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연기가 우선이죠!

개성 강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한 윤진서가 이번엔 호스트를 사랑하는 여자로 변신했다. 영화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에서다. 화려한 삶을 꿈꾸지만 비루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청춘들을 그린 이 영화에서 윤진서는 상반신 노출까지 감행하며 연기 열정을 불살랐다. 오직 연기와 영화만 생각하고 싶다는, ‘뼛속까지 배우’인 윤진서를 만났다.
윤진서는 독특한 매력의 소유자다. 비밀을 간직한 것 같은 신비한 얼굴과 탄탄한 연기력이 어우러져 여느 청춘스타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맡은 역할도 평범치 않다. 남동생을 사랑한 소녀(올드보이), 바람난 유부녀(바람피기 좋은 날), 소중한 이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는 여고생(두사람이다) 등을 연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선호하는 영화도 “작품성과 묘한 재미가 있는” 유럽이나 일본 작품.
그런 윤진서에게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로 칸 영화제에 초청돼 화제를 모은 윤종빈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비스티 보이즈>는 호감갈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윤 감독의 열정과 영화가 가진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것처럼 비릿한 날 것의 감성”에 자극을 받은 것.
시나리오 읽고 감독에 출연 타진
“영화잡지에서 감독님이 차기작을 위해 호스트바 웨이터로까지 일했다는 기사를 읽고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감독님에 대한 호기심에 시나리오를 구해 읽은 후 제가 먼저 출연의사를 전했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럭셔리한 공간인 청담동의 밤을 주름잡는 호스트들. 멋진 인생을 꿈꾸지만 비루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리얼하게 그린 <비스티 보이즈>에서 윤진서는 호스트 승우(윤계상)와 사랑에 빠지는 유흥업소 종사자 ‘지원’을 연기한다.
자신이 모르는 ‘밤의 세계’에 속한 지원이 되기 위해 윤진서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생활하며 그들을 이해하려 했다.
“강남에 있는 유흥업소 종사자들 거주 밀집 지역에서 3~4개월 동안 지내면서 그 사람들을 관찰하고 동화되려 했어요. 생활패턴을 맞추려고 아침에 자고 밤에 깼는데 그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윗집, 아랫집, 옆집 등 보이는 사람 모두 감정적으로 억눌려 있는 것 같았는데, 그걸 보고 느끼고 간
직하는 것도 버거웠고요.”
준비과정 못지않게 촬영도 어려웠다. 베드신과 폭행당하는 장면 등 육체적으로는 물론 감정적으로도 ‘센’ 장면이 많았던 탓이다. 리얼한 연기를 위해 촬영기간 내내 술도 달고 살았다.
윤 감독, 하정우, 윤계상과 시간이 날 때마다 술을 마시며 영화와 연기에 대해 논했고 베드신을 비롯해 취한 상태로 연기한 것도 수차례다. “술을 빼고는 <비스티 보이즈>를 얘기하기 힘들다”는 윤진서는 “소주를 못 마셨는데 지금은 주량이 소주 1병반이다”며 웃었다.
<비스티 보이즈>에서 윤진서는 <올드보이>에 이어 다시한번 상반신 노출을 감행했다. 여배우에게 노출은 민감한 문제지만, 그녀는 의외로 담담하게 촬영 계기를 밝혔다. “작품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다”는 말에서 뜨거운 연기열정과 강단이 느껴졌다.
“노출신 제의를 받고 촬영하면서 고려해보겠다고 했는데 지원을 표현하는데 적절하다 싶어서 진행했어요. 튀거나 과격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만족하냐는 질문에는 글쎄요. 영화 흐름상으로는 좋은 것 같아요.”
못 마시던 술, 주량 한 병 반으로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 받는 젊은 여배우 중 한명이지만 윤진서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출연작 선택 때 지나치게 작품성에 무게를 두는 자신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만 기준을 바꿀 생각은 없다. 오히려 배우가 인기로 판단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배우를 흥행이나 인기로 평가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실을 느낄 때면 허탈하고 슬프기도 한데 언젠가는 제 선택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거라 믿고 지금은 열심히 연기만 하려고요.(웃음)”
세상이 정한 기준 대신 자신만의 기준, 배우로서의 기준으로 사는 윤진서의 선택은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다. <망종>과 <경계>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한국 진출작 <이리>에 캐스팅돼 촬영까지 마친 것.
“<비스티 보이즈>와 <이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다”는 윤진서의 한층 깊어진 내공이 앞으로 어떤 연기를 빚어낼 지 궁금하다.
신혜숙 프리랜서 기자 tomboysh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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