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아, 결혼 실패로 브라운관에서 사라져야 했던 아픔들 고백
이상아, 결혼 실패로 브라운관에서 사라져야 했던 아픔들 고백
  • 장휘경 기자
  • 입력 2016-12-09 20:30
  • 승인 2016.12.09 20:30
  • 호수 1180
  • 16면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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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문제로 고난과 파탄 이어져…올해부터 연기 재개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으로 ‘주홍글씨’가 새겨진 이후 브라운관에서 사라져야 했던 이상아(45)가 쉽게 고백하기 힘든 비밀을 안고 7

년 만에 연기자로 돌아왔다. 그 비밀은 바로 세 번째 이혼. 그동안 행복하게 잘 사는 것으로 알려져 왔던 세 번째 결혼생활마저 5년 전에 경제적 파탄으로 끝나고 만 것. 하지만 이상아는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살았다. 이제 그녀는 바닥에서부터 다시 일어서야 하는 가혹한 현실 앞에 놓이게 됐다. 14살에 연예계에 데뷔해 그 누구보다 화려한 인기를 누렸던 하이틴 스타에서 복잡한 사생활의 여배우로 전락한 이상아의 인생역정에 대해 재조명해 본다.

 

이상아라고 하면 10대나 20대의 경우 중견 배우 정도로만 알거나 아니면 아예 모르거나, 아니면 노출 화보를 찍은 아줌마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1980년대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 출연할 당시만 해도 하이틴 스타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0대의 우상이었다.

1984년 KBS 드라마 ‘TV문학관 - 산사에 서다’로 데뷔, 인형같은 외모로 하이틴 스타 반열에 올라 당시 혼자서 찍은 CF만 500개 정도일 만큼 그 인기가 현재의 ‘수지’나 ‘혜리’ 이상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막강하던 위상이 약간 떨어져 1994년 농구 드라마로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캐스팅에서 굴욕을 맛본다.

잘생긴 얼굴로 이미 톱스타 반열에 올랐던 장동건, 더블루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 겸 배우 김민종과 손지창, 리복 CF로 화제를 모았던 이종원 등 청춘스타들이 총출동했던 드라마에서 당연히 여주인공일줄 알았던 이상아는 당시 신인 심은하에게 여주인공 자리를 빼앗긴 것.

어쨌든 이상아는 20대의 어린 나이에 인기의 하락을 실감해서인지 1997년 12월 개그맨 김한석과의 결혼을 선택했으나 이듬해인 1998년 12월에 이혼을 한다.

이상아 김한석은 이혼의 사유를 성격차이라고 밝혔으나 이상아의 과소비 때문에 김한석이 경제적으로 부담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뒷말도 있고 김한석의 여자 문제 때문이라는 루머도 있었다.

돈만 보고 두 번째 결혼했는데

한번 결혼에 실패한 이상아는 이후 2000년 4월 영화 기획자 전철 씨와 재혼을 한다.

처음에 이상아는 딸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듯 보였다. 그러나 재혼 1년 뒤에 별거를 시작했고, 결국 19개월 만인 2001년 12월에 두 번째 이혼을 맞는다.

이상아는 “재혼할 때 재벌이란 말에 사랑 없이 돈 보고 결혼했다”며 “‘나도 이런 사람이랑 결혼할 수 있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고 후회했다.

이상아는 이혼사유에 대해 전철 씨가 평소 자신에게 거짓말을 많이 한 데다가 빚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아서 이혼을 했다고 밝혔다. 반면 전철 씨는 이상아가 전철 씨 지인과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불미스러운 진실공방이 오가면서 진흙탕 싸움이 지속됐었고 이상아는 그로 인한 이미지 타격이 매우 심했다.

이상아는 두 번째 이혼으로 빚을 떠안았고, 이후 당시 애니메이션 회사를 경영했던 11세 연상의 사업가와 세 번째 결혼 소식을 알려 화제가 됐지만 결국, 다시 파경 소식을 전하게 됐다.

세 번째 남편, 윤기영 씨와는 2002년에 경기대학교 대학원을 다니면서 만나 2003년 8월에 결혼했다. 두 번의 이혼을 겪은지라 이상아의 어머니는 이상아의 세 번째 결혼을 극구 말리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이상아의 어머니는 “더 이상은 호적을 더럽히지 마라. 남자 없이는 못 사나”라고 막말을 해 이상아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아는 두 번째 남편과의 빚 문제로 검찰청을 오가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때 윤기영 씨가 큰 힘을 실어주는 등 위로가 많이 됐던 터라 결혼을 강행했다.

이상아는 “두 번째 이혼 이후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세 번째 남편이 내게 살 집을 마련해줬는데 그게 고마워서 결혼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세 번째 결혼 어떻게든 유지하려 했다

이상아에게는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 있고 윤기영 씨에게도 아들이 둘이나 있어서 두 사람은 자녀를 낳지 않기로 하고 살았다. 그러나 이상아는 두 아들 때문에 갈등이 적지 않았다. 이상아의 딸은 새 아빠를 잘 따르고 붙임성 있게 행동했던 반면 두 아들은 이상아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가족 간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두 아들은 유학을 보냈다.

