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 묘지에 비난 잇따라… 가짜 족보 논란 ‘가문 세탁’ 의혹
대통령 등 업고 온갖 횡포…‘영남대·육영재단’ 대표적 사례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파문이 대한민국을 덮치면서 최순실 씨의 아버지 故 최태민 씨의 존재도 새삼스레 조명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과도 밀접한 관계로 알려진 최 씨는 자칭 승려와 목사 사이를 오간 사이비 교주 출신에다 이름만 7개인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게다가 범죄 의혹 혐의만 44건으로 불법이란 인생 꼬리표도 달고 있다. 1994년 사망 이후 20여년이 지난 22일 그의 자취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무덤이 언론에 포착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관심도 잠시, 그의 묘비는 그의 ‘불법·짝퉁’ 삶과 무관치 않았다. 묘비 불법 설립과 가짜 족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지난 23일 찾아간 경기도 용인시 소재 그의 묘 주변 일대는 세상의 관심을 대변하듯 차량이 많았다. 한 주민은 “오늘 방송사 차량이 많이 왔다 갔다”고 했다.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학자도 와 있었다. 그는 묘지를 둘러본 뒤 “주산(무덤 뒤쪽에 있는 산)과 안산(맞은편의 산)의 형태가 조금 약한 기운이 있긴 하지만 기본 형국은 갖췄다”고 설명했다.
최 씨의 묘는 아스팔트가 없는 흙길 야산을 5분가량 올라가야 찾을 수 있다. 넓직한 터에 자리 잡은 묘는 한 눈에도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최 씨 넷째 부인의 아들 최재석 씨가 이곳을 관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묘 주변 잔디는 깔끔했고, 상석에는 큼지막한 조화가 놓여 있었다.
이곳에는 가족묘 형태로 2개의 봉분이 있다. 최태민 씨와 부인 임선이(2003년 사망)씨를 합장한 묘가 있고, 그 위쪽에 최태민 씨의 부친인 독립유공자 최윤성(1892~1945)씨의 묘가 자리해 있다. 2m 높이의 비석 뒤편에는 자녀인 최순영, 순득, 순실, 순천의 이름이 차례로 나열돼 있고, 그 아래로는 최순실 씨의 남편 정윤회 씨, 그들이 낳은 딸 정유연(정유라) 씨 이름도 새겨져 있다.
불법 묘지 조성
하지만 깔끔한 외관과 달리 내부 사정은 달랐다. 묘지가 신고 되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조성됐음이 드러난 것이다. 최 씨의 묘가 언론에 알려진 이후 용인시가 법률 위반 조사를 벌인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가족 묘지를 만들 경우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행정관청에 신고해야 하지만 최 씨 가족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또 관련법 시행령 가족묘 설치 기준도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행령에 따르면 가족묘지의 면적은 100㎡ 이하, 봉분의 높이는 지면으로부터 1m 이하여야 한다. 하지만 최 씨 가족묘의 전체 면적은 약 720㎡로 기준보다 7배 이상 넓었다. 또 봉분 높이도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일베 등 일부 사이트에는 “죽어서도 불법이냐”, “묘역에 가서 인증하면 천배(추천 1천개)가 가능하냐”, “이쯤 되면 최태민 묘부터 파내야 하는 것 아닌가” 등 비난 글이 잇따랐다. 용인시는 이와 관련해 최 씨 가족에게 이전 및 원상복구 명령을 내릴 방침이다. 만약 원상복구를 하지 않으면 경찰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시는 밝혔다.

‘짝퉁’ 족보 의혹
불법 묘지 논란에 이어 묘지 비석에 새겨진 최 씨의 본관이 거짓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최 씨의 묘지 비석 앞쪽에는 ‘수성최공태민지묘(隨城崔公太敏之墓)’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무덤 주인의 본관은 ‘수성’, 성은 ‘최’, 이름은 ‘태민’이라는 뜻이다.
수성은 경기도 중남부 수원(水原)시의 옛 이름으로, 수성(隋城) 최 씨는 신라 경순왕 김부의 13세손인 최영규(본래 김영규)를 시조로 하고 있다. 전국의 최씨 가운데 본관을 수성으로 쓰는 유일한 명문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수성 최씨 가문의 대표적 인물로 전해진다.
