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스타를 띄우지만 침몰시키기도 한다

연예계에 미치는 대중의 파워가 날로 강해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프로그램이나 연예인의 잘잘못을 실시간으로 알리는 건 기본, 심할 경우 방송이나 활동에 제약을 걸기도 한다. 대중의 범위가 ‘팬’으로 좁아질 경우 영향력은 한층 막강해진다. 팬들의 후원에 스타는 힘을 얻기도 하지만 안티 팬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한다. 대중의 입김에 울고 웃는 연예계를 살펴본다.
<무한도전> 공식사과
MBC 간판 오락프로그램 <무한도전> 제작진이 고개를 숙였다. 일명 ‘정준하 기차사건’과 관련해서다. 제작진은 지난 6월 25일 홈페이지 공지란에 ‘무한도전 제작진입니다’란 제목으로 공식사과문을 올렸다.
사과문에서 제작진은 “지난 6월 5일 서울 출발 대전행 무궁화호 안에서 진행된 ‘돈 가방을 갖고 튀어라’ 촬영으로 객실 내의 많은 승객들에게 불편을 드린 점,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출연진이 촬영에 몰두해 주위에 신경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작진이 승객들의 양해를 구하고 협조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 제작진은 스스로를 “가장 못난 놈”으로까지 표현했다.
이번 사과는 한 네티즌이 쓴 글에서 비롯됐다. 지난 6월 21일 방영된 <무한도전>의 ‘돈을 갖고 튀어라’ 편이 촬영된 열차에 탔다는 이 네티즌은 “당시 정준하가 큰소리로 통화를 해 승객들에게 피해를 줬음에도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는 요지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글은 순식간에 퍼졌고 정준하와 <무한도전>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김태호 PD가 언론을 통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글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고 결국 제작진의 사과로 마무리됐다.
연예 관계자는 “이번 일로 연예계에 미치는 대중의 파워를 다시한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명의 네티즌이 올린 글로 인기 프로그램 제작진이 공식사과까지 하는 일을 예전엔 생각하기 어려웠다는 것.
여론은 인터넷을 타고
과거 연예계는 ‘나름대로의 철옹성’이었다. 각종 루머와 뒷말이 끊이지 않았지만 웬만한 사건은 무마시키고 덮을 수 있었다. 치명적인 실수나 잘못이 아닌 이상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금방 잊혀졌다. 대중의 영향을 받기보단 영향을 미치는 편이었고 연예 관계자들에게 여론이 고스란히 전달되지
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인터넷을 통해 대중의 의견이 빠르고 명확하게 드러난다. 드라마 결말이나 캐스팅에 불만을 나타내는 건 애교다. 특정 프로그램이나 연예인의 잘잘못이 실시간으로 알려지고 이에 대한 혹독한 비난 혹은 엄청난 지지가 이어진다. 다시보기, 캡쳐 영상 등을 통해 보다 오래,
보다 많은 사람이 사건을 알게 되고 여론도 지속적으로 형성된다. 연예 관계자들이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대중의 성향이 적극적으로 변하면서 연예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게시물과 댓글 작성은 기본,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프로그램 시청·청취 거부, 항의 전화와 메일, 퇴출운동을 벌이는 경우가 증가했다.
말실수에 퇴출 요구?
실제로 최근 연예계에선 <무한도전> 제작진의 공식사과 외에도 대중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일이 잇달아 발생했다. 개그우먼 정선희의 프로그램 자
진 하차도 그 중 하나다.
정선희는 지난 5월 22일 자신이 진행하던 MBC 라디오방송 <정오의 희망곡 정선희입니다>에서 청취자 사연을 소개하던 중 ‘촛불집회’ 관련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방송 후 청취자와 네티즌은 “촛불집회를 폄하했다”며 정선희를 강력하게 비난했고 퇴출까지 요구했다.
정선희는 사과방송을 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결국 <정오의 희망곡> <불만제로> <이재용 정선희의 기분 좋은 날> 등 MBC 프로그램 3개에서 자진 하차했다.
황정민 KBS 아나운서 역시 지난 6월 26일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황정민의 FM 대행진>에서 “촛불집회가 과격해져 실망스럽다”는 요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일부 네티즌은 퇴출을 주장했지만 황정민 아나우선의 공개사과로 사태는 일단락된 상태다.
팬들 공격에 연예인 “기죽어”
불특정 다수인 대중의 범위가 특정 다수인 ‘팬’으로 좁아질 경우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에게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쏟으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스타에게 해가 되는 정보는 미리 차단하고 잘못된 기사는 정정 보도를 요구한다.
최근 7집 음원이 유출된 자우림 팬클럽의 경우 자발적으로 불법다운로드를 자제했고 슈퍼주니어 팬들은 지난 해 새 멤버 영입 소식이 전해지자 소속사
앞에서 반대 침묵시위를 벌였다.
한 가수 매니저는 "요즘은 음악이나 공연, 활동 등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된다. 가수 입장에선 좋은 정보가 된다”면서 “팬들의 영향력이 워낙 크다 보니 후속곡 선정 등에 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하지만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와 라이벌 관계에 있거나 싫어하는 스타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와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안티 카페를 개설하는 건 기본이고 팬클럽 간 갈등으로 연예인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지난 6월 7일 드림콘서트에서 발생한 일명 ‘소녀시대 침묵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소녀시대 팬클럽과 갈등이 있었던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SS501 등 3개 팬클럽이 소녀시대가 공연하는 동안 야광봉을 끄고 침묵으로 일관해 논란을 빚었다. 이후 소녀시대는 사과문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또 다른 가수 매니저는 “어떻게 보면 소녀시대가 피해자인데 오히려 몸을 낮춰 사과문을 냈다”며 “팬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연예계에 미치는 대중의 ‘힘’을 바라보는 시선은 긍정과 부정으로 갈린다.
긍정론자들은 대중의 적극적인 의사표현과 활동으로 양질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연예인들의 잘못된 행동을 막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즉 대
중이 연예계의 감시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
김기현(30·직장인)씨는 “인터넷의 발달로 대중이 옴부즈맨이 됐다. 연예인은 언행에 더욱 신중을 기울이고 방송사 관계자들도 제작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시자 역할’ VS ‘신중해야’
하지만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공석 혹은 사석에서의 연예인의 말과 행동이 지나치게 확대해석 돼 소모적인 논란이 일고 연예인의 소신 있는 행동이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
실제 정선희가 촛불집회 발언으로 곤혹을 치를 당시 일부 네티즌은 “마녀사냥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한 사람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날이 발전하는 인터넷을 원동력으로 연예계 깊숙이 침투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중. 이들의 입김이 앞으로 연예계를 어떻게, 얼마나 변화 시킬지 궁금하다.
신혜숙 프리랜서 기자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