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포스트 탄핵’정국의 여의도는 개헌정국에 돌입했다. 여야를 떠나 ‘개헌파(헌법을 바꾸자)’와 ‘호헌파(헌법을 수호하자)’로 나뉘어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개헌 찬반 뒤에는 차기 대권을 거머쥐려는 대권욕이 숨겨 있다. 호헌파는 정권교체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야권 잠룡군이, 개헌파는 여권 및 제3지대 군소잠룡군이 진용을 이루고 있다. 특히 개헌파는 ‘문재인 대세론’을 무력화시켜 정계개편을 위한 수단으로 개헌을 몰아붙이고 있다. ‘문재인 대망론’이 사그라들면 ‘반문재인-반박근혜’ 세력이 주축인 제3지대에서 배출한 제3후보가 대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개헌 정국에 숨겨진 대권 방정식을 풀어보자.
- 反반기문보다 反문재인 전선 개헌파 ‘대동단결’
- 대통령 임기 2년6개월 단축, 2020년 총대선 일치案
민주당 내 잠룡군은 개헌과 관련, 김부겸 의원을 제외하고 ‘시기상조론’을 내세우고 있다. 조기대선 정국으로 흐를 수 있는 상황에서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고 개헌 주장도 순수하지 못해 차기 정권 몫으로 남겨두자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인사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해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반대하는 입장은 대동소이하다. 야권 내 정권교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잇는 문 전 대표는 일관되게 ‘대선 전 개헌 불가론’을 주창하고 있다. 반문 진영에서는 ‘대통령병에 걸렸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문 전 대표 입장은 강경하다. 여야 대선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데다 조기대선 체제로 흐를 경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어 대선판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개헌은 부담스럽다. 대신 문 전 대표는 심도 있는 개헌 논의를 하기 위해 ‘시기’를 잘 따져야 한다. 지금은 집권 여당 세력이 정권 연장을 위한 정략적 술수로 개헌을 제기한 만큼 순수하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탄핵정국’속 유력한 야권 대선주자로 부상한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개헌에 대해 문 전 대표와 비슷한 입장이다. 다만 이 시장의 경우 이번 대선을 차차기 대권 도전을 위한 ‘몸집 키우기’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문 전 대표와는 출발선이 다르다.
탄핵정국에 이어 개헌정국에서도 진보 진영의 새로운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이 성남시장이 문 전 대표의 대체재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보완재라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차차기를 노리는 이 성남시장에게는 안희정, 김부겸, 박원순 3인방이 더 신경쓰일 수밖에 없다.
李·安·朴·문재인 ‘개헌 품으로, 속내는…’
안 충남지사 역시 탄핵심판이 끝나자마자 대선이 있는데 헌법 논의를 하는 데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안 지사는 평소 ‘문재인 대세론’이 사그라들경우 ‘대체재’가 될 것이라며 ‘선발투수론’까지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탄핵 정국에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한참 뒤지면서 그 자리를 내주고 있는 모습이다. 야권에서는 안 충남지사가 ‘포스트 문재인’을 준비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반면 박 시장은 개헌에 대해 ‘신중모드’에서 ‘대선 전 개헌불가’로 문 전 대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어차피 이번 대권 도전이 요원해진 이상 문 전 대표와 함께 정권 교체를 이뤄내 집권 여당 후보로서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자는 분위기다. 결국 이들 3인방은 ‘조기대선’이 치러지는 것을 전제로 대통령직에 가깝게 근접한 문 전 대표와 개헌에 보조를 맞추면서 최대한 누릴 수 있는 권력적 이득을 취하려는 모양새다.
반면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12월13일 “촛불 시민혁명은 개헌으로 완성돼야 한다”며 “즉각적인 개헌 논의를 시작하자”고 주장해 친문 잠룡군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 의원은 “촛불의 함성으로 대통령이 탄핵된 지금부터 개헌과 국가 대개혁을 위한 국민운동을 시작하려 한다”며 “국회에서 조속히 개헌특위가 가동돼 각 분야 개혁과제에 대한 논의가 속도 있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헌은 피할 게 아니라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상 김 의원의 주장은 문 전 대표와 친문 잠룡군과 마찰이 불가피한 면이 있다. 오히려 김 의원의 주장은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반문재인 연합전선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여야 탈당파로 손학규, 정의화, 남경필, 이재오 등 제3지대 인사들과 민주당 내 김종인, 새누리당 김무성, 국민의당 박지원 등이 개헌 찬성파로 분류되고 있다.
무엇보다 제3지대 인사들의 경우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의 일환으로 반문재인 연대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 선봉에는 ‘제7공화국’을 주창했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있다. 손 전 대표는 13일 자신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재단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주권개혁회의’를 구성할 것을 밝히며 개헌을 고리로 한 여야 정치권의 연대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민주당 내에서 ‘킹메이커’로 알려진 김종인 전 대표는 손 전 고문과 만찬회동을 통해 개헌의 조속한 추진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민의당에서는 개헌론자인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은 한 발 더 나아가 ‘개헌’을 고리로 한 ‘안철수-손학규 연대론’에 대해 “개헌은 우리 사회가 21세기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노선에 대한 것이어서 그런 연대는 대단히 환영할 만하고 바람직하다”고 격하게 공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개헌’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안철수 전 대표 입장도 미묘하게 바뀌는 분위기다. 안 전 대표는 13일 “우선 개헌은 필요하다. 논의는 시작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겨뒀다. 다만 그는 “개헌에 대한 시간적 여유가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고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법은 다음 대선 때 공약으로 내세워 그 과정에서 치열하게 논의해 결론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개헌에 대해 우호적인 새누리당 비박계인 김무성 전 대표가 탈당하고 민주당 개헌파인 김종인·김부겸 세력이 함께할 경우 ‘반문재인 연대’ 형성에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이럴 경우 안 전 대표의 개헌에 대한 입장 변화가 있을 수 있어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헤쳐모여식 신당창당’ 흐름은 중대 국면을 맞을 공산이 높다.
