다고 모든 드라마가 성공하는 건 아닌 만큼 성공한 드라마가 가진 장점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연예 관계자들은 비난이 이어져도 막장 드라마 제작은 계속 될 것으로 예견한다. 시청률이 보장되는 드라마를 외면할 방송사나 제작사는 없다는 것. 탤런트 매니저는 “작정하고 막장 드라마를 만드는 건 아니지만 재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는데도 막장 비난이 무서워 피하지는 않는다”며 “솔직히 누가 시청률이 보장되는 효자 작품을 거부하겠는가. 요즘처럼 힘든 상황에서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자극적 소재 빈도 조절해야
그럼에도 막장 드라마에 대한 우려는 끊이지 않는다.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폭넓은 계층이 보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라 신경 써서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 막장 드라마를 지탄하는 이들은 무엇보다 수위 조절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어느 드라마든 재미를 위해 자극적인 소재나 작위적 상황이 등장하지만 얼마나 자주, 얼마나 중요하게 사용되는 지가 문제라는 것.
주부 이영애(서울·41세)씨는 “드라마를 즐겨보지만 지나치게 갈등이 반복되니까 우울해지더라”며 “보지 말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사는 것도 어려운 요즘 좀 더 밝게 웃을 수 있는 드라마가 필요한 것 같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이어 “드라마가 아이들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제작진이 기억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막장 드라마에 대한 지지와 비난이 대립하는 가운데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이들 드라마의 인기가 당분간은 쉽게 식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신혜숙프리랜서 기자 tomboysh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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