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음원유출’에 판친다

고사 위기에 처한 가요계에 또 하나의 악재가 겹쳤다. 가수들의 음원이 잇달아 온라인에 불법 유출된 것. 발매를 앞둔 신보의 음원이란 점에서 충격은 더욱 크다. 음원유출로 직접 피해를 입은 가수는 물론 가요계 전체가 침체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음원유출 사고의 현주소를 되짚어본다.
“굉장히 많은 노력과 공을 들인 만큼 섭섭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하고 어른스럽게 대처하기로 했다. 음원을 유출시킨 당사자도 죄스러운 마음을 느꼈으면 한다.”
지난 11일. 광화문 KT아트홀에서 열린 7집 ‘루비,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쇼케이스에서 자우림 멤버들이 한 말이다. 자우림은 7집 전곡의 음원이 인터넷에 유출되는 사고를 겪었다. 앨범 발매를 불과 사흘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자우림만이 아니다. 올해 들어서만 원더걸스, 에픽하이, 이정, 진주, 더크로스, 트랜스픽션 등이 음원유출의 악몽을 경험했다. 모두 발매 되지 않은 앨범의 음원이었고 전곡이었다.
음원유출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피해 가수가 급증하고 음원유출 시기도 빨라진다는 점이다. 한 가수 매니저는 “예전엔 음반 발매 후 인터넷에 음원이 올라왔는데 지금은 음원이 먼저 뜬다”며 고개를 저었다.
음반 발매 전 음원유출
가요 관계자들이 꼽는 음원유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누가, 언제, 어떻게 인터넷에 올렸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음원이 앨범으로 완성돼 온오프라인에 공개될 때까지 거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
‘마스터’라 불리는 완성된 음원을 가장 먼저 접하는 이들은 해당 가수와 소속사 관계자들이다. 이어 음반제작사와 모바일콘텐츠업체에 전해진다. 음반제작사는 CD생산업체에, 모바일콘텐츠업체는 음원을 벨소리 등으로 바꿔주는 하청업체에 마스터를 보낸다. 이후 정식 앨범이 만들어지면 이중 일부는
판매에 앞서 방송국심의실과 가요담당 기자들에게 심의용과 홍보용으로 건네진다.
오프라인 음반의 경우 유통업체도 거친다. 결국 앨범 판매 전까지 대다수 가요 관계자들에게 음원이 공개되는 셈. 때문에 가수들은 음원유출 피해도 직접 파악하기보다 팬들의 제보로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사이버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해도 범인 검거는 쉽지 않다. 카페나 블로그 등에 음원을 올린 몇몇 네티즌에 대한 수사는 진행되지만 최초 음원 유출자를 찾아낸 경우는 거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수들은 음원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앨범 발매 전후로 사이버패트롤 등의 도움을 받아 음원유출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업체 관계자들에게 예방을 거듭 당부한다.
앨범 발매 일주일 전에 방송심의를 넣는 게 일반적이지만 요즘은 발매 후 심의를 신청하거나 홍보용CD를 돌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이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빅뱅 멤버 태양의 솔로음반 활동이 뜸한 이유가 “음원유출 방지를 위해 앨범 발매 후 방송심의를 넣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서태지도 앨범 발매 후 방송심의와 온라인 음원 공개를 진행해 음원유출을 막았고 3집 음원이 유출됐던 MC몽은 4집 발매 시 홍보용CD
를 배포하지 않았다.
가요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답답한 속내를 전했다.
음원유출로 인한 가수들의 피해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음반시장이 얼어붙고 온라인 매출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앨범 발매 전 음원유출은 치명타라는 설명.
가수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음원유출이 홍보용 자작극 아니냐’는 세간의 삐딱한 시선이다. 이에 대해 가요계 관계자들은 “가능성이 많지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인일 경우 적은 음반 수익을 포기하고 음원유출 자작극으로 인지도를 높일 수도 있겠지만 인기가수는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
한 가수 매니저는 “자우림, 에픽하이, 원더걸스 등은 일정수준 이상의 음반 판매와 온라인 수입이 가능한데 고의로 음원유출을 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신인이라도 자식 같은 음악을 의미 없이 공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가수들 창작의지 꺾여
음원유출이 피해 가수뿐 아니라 가요계 전반을 침체시킨다는 점에서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크다.
1~2년 이상 공들여 만든 음악이 아무런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불법 업·다운로드 되는 상황에 창작 및 제작의지가 꺾인다는 것.
실제 더크로스 멤버 김경헌은 음원유출 사고 후 팬카페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음악 활동에 대한 회의감까지 든다”는 글을 올렸다.
모 음반 기획자는 “국내시장에 한계를 느끼고 대만, 중국, 일본 등으로 눈을 돌린 제작자들이 적지 않다”면서 “확실한 음원유출 예방법과 불법다운로드에 대한 네티즌의 무감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대다수 음악 관계자들이 조만간 밥줄을 놓아야 할 상황이다”고 전했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별 의미 없이 행한 음원유출과 불법다운로드에 가수와 가요계 더 나아가 한국 문화가 죽어가고 있다.
신혜숙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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