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검찰을 좌지우지하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를 떠난 이후 검찰 수사 기류가 바뀌고 있다. ‘우병우 사단’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데다 박근혜 대통령마저 탄핵을 당해 권한이 정지되면서 검찰 수사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통상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치적 부담이 크고 표적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여야 숫자를 억지로 맞추는 ‘짜맞추기 수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검찰 수사를 보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사이에 줄타기 수사에다 미래 권력에 보험을 들기 위한 수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권력인 박 대통령과 미래 권력인 야권 사이에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부산 엘시티-선거법 위반-건설협회 불법후원금
- 친박·탈박 ‘잡고’ 비박·야당은 ‘파일함으로…’
검찰이 현재 진행하는 정치인 관련 수사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부산 해운대 엘시티 비리 의혹 사건이고 또 하나는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중 33명에 대한 공직선거법위반 수사다. 나머지 하나가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개인비리 의혹 수사다. 통상 검찰은 ‘공소장으로 말한다’며 엄정수사를 강조했지만 유독 정치인 관련 수사에서는 형평성 논란이 일었고 편파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검찰 수사를 보면 과거와는 다른 표적 수사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단 부산 엘시티 비리 의혹 사건 수사를 보면 검찰은 이영복 회장을 지난 11월 10일 체포하면서 수사가 활기를 띠었다. 이 회장은 부산 정관법조계 인사들에 대한 500억 원대 이상 로비 의혹을 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또한 여야 정치인이 다수 실명으로 거론됐고 전현직 부산시장에 검찰 고위 인사들의 이름도 흘러나왔다.
정치적 부담 없는 ‘정치인’만 골라서?
하지만 체포한 지 40일이 넘었지만 정치인 중에서는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구속했고 현역 의원 중에는 유일하게 이진복 의원이 계좌추적을 당하면서 첫 수사를 받고 있다. 이미 검찰은 이 회장이 자주 출입한 14개 골프장을 압수수색하면서 명단을 확보해 이진복 의원을 포함한 전·현직 의원 4명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수사는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현 전 수석은 부산 내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고 이 의원은 친박 몫으로 공천을 받았다가 비박으로 말을 갈아탄 ‘주박야비’(낮에는 친박 밤에는 비박)형으로 탈박 의원이다. 친박계에서는 탄핵정국 속에 정치적 생명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현역도 아닌 현 전 수석을 굳이 옹호할 생각도 없고 비박계 역시 친박에서 넘어온 인사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검찰 또한 정치적 부담이 없는 수사다.
특히 부산 엘시티 비리 의혹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궁지에 몰렸을 당시 엄정 수사를 지시해 뒷말이 무성했다. 부산 출신인 문재인 전 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었지만 아직까지 밝혀진 것 없이 ‘카더라식’ 설만 무성하다. 오히려 친박·탈박 의원만 수사를 받고 있다.
한편 여야 20대 국회의원 33명에 대한 검찰 수사도 당초 절반 이상이 날아가 내년 4월 총선이 미니 총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33명에 대한 재판 결과를 보면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최소 3곳에서 최대 5곳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온다. 16일까지 현역 국회의원 선거법 위반 사건을 보면 당선 무효위기 3명, 당선 유효 범위 벌금형 10명, 무죄 2명, 1심 재판 진행 18명이다.
당선 무효형에 처한 현역 의원은 민주당 유동수 새누리당 김종태, 박준영 국민의당 의원 등 3명이다. 김 의원과 박 의원은 각각 배우자와 회계 책임자가 징역형을 선고받아 당선 무효 위기에 놓였고 유 의원은 자원봉사자에게 100만 원을 건넨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아 100만 원 이상 벌금이 최종심에서 확정될 경우 의원직이 상실된다.
특히 벌금형을 선고받은 의원들 중에는 당초 의원직 유지가 힘들 것이라고 여겨졌던 민주당 김진표, 진선미, 서영교. 김철민 의원은 100만 원 미만 벌금을 받거나 무죄를 받아 직을 유지하게 됐다.
또한 친박계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면서 ‘5적’으로 분류한 비박계 의원 중 장제원, 황영철 의원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지만 각각 80만원과 7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과거 검찰의 선거법 수사는 ‘고무줄 잣대 수사’라고 말할 정도로 정권 차원에서 정적을 죽이는 수단으로 활용한 사례에 비춰 상당히 이례적인 판결인 셈이다.
이뿐만 아니라 검찰의 정치인에 대한 개인 비리 수사 역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수원지검은 새누리당 이현재 의원이 관내 열병합발전소 건설과 관련해 업체 측에 부정청탁을 한 정황을 포착하고 이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 등 3곳에 대해 압수수색했다. 이 의원은 하남시 발전소를 건설하는 S사측에 편의를 봐주는 대신 그 대가로 지인이 운영하는 업체 두 곳이 일부 공사를 수주받게 하고 지인을 채용하도록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12월14일에는 LH 하남사업본부 사무실도 압수수색하면서 이 의원을 압박하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주 원내대표 선거에 나선 친박계 정우택 의원과 함께 러닝메이트로 나서 정책위의장에 당선됐다. 친박계로 분류되고 있지만 여권 내에서는 이진복 의원과 마찬가지로 친박에서 ‘중립지대’로 옮겨 탈박 직전의 인사로 알려져 있다.
또한 최근 경찰이 친박계 국회의원에게 불법적인 후원을 한 정황을 잡고 대한전문건설협회 건물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전문건설협회 간부들이 현직 친박계 국회의원인 P의원에게 수천만 원의 정치자금을 후원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원액 한도인 5백만 원을 넘기지 않으려고 가족이나 직원 이름으로 후원금을 쪼개 기부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검경의 정치인 수사를 보면 박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하고 있거나 아니면 함께했다가 ‘발’을 뺀 친박·탈박 의원에 집중된 것을 알 수 있다. 임기말이고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이지만 박 정권하에서 검사들의 수사가 대통령 측근이나 ‘배신자’로 낙인 찍힌 탈박 의원에 한해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미래 권력 X파일 ‘닫고’ 현재 권력 ‘열고’
이에 대해 국회 법사위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검찰이 우병우 전 수석도 없고 대통령도 탄핵된 이상 말을 바꿔타려는 것 아니겠느냐”며 “정권이 야권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높고 아무래도 현재 권력보다는 미래 권력에 줄을 대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이 인사는 “만약에 야권이 권력을 잡게 되면 그 때가서 (야권 인사에 대한)파일을 꺼내 ‘딜’을 할 수도 있고 안 되면 반대 쪽에 파일을 넘길 수도 있다”며 “검찰이 원래 권력에 상당히 민감한 집단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평했다. 김현웅 전 법무부장관과 최재경 전 민정수석이 국회 탄핵을 전후해 사의를 표하거나 임명된 지 얼마 안돼 청와대를 떠난 점 역시 같은 맥락이라는 주장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