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 상황 연속 발생, 가슴 쓸어내기 다반사

인기리에 종영한 SBS 드라마 <온에어>를 통해 알 수 있듯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되기까지 제작진 사이엔 무수히 많은 갈등이 생긴다. 영화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제작진이 예상치 못한 각종 ‘사건사고’로 작품이 구설수에 오르고 심할 경우 제작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내외적인 ‘변수’로 위기를 겪었던 영화와 드라마를 살펴본다.
인기작 <이산> 촬영 중단?
MBC 인기 사극 <이산>이 최근 촬영 중단 위기를 겪었다. 종영이 임박한 시기에 벌어진 일이라 제작진은 물론 팬들까지 가슴졸였다.
제작진과 팬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한건 이번 위기가 내부적인 문제가 아닌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 파업의 여파였다는 점이다.
지난 해 11월부터 출연료와 복지지원금 등을 두고 MBC와 갈등을 벌이던 한예조는 파업을 예고했고 지난 달 26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이산>에 출연 중이던 한예조 소속 연기자들도 동참했다. 당시 한지민은 한예조 소속임에도 “끝까지 촬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주연배우만으로 드라마를 만들 순 없는 법.
결국 <이산> 팀은 25일과 26일 오전 촬영을 접어야 했다. 다행히 26일, 27일 방영분이 완성된 상태였고 MBC와 한예조가 26일 저녁 극적으로 타협해 고비는 넘겼지만 자칫 <이산> 팀은 ‘방송 중단’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을 뻔 했다.
방송 관계자는 “<이산>팀도 적잖이 놀랐을 거다. 자신들 의지와 상관없이 촬영이 중단된 것 아닌가. 더욱이 촉각을 다투는 드라마 촬영 일정 중 이틀을 허비한 건 큰 손해”라며 “드라마 제작 중 얼마나 많은 해프닝이 일어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고 전했다.
비단 <이산>만이 아니다. 여러 드라마와 영화가 예상치 못한 내외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심한 경우 제작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진이 가장 빈번하게 맞닥뜨리는 복병은 ‘배우의 부상’이다.
촬영 과정에서 배우들의 크고 작은 부상은 끊이지 않는다. 액션물의 경우 배우 부상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시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늑대>, 배우 부상에 방송 중단
실제 다치고도 응급처치만 받은 후 촬영하는 소위 ‘부상투혼’을 펼치는 배우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근에도 김승수, 재희, 채림 등의 부상투혼 소식이 전해졌다.
김승수는 운동 중 오른쪽 다리 아킬레스건이 파열돼 전치 6개월에 달하는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SBS <우리 집에 왜 왔니>에 출연 중이라 촬영을 강행했다.
가슴까지 등장하는 신은 직접 연기하고 전체 화면은 대역을 쓰는 방식이었다. 최근 종영한 K-2TV <아빠 셋 엄마 하나>의 재희 역시 벽을 치는 장면 촬영 중 손이 찢어져 9바늘을 꿰맸다. 치료를 받고 곧바로 촬영에 합류했음은 물론이다.
K-2TV <강적들>에서 청와대 경호원으로 출연 중인 채림은 액션신 촬영 도중 허리를 다쳤다. 연출을 맡은 한준서PD가 이틀 정도 휴식을 취하라고 했지만 채림은 진통제만 맞고 촬영장으로 돌아와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배우의 의지가 아무리 굳건해도 부상이 심각하면 촬영이 불가능하다.
조동혁은 코뼈에 금이 가는 부상으로 K-2TV <미우나 고우나> 촬영에 일주일 간 참여하지 못했고 이덕화도 K-2TV <대조영> 촬영 중 낙마 사고로 앞니 4개가 부러져 입원치료를 받았다. 당시 이덕화는 8주 진단을 받았지만 3주 만에 퇴원, 촬영을 강행했다.
배우 부상으로 최악의 경우 제작 자체가 무산되기도 한다. MBC <늑대>가 대표적인 사례.
에릭, 엄태웅, 한지민이 주연을 맡은 <늑대>는 기대 속에서 2006년 1월 첫 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4회 만에 종영했다. 촬영 도중 에릭과 한지민이 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고 재방송 여부를 두고 우여곡절을 겪다 결국 ‘방송 중 종영’이라는 사태를 맞은 것.
같은 해 방영된 MBC 드라마 <진짜진짜 좋아해>는 방송을 앞둔 상황에서 여주인공 유진이 팔 골절을 당해 주인공 교체 여부가 논의되기도 했다.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배우들의 부상은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일이고 원치 않는 일이다”며 “때문에 이로 인해 차질이 생겨도 배우를 탓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배우가 부상으로 장기간 촬영하지 못할 경우 내용 수정이 불가피해 어려움이 많긴 하다. 작품성에도 영향을 받는 만큼 신경이 많이 쓰이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최근 들어 빈번하게 벌어지는 돌발 상황은 ‘소송’이다.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각종 단체 및 개인이 자신들과 관련된 내용을 두고 강력하게 항의하는 것.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MBC <뉴하트>도 이런 상황을 겪었다.
