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의 영화 향수
영화 사상 이보다 매혹적인 연쇄살인범이 또 있었던가? 연쇄살인범 앞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매혹적‘이라는 수식어도 이 사람 앞에만 서면 큐피트의 화살을 날리게 된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수많은 여성들을 살해한 ‘그르누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스스로는 아무런 체취도 없으면서 세상의 모든 냄새를 가두고 싶어했던 그는 매혹적인 향기를 소유하기 위해 13번에 걸친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던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순간에 와서도 행복함을 누리지 못한다.
1985년 출간돼 전 세계 45개 언어로 번역, 1,500만 부 이상이 판매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인기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향수>는 문학과 영화의 성공적인 만남으로 평가할 만한 작품이다. 원작의 유명세를 감안할 때 영화화 자체는 놀랍지 않다. 그러나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쥐스킨트의 ‘향수‘가 영상화되기까지는 2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작품의 훼손을 우려해 작가가 판권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쥐스킨트의 소설을 다시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향수>는 영화의 이미지가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는 흔치 않은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이 남아있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향수>는 향기를 남긴다.
<향수>는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벤 위쇼)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코를 마비시킬만한 악취가 가득한 곳에서 태어난 그는 냄새만으로 모든 사물을 구별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알 수 없는 매혹적인 향기에 이끌려 어떤 여인을 미행하게 되고 결국 그녀를
죽이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향기에 대한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재료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향수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향수 제조사가 얼마나 정성을 다해 만드느냐에 따라 향기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미 인기를 검증 받은 소설을 영화화하는 감독들이 이 사실을 모를리 만무하다. 그래서 그들은 원작의 맛을 살리면서, 영화만의 재미와 미학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만족스러운 적이 드물었다. 원작이 훌륭할수록 실망은 더 크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향수>는 성공했다. 원작을 접해 본 사람이든 그렇지 않고 영화를 본 사람이든 이 영화의 뛰어난 묘사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작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부터 주인공 ‘그르누이‘가 가진 능력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동력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욕망의 향기를 조명하는 <향수>에서 배우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향수>의 메가폰을 잡은 톰 튀크베어 감독은 “벤 위쇼가 주인공 역을 수락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의 막중한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감독의 절대적인 믿음에 부응하듯 벤 위쇼는 신인이라고 믿기 힘든 명불허전의 명연기를 보여 준다. 다층적이고 모순적인 ‘그르누이‘ 그 자체인 벤 위쇼의 연기는 크게 가장하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원작이 보여주지 못한 부분까지 향기의 범위를 넓힌 <향수>는 완성도 높은 원작에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해지면서 탁월한 대중 영화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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