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적십자사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 인정”
적십자회비 어디에, 어떻게 쓰였나 의문점 증폭
[일요서울 | 오유진 기자] 연말연시가 되면 집집마다 대한적십자사가 보내는 적십자회비 모금 통지서가 날아온다. 이 통지서는 전기세, 가스비 등과 같이 지로용지 형태로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의무가 아닌 개인의 선택으로 납부하는 ‘성금’ 임에도 불구하고 (지로용지 형태 때문에)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주장한다. 또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대한적십자사까지 만연하게 퍼져 투명성에 대한 의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일요서울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대한적십자사에 대한 의혹들을 파헤쳤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연말이면 대한적십자사 고지서가 날아온다”며 “최근에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이란 걸 알고 현재는 납부하지 않지만 매번 날아오는 고지서가 신경쓰인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B씨 역시 “지로용지로 날아와 세금처럼 무조건 내야 하는 줄 알았다”며 “안 내면 연체료가 붙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았다”고 말했다.
일부 국민들은 연말이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적십자회비가 의무 납부인 줄 알고 매년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도 ‘적십자회비’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적십자회비 의무’라고 검색되며, 회비 의무 여부에 대한 질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누리꾼은 “매년 12월마다 이런 지로 영수증 받으시죠. 세금 아니니 안 내셔도 되는 거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계속 발생하자 대한적십자사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선의에 의해 납부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세금이 아닌 지로 형식이라 젊으신 분들과 처음 받아보신 분들,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오해를 일으키는 고지서를 만들어 배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이 비용을 아껴서 어려운 분들을 도와주는 게 더 홍보가 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실제 대한적십자사에서 ‘지로’ 형태의 고지서 납부 비용은 지난해 적십자 회비 모금액 479억 원 기준인 5% 약 24억 원 정도가 사용됐다.
강제성·투명성 의심
서울 같은 대도시의 경우 대한적십자사 고지서만 날아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소도시의 경우 직접 모금을 하는 등 반강제성을 지닌 것 아니냐는 문제점 등이 드러났다. 지난해까지 업무 지원금을 통해 수금을 해왔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는 개선됐지만 ‘2016 적십자회비 모금 사무처리 지침’을 살펴보면 각 시·도별로 통장, 이장, 부녀회장에게 목표 금액을 정해 회비 모금을 해왔다.
대한적십자 관계자는 “목표금액 자체에 대한 부담을 안 가지게 지난해부터 업무 지원금 등을 모두 없앴다”고 말했다.
또 국민들은 해당 적십자회비가 구체적로 어디에 쓰이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점 등을 적십자회비 납부 거부의 큰 요인으로 꼽았다. 현재 대한적십자사의 홈페이지에는 성금 총액, 적십자회비가 어디에 쓰였는지 등을 공지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명시돼있지 않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대한적십자사에 계정과목 불일치 등의 문제가 드러난 만큼 회계규정을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적십자사는 외부 용역을 통해 국제회계기준에 맞춰 회계규정을 변경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항들로 인해 개선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작업시간이 많이 걸린다. 계약을 하고 있다. 전 부서들이 협의하고 기존에 사용했던 회계프로그램을 국제회계표준 도입에 맞춰 프로그램 개발하는 등으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국제회계기준에 맞춘 회계규정 수정작업이 완료되면 의심을 받고 있는 투명성 부분 등이 어떻게 쓰였는지, 몇 천원까지 상세내역으로 공개된다”고 강조했다.
해당 국제회계표준에 맞춘 회계프로그램 도입을 위한 개발금액 역시 적십자회비로 진행되고 있다.
개인정보는 어디에서
취재 결과 문제점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적십자회비는 1만 원으로 전국이 같은 금액이지만 1만 원으로 통일이 이뤄지기 전 지역별로 금액의 차이가 있었다. 이에 대해적십자사 관계자는 “지역별 경제 상황을 고려한 처사였으며 현재는 금액이 통일돼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몇 천 원밖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납부고지서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혀도 세대주가 이사를 하면 해당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다시 납부고지서를 발부해 또 거부 신청을 해야 하는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다. 장애우, 기초수급 생활자 역시 적십자회비를 납부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적십자회비 고지서가 발송되는 등 ‘지로’를 통한 회비 모금의 문제점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적십자 관계자에게 한 누리꾼이 “어떻게 주소를 받아서 매년 보내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표현하자 “행정자치부에서 이름과 주소를 제공하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그 사람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알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선 문제들에 대해 “2000년대 이전에는 각 지역의 통장과 이장이 수금을 했다. 집집마다 세대주 분들에게 직접 방문을 해서 수금하는 형태로 가다 보니 적십자회비 거부도 많아 정부와 대한적십자가 논의를 통해 직접 수금 방식 덜어내고 지로를 통해 안내를 하자고 제도 개선을 했다. 이 방식이 17년 정도 되는데 직접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보도를 살펴보니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송년회도 안 하고 기부도 침체가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연탄은행도 300만 장을 목표치로 잡았지만 현재는 190만 장밖에 못 모은 상황이다”며 “그런 의혹에 대한적십자사가 연루됐다는 의혹들만 있을 뿐 진위 여부가 드러난 것이 아니다. 어려운 곳에 쓰이니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오유진 기자 oyjfox@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