‘문재인 포위론’ 넘어야 할 산은…
하지만 반문·반박 진영의 개헌을 통한 ‘문재인 포위론’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그 중에서도 조기대선 정국에 전당대회, 신당창당에 대선경선, 그리고 탄핵심판 결정까지 맞물려 있어 개헌을 추진할 시간과 동력이 국회 내 있느냐는 회의론이 가장 폭넓게 퍼져 있다.
제3지대에서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는 한 인사는 이와 관련해 “물리적으로 개헌이 힘들다면 대통령 임기를 21대 총선인 2020년 4월까지 맞추는 것에 대해 대선 주자들이 공식적으로 공약을 걸면 된다”며 “대통령 임기는 2년 반으로 줄겠지만 이럴 경우 친문 세력을 제외한 친박, 비박, 제3지대 세력 어디든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이 인사는 “기본적으로 국회의원 임기를 줄이는 것이 아닌 대통령 임기를 줄이자는 것이기 때문에 여야 국회의원들 역시 반대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문 전 대표를 제외한 모든 후보들이 ‘대통령 임기 단축과 함께 4년 중임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대선 공약으로 약속을 할 경우 친문 진영도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문 전 대표를 제외한 대선에 나서는 여타 잠룡군이 과연 자신의 임기를 단축하면서까지 공동전선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개헌 찬반 뒤에는 차기 대통령과 현직 국회의원 간 임기 단축의 딜레마를 안고 있어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2년마다 치르는 선거로 인해 막대한 국민혈세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2020년 4월부터 총대선을 일치시키자는 게 개헌파의 요지다.
개헌안에 어떠한 권력구조를 담고 있든 차기 정부부터 개정 헌법을 적용할 경우 20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는다. 여야 국회의원 다수가 선호하는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를 채택해 차기 정부에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새로 원구성을 해서 총리를 뽑아야 하는 만큼 국회 해산이 불가피하다.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꾼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켜 만성적인 정쟁에서 오는 국정 난맥상을 해소하고 선거비용을 줄이자는 취지를 살리려면 2017년 12월 대선 직후 2018년 4월 21대 국회의원을 새로 뽑아야 한다. 이럴 경우 20대 국회의원 임기는 절반이 날아간다. 지난 1987년 개헌 때도 당시 12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1년 줄었고 그에 앞선 1980년 개헌 때는 국회의원 임기가 1년 7개월에 불과했다.
20대 국회의원의 임기를 보장하는 방법도 있다. 개정 헌법을 차기 정부가 아닌 차차기 정부에서부터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차기 대통령의 임기가 줄어들게 된다. 2020년 4월 열릴 총선 일정에 맞춰 20대 대통령 선거가 2019년 12월에 열려야 하기 때문이다. 19대 대통령의 임기는 무려 3년이나 깎이는 셈이다.
이에 앞서 제3지대 관련 인사가 언급한 것처럼 차라리 2017년 중순에 조기대선이 치러질 경우를 대비해 대통령 임기를 2019년 12월로 맞춰 2년 6개월짜리 대통령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 20대 국회의원 임기를 보장하면서도 현재 대통령에 유력한 문재인 전 대표를 견제하기위한 고도의 개헌 전략인 셈이다. 또한 제3지대에서 제3후보를 띄우기 위한 고도의 계산도 깔려 있다.
‘개헌’고리 2017 짯짓기 대선 본격 막올라
개헌과 관련해 넘어야 할 산은 이뿐만이 아니다. 내년 1월 귀국이 예상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개헌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대선 정국의 변수다. 현재까지 반 사무총장의 개헌에 대한 입장은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잘 알고 있고 국민들의 개헌에 대한 찬성률이 높다는 점에서 반대할 여지는 낮다.
다만 반 총장이 문 전 대표의 입장과 함께할지 아니면 제3지대 개헌파와 보조를 맞출지는 미정이다. 하지만 반 총장의 행보에 따라 정국이 요동칠 수 있다. 일단 현 대선 구도에서 반 총장이 문 전 대표와 함께 할 공산은 낮다. 반 총장은 제3지대의 개헌 찬성파와 함께 반문 세력의 중심에 설 공산이 높다.
아니면 신당창당을 통해 개헌을 하지 않으면서 분권형 대통령제 효과를 낼 수 있는 책임 총리제를 도입해 자신을 중심으로 ‘헤쳐모여식 정계개편’을 주도할 수 있다. 손학규 세력뿐만 아니라 안철수 세력 등 어느 세력과도 연대할 수 있다. 사실상 DJ대통령-JP총리의 연장선인 셈이다. 바야흐로 개헌정국을 맞이해 여야 대선 주자 간 ‘짯짓기’(합종연횡) 대선이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