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 대학 강사 신분 보장 위해 국회 앞 노숙농성
월 100만 원도 못 받는 강사 수두룩…“끝까지 노력할 것”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약 7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저마다 다양한 전공을 가진 교수들의 수업을 듣는다. 겉보기엔 비슷해 보이는 교수들이지만 이들의 ‘신분’은 전혀 다르다. 전임교수와 비전임교수,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는 것이다. 특히 교양수업 담당교수들은 대부분 ‘시간강사’다. 일명 ‘보따리 장사’라고 불리는 이들은 강의는 하는데 학교에 본인 책상 하나 없는 떠돌이 신세다. 이들은 전체 대학 강의의 30% 이상을 담당하면서도 신분은 늘 불안하다. 밥벌이가 일정치 않으니 여러 학교에 강의를 다닌다.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10년 동안 길거리에서 농성 중인 부부가 있다. 대학 시간강사 출신인 김영곤(67) 전국대학강사노조 대표와 김동애(69)대학교육 정상화투쟁본부장이다. [일요서울]은 지난 6일 이들의 농성장을 찾았다.
오후 8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 시국이 시국인 만큼 국회 앞 주변에는 각종 집회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 부부의 농성장은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100m 떨어진 지하철역 주변에 위치해 있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왔다 갔다 했지만 이들의 삶의 공간에 눈길 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텐트 옆에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강사 교원 신분 회복한 강사법 즉각 인정하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대학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2007년 농성에 돌입해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국회 앞 최장기 농성장이다. 천막은 세월을 반영하듯 해져 있었고, 한눈에 보기에도 환경은 열악했다. 안으로 들어가기조차 힘들었지만 1.5평 남짓한 천막에는 이들의 살림살이로 가득 차 있었다. 소형 냉장고, 정수기, 테이블,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 필요한 건 다 있었다. 천막 한 편에 높게 쌓인 서적들이 눈길을 끌었다.
내부에는 다리를 펴기도 힘들 정도였지만, 이들 부부는 이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10년째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랜 기간 농성으로 각종 지병도 생겼지만 일흔을 맞는 나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기가 넘쳤다. 주변 차량 소음, 국회 인근 집회 소리가 괜찮은지 묻자 이들은 “적응돼서 문제없다”며 웃어 보였다.
이들의 공식 일과는 시위로 시작한다. 점심 무렵에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오후에는 상명대, 고려대 등 해고 강사 철회 투쟁을 벌이고 있는 대학에 가서 시위에 힘을 보탠다. 이 밖에 故 서정민 조선대 강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진행 중인 광주고등법원을 찾아 시위를 하거나 시간강사 관련 정책토론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주말에는 충남 당진에 위치한 시골집에 내려간다. 논과 텃밭에서 농사일과 밀린 집안일을 한 뒤 다시 복귀한다. 이들 부부는 40대 전후의 남매 를 자녀로 두고 있다. 이들이 부모 걱정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부부는 “처음엔 걱정 많이 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힘내라고 응원한다”고 했다.
이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이유
김동애 본부장은 1999년부터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해 싸웠다. 당시 숙명여대, 한성대, 충북대 등 곳곳에서 강의하며 전임교수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 무렵 한성대에서 급히 정규 교원자리를 구해서 전임 대타로 들어갔다. 대우전임(전임교원)으로 계약해 강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7년여가 지날 무렵 갑자기 강사료가 절반으로 줄어 학교 측에 물어보니 전임교원이 아니었다며 그냥 대우교수인 비전임교원이었다는 것이다. 그 뒤로 직위해제 및 감봉무효소송, 퇴직금 소송 등 각종 소송에 나서면서 투쟁에 뛰어들게 됐다.
김영곤 대표는 2005년부터 7년간 고려대 시간강사로 일했다. 그는 시간강사의 권리뿐 아니라 학생의 수업권도 함께 목소리를 내는 강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3년 고대 본관 앞에서 강사료 인상, 수강 인원 줄이기 등 시간강사 처우개선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을 했다.
하지만 진행하던 와중에 학교 측의 ‘비(非)박사 임용제한 방침’에 따라 강사직을 잃었다. 김병철 전 고려대 총장은 “비박사 강사가 교수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면서 그를 ‘데모꾼’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전임과 비전임교수 간 처우는 하늘과 땅
대학 내에서 교수는 크게 ‘정규직인 전임교수’와 ‘비정규직인 비전임교수’로 구분돼 있다. 비전임교수는 겸임교수부터 초빙교수, 강의전담교수, 연구교수, 외래교수, 시간강사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이들 부부는 비전임교수 중 시간강사가 하는 일은 전임교수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강의, 강의 전 준비, 연구, 논문 등 정규직 교수와 별반 다를 게 없다”면서 “그런데 처우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시간강사들의 시간 당 평균 시급은 5만 원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1시간의 강의를 위해서는 3배인 3시간 동안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시급 5만 원도 부족하다는 것이 이들의 얘기다.
또 일주일간 평균 강의 시간이 채 5시간도 안 되기 때문에 한 달로 계산하면 월 100만 원도 못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게다가 4개월 단위로 ‘쪼개기’ 계약을 해서 방학 중에 계절학기 강의를 구하지 못하면 ‘강제적 휴업 상태’가 돼 다른 일자리를 찾는 강사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이 같은 전임교원과 비전임교원의 신분 차이는 권력 불균형을 가져오고, 대학사회의 적폐 중 하나인 ‘논문대필’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일부 전임교수들이 대학 강사의 불안정한 현실을 악용하여 논문대필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종종 비극적 현실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2010년에 고 서정민 조선대 강사 사례가 있다. 서 씨(당시 45세)는 지도교수의 논문대필 강요와 임용비리를 주장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동애 본부장은 “대학 시간강사의 처우는 한국 내에서 이주노동자보다 못한 천민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0년 고 서정민 강사의 자살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불거지자 정부는 법적 교원 지위 보장과 처우 개선에 관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시간강사법)을 내놓았다. 이 법은 2011년 국회를 통과했지만, 강사에 대한 실질적 처우 개선은 없고 강사들의 대량해고만을 초래한다는 반발 속에 아직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2018년부터 시행이 예정돼 있지만 대학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측은 임면의 유연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대로 시행될지는 불투명하다. 이에 대해 김영곤 대표는 “강사의 신분 보장은 학생들의 학습권으로 이어지는 필수적 요소”라면서 “앞으로도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해 천막농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