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위기의 해운업계 이대로 괜찮나
[긴급진단] 위기의 해운업계 이대로 괜찮나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6-12-16 19:05
  • 승인 2016.12.16 1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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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넘겼다는 ‘현대상선’ 사망선고 ‘한진해운’..‘근로자만 힘들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해운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로 국내 유일의 국적 선사가 된 현대상선이 글로벌 해운동맹 ‘2M'과 낮은 수준의 협력을 맺는 데 그쳤다. 2M 가입으로 재기를 노렸던 현대상선 경영 정상화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런 가운데 한진해운·현대상선에 몸담았던 직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탈자도 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탈 인원의 수용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들을 구제할 정부 방안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운업계의 찬바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정상화 어려움 계속…위기 돌파구 마련 부심
경기 침체 탓만…정부 대책 실효성도 의문 투성이

 

# 현대상선이 세계 최대 해운동맹 2M(머스크·MSC)에 조건부로 가입한다. 내년부터 제한적으로 선박 운항에 협력하되 3년 뒤에 현대상선의 재무구조와 유동성이 개선되면 정식 가입할 수 있는 조건이다. 2M은 전 세계 해상 화물의 36.6%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해운동맹으로 세계 1위 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 2위인 스위스의 MSC 등이 포함돼 있다. 

# 해운업계는 한진해운 직원들을 대상으로 비공식 채용을 진행 중이다. 2017년 해운업 경기가 올해보다 안 좋아질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자 한진해운의 노하우를 도입해 경쟁력 강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훈풍처럼 들린다. 그동안 안 좋은 소식만 들려오던 해운업계에 조금이나마 빛이 보인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한 상선맨들은 그냥 웃어넘긴다. 살기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것이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상선맨은 상선+맨(MAN)의 합성어로 업계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14일 취재진을 만난 한 상선맨은 자신을 15여 년간 국내 굴지 기업에서 일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현실에 대해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의 삶 자체가 무너졌다고 한탄하면서도 상선인으로서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영화 같았다. 상선회사에 입사해 그가 누빈 바다는 엄청났다.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태평양은 물론 대서양, 인근 일본 중국까지 안 가본 곳이 없다. 비행기라면 하루에 갈 곳을 배로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수년까지 짐을 싣고 곳곳을 누볐다. 그가 탄 배에 실리는 물건도 엄청나다.


품목을 나열하는 것 조자 힘들다고 했다. 선원들과 함께했던 추억도 많았고 풍파를 이기며 항해한 시간을 열거하는 그의 모습에서 신난 어린아이의 모습이 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현실은 실업자다.

선사가 경영 위기를 겪으면서 자리를 떠나야 했다. 함께했던 동료들 중에는 이직할 회사를 찾지 못해 실업자로 전략한 경우도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유일의 국적 선사가 된 현대상선이 글로벌해운동맹 ‘2M’과 낮은 수준의 협력을 맺은 사실이 알려지자 힘이 빠진다고 했다.

지난 11일 현대상선은 2M과 선복(선박의 화물 적재공간) 교환, 선박 매입을 하는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기로 협상을 타결했다고 밝혔다.

긴밀한 수준의 해운동맹은 선사끼리 비용과 수익까지 나누지만 현대상선이 맺은 선복 교환, 선박 매입은 가장 낮은 단계의 협력으로 평가받는다. 해운업계에서는 ‘부분 동맹’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현대상선은 그간 2M과 이보다 높은 동맹 수준인 선박공유협정(VSA)을 맺기 위해 협상을 벌여 왔다.

현대상선은 “보유 선박수, 재무 상태, 수익성 등 모든 면에서 상대적으로 협상 열위에 있는 상황에서 실리에 방점을 두고 얻어낸 최선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업계는 이번 협상 타결은 사실상 ‘반쪽짜리 가입’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해운업계에서는 2M이 당초 현대상선과 동맹을 맺어 미주노선 점유율을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화주들이 2M 선사로 일감을 맡기면서 굳이 현대상선을 가입시킬 필요성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진해운 일부 직원들도 불편한 심기를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로 내몰린 한진해운 직원들은 이직을 준비 중이다. 그나마 이직이 가능한 일부 인원은 다행이라며 한시름 놓지만 그렇지 못한 직원들은 애먼 담배 연기만 뿜어낼 뿐이다.

업계는 국내 기업 중 현대상선만 40~50명 수준의 인력을 채용하고 나머지 기업은 많아야 5명 이내로 관측하고 있다. 또 해외 선사들 역시 수십 명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공통된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외 중소형 선사 및 물류기업들이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해 한진해운 직원들의 채용에 나서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기업마다 티오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대상선 외에는 많은 인력을 채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편 한진해운에는 현재 SM그룹으로 소속을 옮기지 못한 직원 310여 명이 남아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현재 재택근무 중이다. 이들은 이달까지 임금의 100%를 받고 다음 달부터 강제 무급 휴직에 들어간다

현재 한진해운 본사로 출근 중인 일부 직원들은 오는 2월 5일 법원에 제출할 회생계획안 작성과 회사정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본사 직원이 아닌 현장에서 바다를 누비던 근로자들이다. 향후 대량 실직이 불가피하다. 지난 8일 심상완 창원대 사회학과 교수가 조사·발표한 ‘조선사업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문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경남지역 조선업 근로자(직영·협력업체 포함)는 8만6227명으로 집계됐다.

경남지역은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다수의 조선소가 밀집해 있어 조선업 전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척도로 활용되는 곳으로, 지난 4월 말 10만4111명과 비교해 약 5개월 만에 1만7884명에 달하는 근로자 수가 감소한 것이다.

또한 심 교수가 고용보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조선업체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10월∼올해 9월 기간 실직한 이후 재취업한 근로자의 비율은 58.1% 수준에 머물렀다.

결국 이는 나머지 41.9%에 달하는 근로자가 여전히 재취업하지 못한 채 실직 상태에 처해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 대책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의견들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정부는 조선업 실직자들을 위해 462억 원 수준의 전직훈련 지원 등 총 2000억 원을 쏟아 붓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방침에도 실제 정부가 주도한 조선업 희망센터 등 시설 이용률은 극히 저조하게 나타나는 등 보다 근본적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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