중요한 것은 수성 최씨 종친회 측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태민 일가는 우리들 혈족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종친회 측은 묘지 비석에 새겨진 한자가 자신들 가문에서 쓰는 것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종친회에선 ‘수나라 수(隋)’를 쓰지만, 최 씨는 비석에 ‘따를 수(隨)’자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隋城’ 최씨가 아닌 ‘隨城’ 최씨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최태민 일가가 거짓 본관으로 가문을 세탁해 명문가 행세를 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또 묘비가 공개되면서 최 씨의 나이 조작 의혹도 일었다. 묘비에 적힌 최 씨의 생년은 1918년 음력 11월5일이다. 하지만 1970년대 중앙정보부 ‘최태민 보고서’에 따르면 최 씨의 생년은 1912년이다. 묘비가 맞다면 최 씨는 본인 나이를 6년 속인 것이다. 최 씨는 생전 박정희 대통령보다 5살 많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한 살 어린 셈이 된다.
7개의 이름·범죄 혐의 44건
최 씨는 생전 최도원·최상훈·최봉수·최태운·공해남·방민 등 총 7개의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직업도 경찰, 군인, 언론사 사장, 불교단체 부회장, 농민회 차장, 정당 중앙위원에 심지어 신흥종교 창시자까지 다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70년 중정 보고서에는 횡령 14건과 변호사법 위반 11건, 13건의 권력형 비리 등 범죄 혐의가 총 44건에 이른다.
과거 ‘영남대’에서 빚어졌던 잡음들은 최 씨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보여준다. 최근 언론에 공개된 최 씨의 의붓아들 조순제 씨의 녹취록이 공개됐는데 이에 따르면 1980년에 박 대통령이 영남대학교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이후 이사를 거치면서 최 씨의 측근들이 주요 보직에 포진, 전횡을 일삼았다. 이들은 전문가가 아닌데도 특채로 뽑히고 없는 자리까지 만드는 등 지금의 비선실세 파문과 같은 행보를 보였다.
특히 최 씨 등은 당시 경주 최 부자라고 알려진 고 최준 선생이 기부한 엄청난 양의 땅을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헐값으로 팔아 중간에서 재산을 착취했다. 최근 고 최준 선생의 손자 최염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100억대를 호가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4억 원에 팔았다”며 “산 사람을 통해서 확인해보니 다운 계약서를 해달라고 해서 해줬다”고 밝혔다.
‘육영재단’을 둘러싼 최 씨의 전횡도 빼 놓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있던 1980년대 당시 최 씨가 실질적인 권한을 휘두르며 재단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이다. 최 씨가 재단 운영에 관해 온갖 전횡을 휘두르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는 복수의 증언이 나왔다.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지만 최근 최순실 국정농락 쓰나미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면서 관련 증언들이 쏟아졌다.
당시 재단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은 최 씨가 직원들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업무를 지시하고 채용 면접에도 참석하는가 하면, 박근혜 이사장을 등에 업고 직원들을 마구 자른 뒤 측근들로 채웠다고 증언했다.
게다가 기업체에게 협찬금과 후원금을 받아오라고 재단 직원들에게 독촉까지 했다고한다. 당시 판매담당으로 일했던 한 직원은 “최 씨가 공문을 주면서 ‘기업체를 찾아가 돈을 받아오라’고 지시를 해서 그런 일은 못하겠다고 하니 다짜고짜 욕을 하고 결재판을 집어던졌다”고 말했다.
또 직원들의 증언에 의해 재단의 수상한 결재 방식이 세상에 알려졌다. 박근혜 이사장은 최 씨의 ‘연필’ 서명이 있는 서류에만 도장을 찍은 뒤 사인을 지운다는 것이다. 연필 자국은 지울 수 있다는 점을 이용했다. 이런 방식 등으로 최 씨는 사실상 전권을 휘둘렀지만 증거는 조금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1987년 9월과 1990년 10월 육영재단과 어린이회관 직원들은 ‘어용간부 퇴진’, ‘족벌인사 체제 종식’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농성을 벌였고, 이후 박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동생 박근령씨에게 이사장직을 넘겨주고 물러났다. 박 대통령과 형제 박근령, 박지만 사이가 멀어진 계기가 최 씨의 이간질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처럼 최 씨를 둘러싼 수많은 비위 혐의와 전횡·갑질이 존재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구속 한 번 되지 않았다. 현재는 호화 무덤에 묻혀 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