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춘·우병우 ‘굴복’에 직·간접 기여…정유라 제보도
‘뻗치기’는 기본·영상 분석까지…보수단체도 도움 손길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최근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이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행방 찾기에서 이들은 ‘수배전단’을 만들고, 현상금을 내놓고, 차종 및 차량번호까지 추적하며 그를 쫓았다. 이 같은 네티즌들의 활약에 ‘검티즌’(검찰+네티즌)이라는 별칭까지 나올 정도다. ‘검티즌’의 활동 덕분에 우 전 수석이 압박감을 느낀 걸까. 우 전 수석은 오는 22일 5차 청문회에 출석 의사를 국조특위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독일에서 행방이 묘연한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도 이들의 활약으로 모습을 드러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네티즌 수사대는 주로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주축을 이뤄 활동에 나선다. ‘디씨인사이드 주식갤러리’와 ‘오늘의 유머’, 자동차 전문 사이트 ‘보배드림’ 3곳이 대표적이다. 특정한 조직과 체계는 없지만 SNS를 활용해 단체 채팅방을 개설, 정보를 공유하면서 행방을 찾는다. 이 같은 대형 커뮤니티는 회원들이 전국적으로 퍼져 있어 추적에 용이하다.
실제 지난 6일부터 종적을 감췄던 우 전 수석에 대한 이들의 추격이 전국적으로 이뤄졌다.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인천 산곡동 주택가 등 전국 곳곳에서 추격담이 올라왔다. 또 우 전 수석의 가족회사라고 알려진 ‘정강’과 우 전 수석의 장모집이 위치한 서울 강남에 ‘뻗치기’를 하는 네티즌들도 이어졌다.
마침내 우 전 수석은 5차 청문회 증인출석요구서 송달 시한 마지막 날인 지난 15일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국조특위팀에 휴대폰 문자를 보낸 것으로 16일 전해졌다.
우 전 수석은 지난 13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미 출석 의사를 밝힌 바 있는데 그 이후에도 이들은 추적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과 함께 우 전 수석의 행방을 쫓았던 김성회 민주당 손혜원 의원 보좌관은 “(우 전 수석의 언론 인터뷰 이후에도) 메신저를 통해 하루에 수십 건씩 관련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15일 밝혔다.
네티즌 수사대의
화려한 이력
네티즌 수사대가 직접적으로 우 전 수석의 소재를 밝히는 데는 실패했지만, ‘우병우 청문회 출석’이라는 목적에 간접적으로 기여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들의 활동은 지난 7일 2차 청문회 이후 날개를 달았다. 그간 ‘법률 미꾸라지’로 불리던 김기춘 전 실장의 위증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는 디씨인사이드 주식갤러리 이용자 ‘주갤러’의 제보가 결정적이었다. 한 네티즌이 최순실 씨 이름이 등장하는 현장에 김 전 실장이 있는 ‘영상’ 하나를 의원에게 실시간으로 제보했고, 최순실 씨를 모른다고 잡아떼던 김 전 실장이 영상을 보고 말을 뒤집은 것이다. 김 전 실장은 “최순실이란 이름은 이제 보니까 못 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네티즌의 수사력을 선보인 또 다른 사례도 있었다. 최순실 씨 모녀는 과거 독일과 덴마크를 오가며 은신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덴마크 은신 의혹을 이들이 최초로 제기한 것이다. 덴마크는 ‘독일에서 최순실 씨를 만났다’는 지난 10월 세계일보 보도에서 작은 단서를 발견한 네티즌 수사대가 또 하나의 은신처로 지목한 나라다.
당시 세계일보는 독일 헤센주의 한 호텔에서 최순실 씨를 만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진 속 전기 콘센트가 독일식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한 한 네티즌에 의해 인터뷰 장소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네티즌들은 사진에서 콘센트가 바닥에 가까이 설치돼 있지만 독일은 바닥에서 30㎝ 띄워 설치하는 것이 규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네티즌들은 전 세계 전기 콘센트와 비교하면서 모양과 설치 방식이 가장 비슷한 나라로 덴마크를 지목했다. 실제 정유라 씨는 덴마크에서 승마대회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정 씨의 페이스북 글 등을 발굴해낸 것도 네티즌이다. 정 씨의 페이스북에는 그의 성격을 짐작케 하는 글이 발견되기도 했다. 정 씨는 해당 글에서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남의 욕하기 바쁘니 아무리 다른 것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라는 글을 올려 네티즌들의 거센 공분을 샀다.
독일 소재지 발견
정유라, 송환되나
정 씨는 현재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 당사자임과 동시에 독일에서 산 집에 대한 상속세 등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독일에 거주하는 교포 등에 의해 정 씨의 거주지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CBS 라디오에 출연해 관련 제보를 받고 최근 독일을 방문해 정 씨의 소재를 파악했다고 밝혔다. 현재 유학생, 교포 등이 정 씨 집 주변에서 ‘뻗치기’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16일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 의원은 “특검에서 어서 정유라를 피의자 신분으로 만들어 소재가 파악된 정유라를 체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시간을 이렇게 흘려버리면 뻗치기를 하고 있는 이 분들한테도 굉장히 피곤한 일”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정 씨의 소재가 확실하냐는 질문에 “검찰이 피의자 신분만 만들어주면 당장 체포할 수 있다는 정도만 말씀드린다”고 했다.
한편 보수단체들도 네티즌 수사대의 손을 빌리고 있는 모양새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김한수 전 청와대 행정관의 소재를 경찰서 등에 제보하면 현상금 1000만 원을 주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우 전 수석을 잡기 위해 전·현직 의원을 비롯한 일반시민들이 1500여만 원의 현상금을 건 데 대한 모방전략으로 해석된다.
김 전 행정관은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뒷받침할 핵심 물증인 태블릿PC를 자신이 운영하던 마레이컴퍼니 명의로 2012년 개통해 고(故) 이춘상 보좌관에게 넘긴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박사모 등은 JTBC의 태블릿PC 입수 경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들은 네티즌 등의 제보로 향후 청문회 출석이나 특검에서 김 전 행정관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