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식 자리 성희롱 경험 여성 47% 남성 29%
‘코로 술마시자’ 현대중공업 임원 시끌시끌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연말·연시 회식 시즌이 다가올 때마다 어김없이 발생하는 사건·사고는 성희롱 문제다.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은 회식자리다.
회식자리에서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과 성적 농담 섞인 건배사도 성희롱에 해당될 수 있다. 국가, 기업 차원에서 성희롱 예방을 노력하고 있지만 회식자리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직원 김 씨는 지난해 연말 회식자리에서 성적 모멸감을 주는 건배사로 불쾌함을 느껴 올해 회식에 나가기 싫다고 했다. 김 씨의 남자 상사는 ‘미사일’을 외치면서 가슴에서 미사일을 쏘는 행동을 하며 “아차 나는 가슴이 없구나”하면서 웃었다.
김 씨는 “미사일은 ‘미래를 위해, 사랑을 위해, 일을 위해’의 앞글자를 딴 조어지만 상사의 행동이 여성의 가슴을 미사일에 비교해 수치스러웠다”고 했다.
국내 대형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남자 직원 오 씨는 올해 연말 회식에서 여자 상사가 건배사로 ‘발기’를 외쳐 성적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해당 상사는 “앞서 한 건배사가 재미없다”며 “이 정도는 돼야지 않겠냐”며 외쳤다고 한다.
그는 뜻은 ‘밝고 기쁘게’지만 부서에 남자 비율이 낮고 건배사 후 여성 직원들이 웃던 분위기 속에서 성적 모멸감을 참기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모두가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현대중공업은 한 임원이 회식자리에서 여직원들에게 술을 강요해 문제가 일었다. 지난 11월 21일 현대중공업 노조 게시판에 한 임원의 ‘엽기적인 술자리 행태’를 고발한 글이 올라왔다.
게시된 글은 ‘모 부서 상무가 여직원들에게 지난해 연말 회식에서 코로 소주 흡입을 강요, 할 때까지 매우 끈질기게 부추겼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그 글에는 ‘해당 임원에게 내려진 징계는 겨우 감봉 3개월에 그쳤다’는 말도 있었다.
여성 상사의 성적 수치심 유발 건배사
현대중공업 측은 “모 임원이 회식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본인이 먼저 소주 뚜껑에 술을 따르고 코로 들이마셨고, 몇몇 직원들이 이를 따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해당 여직원에게 그런 방법으로 술 마시라고 강요한 적은 절대 없다”고 부인했다.
또 이 관계자는 “1년 전 이미 그 여직원이 감사실에 불쾌감을 표해 사측이 해당 임원에게 징계를 내렸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발표한 시정 권고 사례집에 나오는 직장 회식자리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들도 있다.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정 씨는 직장 회식자리에서 남자 친구가 있느냐는 팀장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정 씨 남자 친구가 대화의 주제가 되자 술에 취한 몇몇 직원들이 남자 친구랑 진도는 어디까지 갔느냐, 모텔에 가봤느냐는 등의 질문을 했다. 이에 정 씨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주유소 직원 김 씨는 연말 회식자리에 참가하지 않았다. 며칠 뒤 회식에 참여했던 남자 직원 A씨와 B씨가 김 씨와 관련된 음담패설을 나눴다는 사실을 B씨를 통해 들었다. 김 씨는 인권위에 사실을 제소했다.
은행에서 근무하는 김 씨는 남자 동료직원 C씨와 연말 회식 후 술에 취한 같은 팀 팀장을 집에 배웅해 주기로 했다. 만취한 팀장이 차 안에서 김씨와 C씨가 잘 어울리니 방을 잡아주겠다며 내가 가면 둘이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김 씨는 성적 모멸감을 느꼈다.
분위기 전환 위해 한 것, 웃고 넘어갈 수밖에
앞서 여성가족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직장인 7800여 명을 조사한 ‘2015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한 응답자가 여성 46.7%, 남성 29.2%였다.
이처럼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이 많이 발생되는 원인은 과음과 분위기 전환 등의 이유다. 성희롱으로 적발된 위 사례들도 가해자들은 모두 과음, 분위기 전환의 가벼운 농담으로 한 것이지 고의성이 아니라는 해명을 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라도 사생활과 관련한 수위 높은 질문, 음담패설 등은 성희롱으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 회사차원에서도 회식이 많은 연말 연초에 직원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요하고 있다.
여성부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공공기관과 대기업들은 성희롱 예방교육 및 전담부서 등이 제도적으로 갖춰져 있고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노력으로 직장 내 성희롱이 이전과 같이 노골적인 음담패설, 성적 접촉 등 심각한 상태는 아니나 일각에서는 성적 농담이 섞인 건배사, 술 강요 등의 문제는 아직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기업체에 성희롱 방지 출강을 나가는 한 강사는 “연말연시에는 기업들이 국가에서 의무한 성희롱 방지 교육 시간을 채워야 하니 스케쥴이 꽉 찼다”며 “할당된 시간을 채우기 위해 몰아치듯이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는 것은 근본적인 직장 내 성희롱 해결을 위한 것 같지 않다”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이 강사는 “강의에서 회식도 일의 연장선이라고 말한다. 과음은 자제하고 애초부터 직급에 상관없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 성희롱 근절은 멀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남동희 기자 donghee070@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