이상아는 윤기영 씨와 결혼한 이후 사업에 열중하며 가끔 드라마에도 출연하는 등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던 것으로 보였으나 세 번째 결혼 생활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세 번째 이혼 이유는 경제적 파탄으로, 이상아뿐 아니라 이상아 어머니까지 빚을 얻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아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로 완전히 갈라선 지 벌써 3년 정도 됐다. 별거 2년, 합의이혼으로 3년 걸렸다”고 털어놨다.

이상아는 뒤늦게 알려진 이혼 사실에 대해 “제 입으로 굳이 말을 안 한 건 좋은 이야기가 아니지 않냐. 이런 거로 이야기가 나오는 게 부담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일반인인 전 남편도 저와의 이혼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 생활하는 데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 이혼 사실을 밝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상아는 “사실 세 번째 이혼만은 하기 싫었다. 어떻게 하든 살아보려 심적, 물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면서 힘들게 결혼생활이라는 그 끈을 놓지 않았었다”고 지난 심경을 털어놨다.

사람에 대한 상처로 공황장애 앓아

이상아는 세 번의 결혼 외에도 2004년 깜짝 누드화보를 찍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0년대는 이승연이 위안부 화보를 찍어서 철퇴를 맞기 전까지만 해도 여자연예인들의 누드화보가 꽤 인기가 있었고 손쉽게 수억 원대의 돈을 만질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상아는 이후 예능 프로에 나와서 누드 화보를 찍었던 것을 후회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상아의 고난은 끝없이 이어졌다. 2009년에는 지인에게 3500만 원의 빚을 졌는데 채무를 변제하지 못해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이상아는 당시 파산선고를 받을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톱스타에서 인기 하락, 세 번의 결혼과 이혼, 누드화보에 파산까지… 40대 중반의 여배우가 겪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상황이다. 10대에 화려한 왕관을 썼다가 결혼과 함께 여배우의 인생이 무너져버린 듯한 경험을 한 이상아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것이 병이 돼 세 번째 이혼 이후 공황장애를 앓았다.

스물다섯 어린 나이에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된 데는 가정사의 아픔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라는 화려한 수식의 소유자였지만 소녀 가장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20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이상아에게 유복한 환경을 선사했지만 사업 실패 탓에 가족을 책임진 것은 이상아였다.

이상아는 “한량인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와 두 자매를 부양해야 했던 소녀 가장이라는 짐이 무거워 도망치듯 첫 결혼을 했다”고 고백했다.

어릴 때부터 기댈 곳 없이 가장으로 살았던 이상아에게는 결혼이 도피처와도 같았던 것. 그러나 온전히 자신의 편이 돼주는 가족을 갖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이상아에게는 세상의 편견과 생활고만이 남았다.

무거운 삶의 도피처였던 결혼이 억울한 루머 속에 끝나면서 그녀는 결혼의 굴레에 갇히고 말았다. 그로 인해 그녀는 연기자로서 설 자리를 잃었고 가족 속에서도 돌아갈 자리를 찾지 못했었다.

이후 이상아의 심리상태가 공황 장애에 빠진 것은 물론 모녀의 관계마저 멀어지고 말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힘들 때 엄마부터 찾지만, 자신이 가족을 책임지는 데 길들여졌던 이상아는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편견 속에서도 혼자 고립감을 견디며 스스로 살 길을 찾느라 버둥거렸다.

어린 딸의 손에 가족의 생계를 의탁했던 이상아의 어머니는 그 자격지심에 딸의 잘못된 선택을 제지할 힘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들 모녀는 여전히 서로에 대한 오해와 자격지심에 제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이상아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17살의 딸을 키우며, 비로소 어머니를 이해하게 됐다.

이상아는 이제 남은 인생은 고등학생이 된 딸을 위해 살려는 마음뿐이다. 이상아는 과거 방송을 통해 여러 번 딸을 언급한 바 있다.

지난 2010년 MBC ‘기분 좋은 날’에 출연했던 이상아는 “엄마의 과거를 알고 딸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히며 눈물을 보였던 바 있다. 당시 딸이 새아빠를 피하는 사연을 전해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올해부터 연기를 재개한 이상아는 SBS ‘내 사위의 여자’에 이어 MBC 아침드라마 ‘언제나 봄날’까지 다양한 작품을 소화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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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 2016-12-15 01:43:30 125.131.16.144
그러면 2009년도에 지인에게 빌려간 3500만원은
파산신고해서 안갚아도 된다는 것인가?
인간에 도리가 사과 한마디 없고 지금까지 그지인분은 분하고 원통해서 당신에 양심없는 처사에 놀랄뿐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찾아가서 사과하고 변제하는 모습을 보이길~~~

보물섬 2016-12-16 21:17:40 223.62.16.122
오프라윈프리의 삶을 보세요! 아시고 있다면, 삶! 이것 또한 무거운 짐이 아니라 사명이겠죠!
의지할 곳 없다고 사람한테 위로 받으려 하지마세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값없이 거저 주신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구원입니다. 믿음 생활하세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실거예요.
메리크리스마스! 축복의통로가 되세요.
서초구 양재동 영일교회의 목사님 말씀 듣기만하셔도 치료가 됩니다.

밤안개 2016-12-10 13:40:01 121.163.213.184
제가 이상아 씨보다 1살 많아요 그때 브룩쉴즈 소피마르소 피비케츠 .
그리고 이상아 사진 모으는게 취미였는데 ^^
앞으로는 쭈욱 행복하세요 ^^

홍성철 2016-12-11 03:15:17 118.222.106.102
이상아씨 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