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돕는 ‘고발 프로그램’ 인기 비결
사회적 약자 돕는 ‘고발 프로그램’ 인기 비결
  • 신혜숙 프리랜서 기자
  • 입력 2008-03-13 11:35
  • 승인 2008.03.13 11:35
  • 호수 724
  • 5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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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지금 범죄와 전쟁 중!’

방송이 범죄와의 전쟁에 한창이다. 각종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시사프로그램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강력사건 용의자를 공개 수배해 검거에 도움을 주거나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를 법적·경제적으로 돕는다. KBS 2TV <특명 공개수배>와 SBS <긴급출동 SOS 24> 얘기다. 방송의 공익성을 실천하고 사회정의구현에 한몫하고 있는 두 프로그램의 제작과정과 의미를 살펴본다.


▶KBS 2TV <특명 공개수배>

전 국민이 제보자…범인 압박

방송프로그램은 시청률로 인기와 의미가 평가된다. 하지만 매주 목요일 밤 8시 50분에 방송되는 KBS 2TV <특명 공개수배>는 예외다.

실제 사건용의자를 공개 수배해 시민들의 제보로 붙잡는 게 가장 큰 목표여서 시청률보다는 검거율이 중요하다. 모체인 <공개수배 사건 25시>와 같은 흐름이다.

프로그램을 맡는 이제헌 PD 역시 “범인이 잡혔을 때 제작진은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지난 3일 <특명 공개수배> 홈페이지엔 ‘성남 11억 원대 지입차 사기사건 범인검거’란 팝업창이 떴다.

2007년 10월에 공개 수배한 사기사건 용의자가 방송 넉달 만에 시민제보로 경기도 용인 모 아파트에서 붙잡힌 것.

이로써 <특명 공개수배>는 3월 5일 현재까지 공개 수배된 용의자 72명 중 24명을 검거하고 10명이 자수하는 기록을 세웠다. 검거율은 47%. 이는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꼼꼼하고 치열한 제작과정이 만들어낸 성과다. 6명의 PD가 2인 1조를 이뤄 사건 당 평균 3주쯤 걸려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

제작진은 사건선정 때부터 신중을 꾀한다. 경찰청 또는 경찰에서 공개수배하거나 시청자가 제보한 사건 중 살인, 강도, 강간 등 5대 강력범죄 용의자를 최우선으로 한다.

5대 강력범죄에 속하지 않아도 재발 우려가 높은 사건,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신종범죄도 긴급아이템으로 분류된다.

특히 신종범죄의 경우 범죄예방과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빨리 다루는 경우가 많다.

방송할 사건이 결정되면 제작진은 현장답사와 수사관들의 수사기록 참조는 물론 뒷얘기까지 수집, 사건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렇게 구성된 내용을 다시 한 번 점검한 뒤에야 피해자인터뷰와 재연촬영 등을 시작한다.

제작진의 열정은 방송이 시작되면 더욱 뜨거워진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특명 공개수배>는 회당 평균 2명의 용의자를 공개 수배한다.

재연장면과 CCTV 등의 실제자료를 섞고 재연장면에 담당형사가 직접 출연하는 방식 등으로 사실감을 높인다.

‘범인을 잡겠다’는 제작진의 의지는 방송 중 수 차례 용의자얼굴과 인상착의를 보여주고 수시로 제보방법을 알려주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방송이 진행되는 스튜디오엔 각 사건의 담당형사가 한명씩 참석, 신빙성 높은 제보가 접수되면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간다.

아쉽게도 아직 현장출동으로 범인을 붙잡은 적은 없다. 하지만 의지와 자세는 높이 살만하다.

전화제보를 받는 이들만 15명에 달한다. 방송 중 제보건수는 평균 300건. 전화제보 100여건과 인터넷 및 모바일제보 200여건이다.

제작진은 이를 경찰청과 공유할 뿐 아니라 취합해 경찰에게 넘겨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특명 공개수배>에 대한 시청자들 반응은 폭발적이다. 시청자들은 이창진·고민정 아나운서의 진지한 진행이 이끄는 방송을 보면서 범죄의 심각성을 온 몸으로 느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제보의지를 불태우기도 한다.

높은 검거율, 방송 뒤 압박감을 느낀 용의자의 자수소식이 이어지면서 제보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매주 <특명 공개수배>를 본다는 배현경(여·30)씨는 “처음엔 재미로 봤는데 일반인들의 제보로 흉악범들이 잡히는 걸 보면서 나도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보다 낫다’는 평까지 듣고 있지만 <특명 공개수배> 제작진은 “범인은 우리가 잡는 게 아니다. 우리는 시청자와 경찰을 이어줄 뿐”이라며 몸을 낮춘다. 이 PD는 “높은 검거율도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시청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처럼 좋은 반응을 얻지만 제작에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가장 큰 걱정은 모방범죄다. 이 PD에 따르면 범죄수사물 제작 때 주의할 점은 선정성, 폭력성, 모방범죄다.

선정성과 폭력성은 자체심의와 자문위원 조언 등으로 조절이 가능하나 모방범죄는 제작진도 모르는 사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범죄과정을 방송에서 모두 생략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고민이다.