예상 못한 소송에 ‘움찔’
<뉴하트>는 올 1월 대한개원한의사협회로부터 신용훼손죄로 고소를 당해 관심을 모았다.
“6회와 7회에서 한약팩을 팽개치는 등 일부 내용이 한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해 한의사의 신용을 크게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방송 후 <뉴하트> 제작진은 한의사협회의 문제제기를 받고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개제했지만 문제 장면이 iMBC ‘다시보기’에서 그대로 방송돼 고소로까지 이어졌다.
실화 소재 드라마와 영화의 경우 특히 잦은 소송에 휘말린다.
해방 전후 한국 현대사를 그린 K-1TV <서울1945>는 2006년 故 이승만 전 대통령과 故 장택상 전 총리 유족으로부터 “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민·형사 소송을 당했다.
2003년에는 탤런트 최민수가 부친 최무룡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SBS <야인시대> PD와 작가, 방송사 등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형사고소를 한 바 있다.
SBS 인기드라마 <쩐의 전쟁>과 <내 남자의 여자>는 표절 시비에 휘말렸었다.
영화의 경우 1991년 발생한 故 이형호 군의 유괴살해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그놈 목소리>가 이군의 어머니 A씨로부터 고소를 당해 관심을 샀다. A씨는 자신의 육성이 영화에 사용돼 사생활이 침해됐다며 <그놈 목소리>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은 “A씨의 음성을 삭제, 변조하지 않고 DVD나 비디오를 제작,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실미도>는 영화 모티브가 된 일명 ‘684부대’ 훈련병 유족들로부터 “684부대원들이 범죄자로 묘사돼 사망자와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고 <그때 그 사람들>은 故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박지만씨로부터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받았다.
홍보사 관계자는 “작품의 성공 여부를 떠나 드라마나 영화가 소송을 당하면 제작자, 관계자들은 난감하다”며 “까다로운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고 부정적인 시선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때문에 실화 소재 작품은 제작과정에 더욱 주의를 기울인다”고 덧붙였다.
내부적 변수도 작용
캐스팅 번복, 제작진간 갈등 등 내부적인 변수도 무시할 순 없다.
오는 16일 첫 방송을 앞둔 MBC <밤이면 밤마다>는 ‘왕주현’ 역을 두고 두 차례나 캐스팅이 번복됐다.
왕주현은 이동건을 사이에 두고 김선아와 함께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인물. 애초 이수경이 낙점됐으나 갑자기 출연을 번복했고 이수경 대신 합류할 것 같던 박지윤마저 고사했다. 이에 김정화가 최종 캐스팅됐다.
권상우, 고현정 주연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던 SBS <대물>은 내부적인 문제로 제작 자체가 불투명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사인 SBS와 제작사 이김프로덕션의 의견 충돌, 제작사와의 갈등으로 연출을 맡을 예정이던 김형식PD 하차 등이 발생하면서 제작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
그런가하면 SBS 사극 <왕과 나>는 잦은 내부적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었다. 지난 해 말 극중 ‘인수대비’ 역을 맡은 전인화 남편이자 탤런트 유동근이 ‘쪽대본’ 문제로 언쟁을 벌이다 담당 CP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1월엔 김재형PD가 건강상의 이유로 연출 자리를 비웠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
이같은 내외부적 변수에 대해 연예 관계자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에 워낙 많은 사람이 엮여있는 만큼 아무 일도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
물론 부정적 변수가 현장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치긴 한다. 폭행을 비롯한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길 경우 제작진의 사기가 저하되는 건 당연지사. 제작사 관계자는 “좋은 일로 화제를 모으면 촬영장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NG가 잇달아도 웃음이 나기 마련이다”며 “반대로 부정적인 변수가 생기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작품이 흔들리는데 누가 기운이 나겠나”라고 말했다.
흔히 연예 관계자들은 ‘흥행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의미로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표현을 쓴다. 이 말은 제작과정에도 적용된다. 작품이 완성되고 방영 혹은 상영되기 전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어떤 일이 벌어지던 시청자 혹은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불필요한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주의와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촬영장 분위기는 생각보다 민감해 작은 일에도 업다운 된다”며 “하지만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맡은 역할을 다하는 게 진짜 대중예술인, 배우의 자세인 것 같다”는 한 탤런트 매니저의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신혜숙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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