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한니발> <레드 드래곤> 등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했던 천재 살인마 한니발 렉터 시리즈의 팬이라면 전작 이전의 시점을 다룬 <한니발 라이징>도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2차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라트비아. 전쟁의 포화 속에 부모를 잃고 겨우 살아남은 어린 남매는 숲 속 대저택에 숨어 있다가 독일군에게 발각된다. 고립된 독일군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견디다 못해 남매 중 소녀를 살해한다.
동생의 희생과정을 지켜본 소년은 실어증에 걸린 채 소련군이 운영하는 수용소에 갇혔다가 탈출하고 파리 근교의 삼촌집을 찾는다. 이곳에서 죽은 삼촌의 부인인 일본인 무라사키(공리 분)를 만나고 그녀의 도움으로 의대에 지망, 어엿한 청년(가스파르 울리엘 분)으로 성장하지만 숙모를 추행하던 남자를 죽인 후 연쇄살인을 시작하게 된다.
신비의 베일을 벗어버린 한니발 렉터의 젊은 시절은 충격적인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어머니이자 연인 역할을 대신한 숙모와의 미묘한 관계로 설명된다. 이러한 기계적인 정신분석은 시리즈 전작에서 한니발 렉터가 갖고 있던 복잡하고 다층적인 개성의 영화적 매력을 삭감시킨다.
전작들은 매우 빼어난 사이코스릴러였지만 <한니발 라이징>은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살해 장면을 전시하는 데 더 집중한다. 사이코스릴러라기 보다는 오히려 신체훼손을 ‘스펙터클화’하는 슬래셔 무비나 하드고어 영화에 가깝다고 할 정도다.
시각적인 공포 뿐 아니라 심리적인 스릴감을 창출하는데 대단한 성공을 이뤄냈던 전작들에 비해 <한니발 라이징>은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운 속편이 되고 말았지만 시리즈 내내 길게 이어온 수수께끼의 ‘답’으로는 여전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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