이 PD는 “모방범죄예방을 위해 구체적인 범죄수법 노출은 최대한 자제한다. 신종범죄의 경우 특히 신중하게 다룬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인터넷, 전화 등을 이용한 신종사기는 서민들에게 광범위한 피해를 줄 수 있음에도 가볍게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명 공개수배> 제작진의 열정과 이에 제보로 답하는 시민들. 그들이 있기에 범죄자들이 숨을 곳은 자꾸 좁아지고 있다.


▶SBS <긴급출동 SOS 24>

사회 약자 구하는 ‘솔루션 프로그램’

<특명 공개수배>가 경찰과 시민의 ‘중계자’ 역할을 한다면 매주 화요일 밤 11시 5분에 전파를 타는 SBS <긴급출동 SOS 24>(이하 <긴급출동>)는 ‘해결사’역할을 한다.

제작진이 각종 폭력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를 취재하는 건 물론 이들에게 법적·경제적 도움까지 주기 때문이다. 사건해결 뒤 사후관리도 한다. ‘전천후 솔루션프로그램’이라 이름 붙일 만하다.

매회 1~2사건을 다루는 <긴급출동>은 다양한 형식으로 이뤄진다. 피해자들 생활을 촬영한 초반, 제작진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인터뷰하고 설득하는 중반, 각 분야 전문가로 이뤄진 솔루션위원회 회의를 통해 피해자에게 실제 도움을 주는 후반이 일반적인 구성이다.

사건 해결 뒤 피해자들의 달라진 모습과 상황도 꾸준히 알려준다.

이런 방송형식을 통해 <긴급출동>은 시청자들에게 피해자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하고 피해자를 위한 해결책이 체계적으로 마련됐음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후원도 불러일으킨다.

방송형식이 복합적이고 프로그램성격이 적극적인만큼 제작과정은 험난하다. 제작인원수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긴급출동>은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허윤무 PD를 비롯, 33명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18명이 PD, 15명이 작가다.

편당 제작기간은 5주에 이른다. 1시간 방송을 위한 5주 제작이 다소 길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허 PD는 “그것도 짧다. 상황에 따라 더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제작과정을 보면 허 PD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긴급출동>은 제보 받은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피해자나 그 주변인들이 신고하면 제작진이 위급한 정도, 사실여부 등을 확인한 뒤 취재에 나선다. 이때부터 제작진의 고생이 시작된다. 피해자 상황,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 등을 샅샅이 파악하기 위해 촬영에만 2~3주 매달린다. 중간 중간 전문가들에게 촬영내용을 보여주며 사건원인과 심각성, 피해자와 가해자의 심리상태 등도 분석해야 한다.

가장 힘든 건 피해자와 가해자 설득, 피해자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일이다. 대다수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초반엔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는데다 “남의 집안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가해자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기 일쑤여서다.

폭력현장을 취재하는 만큼 제작진이 위험한 경우도 많을 텐데 제작진은 피해자를 먼저 걱정한다.

허 PD는 “우리는 경호팀과 함께 있어 위협받을 일이 별로 없으나 피해자를 안전하게 구해야 할 때 큰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뭣보다 피해자를 돕고 근본적인 사건해결에 심혈을 기울인다. 각 분야 전문가 31명으로 이뤄진 솔루션위원회를 둬 해당사건에 맞는 전문가들과 여러 번 회의를 거듭하며 해결책을 찾는다.

사회복지사를 통해 피해자를 계속 관리한다. 또 사안과 지역에 따라 새로운 관계자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이런 점이 일반 시사프로그램과 <긴급출동>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몸을 사리지 않는 제작진의 노력은 방송에 대한 열렬한 반응으로 돌아온다. 2005년 11월 첫 전파를 탄 <긴급출동>은 지금까지 매주 방송 때마다 화제와 논란을 낳고 있다.

‘노예 할아버지’ ‘쓰레기더미 4형제’ 등 믿을 수 없을 만큼 처참한 생활을 하는 피해자들을 통해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고 사회적 폭력에 대한 경각심도 높였다. 시청자들은 피해자들을 보며 충격과 슬픔,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이는 후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려운 이들을 도우려는 <긴급출동>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방송초기엔 제보 받은 사건들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엔 다르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비중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긴급출동>이 다루는 사건비중은 제보 70%, 기획 30%.

허 PD는 “가정폭력도 중요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도 심각하다. 노예 할아버지, 복지시설 문제 등이 모두 인권침해에 해당 된다”면서 “앞으로 폭넓은 사회문제를 다루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소외계층의 고통을 가까이서 지켜본 허 PD는 사람들의 노력이 좀 더 커지길 바라는 마음도 나타냈다.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법률정비는 잘 돼 있지만 일부 관계자들이 이를 충실하게 집행하지 못한다는 것.

“경찰이나 공무원들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애정어린 눈으로 피해자들을 지켜본다면 문제해결은 더욱 쉬워질 것이다”는 허 PD의 말에서 <긴급출동>이 나아갈 길이 보인다.

신혜숙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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