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영화에서 구원, 용서, 화해는 일정한 작품성을 얻는 필수적인 밑거름처럼 여겨질 정도로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주제다. 그러나 이창동 감독의 새 영화 <밀양>은 좀 더 일상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 ‘밀양’이라는 지명 안에 숨은 ‘빛’을 찾아내는 것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칠흑같이 어두운 삶 속에서 영혼의 ‘빛’을 향해 자지러지듯 절규하는 인물의 내면을 담아낸다.
‘숨은 빛’ 혹은 ‘비밀의 빛’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밀양’은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동시에 이 영화가 전하려는 주제와 의미상으로 맞물린다. 밀양은 주인공 신애(전도연) 남편의 고향이며 그가 언제나 서울을 떠나 살고 싶어 했던 곳이다.
남편을 잃은 신애는 아들을 데리고 갑자기 그곳에서 살기로 마음먹는다. 남편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았던 신애에게 밀양은 애정의 대상이라기보다 극복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은 남편에 대한 감정을 극복하기도 전에 자신의 인생이나 마찬가지인 아들 준이 유괴되어 살해당한다. 정신적 충격으로 신애는 슬픔과 분노가 뒤엉킨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진다.
신애가 밀양에 도착하던 첫날부터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카센터 주인 종찬(송강호)은 그의 주위를 맴돌며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면서 신애를 지켜본다.
<밀양>은 기독교적 구원의 의미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인간의 감정적 한계라는 모티프를 원작인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로부터 고스란히 빌려 왔다. 기독교 색채를 전면에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는 한국 영화적 풍토에서 이 작품은 다소 이례적이다.
그러나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실존적 위기를 맞은 인물의 내면 그리고 거짓된 구원과 용서를 통한 자기기만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이창동 감독은 이것을 기독교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고 보편 정서와 종교 일반의 문제로 풀어나간다.
<밀양>의 뛰어난 균형 감각은 많은 부분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 빚지고 있다. 언제나 그가 가진 연기의 정점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국면을 보여주는 배우 전도연과 송강호의 매력은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발휘된다.
신애의 끝도 없는 절망감으로 하강곡선을 그리던 감정선은 종찬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유머와 현실감을 발판으로 탄력적으로 상승하면서 상영시간 두 시간을 훌쩍 넘는 이 작품이 시종일관 서사적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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