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분석] 최순실에 돈 뜯긴 재벌 총수들 민낯
[소장분석] 최순실에 돈 뜯긴 재벌 총수들 민낯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6-11-25 18:57
  • 승인 2016.11.25 18:57
  • 호수 1178
  • 3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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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엔 ‘강요에 의한 잠정적 피해자’…현실은 검찰수사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검찰은 지난 20일 최순실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일요서울이 입수한 검찰 공소장에는 ‘삼성그룹 관련’ ‘현대차그룹 관련’ ‘롯데그룹 관련’ 등 재벌이 연루된 수많은 사건이 소개되지만 뇌물죄를 적용하지는 않았다. 해당기업들에 대해 ‘강요에 의한 잠정적 피해자’로 취급했다.

이미 검찰은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은 공개 소환하면서 재벌 회장은 주말을 틈타 비공개 소환해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살아 있는 경제권력에 충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검찰 행보를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또 있다. 수사결과 발표 이후 재계에 하루가 멀다 하고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다.

특검을 앞두고 뇌물죄 성립에 필요한 자료 확보라는 주장이 설득을 얻고 있다. 기업들도 좌불안석이다.

 공소장에는 ‘공범’ 적시 없어…국조 앞두고 긴장모드
“특검·국정조사 앞두고 기업활동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

먼저 33장 분량의 공소장 내용을 살펴보자. 검찰이 공소장에 직접 언급한 기업은 현대자동차, 롯데, 포스코, KT, 그랜드코리아레저(GKL) 등 5곳이다.

현대차는 안종범 전 수석의 요청을 받고 최순실 씨의 지인이 운영하는 흡착제 생산업체 KD코퍼레이션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11억원 상당의 물품을 납품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현대차 측은 “안 전 수석이 브로슈어 같은 홍보물을 주면서 ‘한번 검토해달라’고 하는데 기업 입장에서 무시할 수 있었겠느냐”면서 대가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롯데의 70억 원 추가 출연에 대해 최 씨와 안 전 수석의 직권남용 혐의를 위한 공소 사실로 보고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광고 계열사 포레카의 지분 강탈 시도 및 펜싱팀 창단 강요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포스코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언급을 하기는 곤란하다”면서 극도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KT는 “관련 인물들이 모두 퇴사해 언급하기 곤란하다”며 “추가 수사 협조 요청이 오면 성실히 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KT는 차 씨와 최 씨가 추천한 2명을 광고 발주를 담당하는 전무와 상무보로 채용하고 차씨의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에 68억 원 규모의 광고를 몰아준 것으로 조사됐다.

부정 청탁 가능성 수사 중

일단 재계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금 774억 원을 출연한 것은 최 씨와 안 전 수석의 강요에 의한 것으로 검찰이 판단함에 따라 안도하는 분위기다.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것으로 알려진 9개 대기업 총수는 물론 대다수 기업이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됐기 때문이다. 검찰도 공소장에 “기업은 피해자”라고 적시했다.

하지만 향후 특검 수사나 국정조사에서 대가성 여부가 추가로 확인될 수도 있어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검찰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어 이 부분도 부담이다.

실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24일 롯데·SK그룹을 압수수색한 것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재벌들을 향해 본격적으로 ‘칼끝’을 겨눴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날 검찰이 들이닥친 10여곳 중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집무실이 포함됐다. 검찰은 전날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의 로비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삼성그룹과 국민연금공단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롯데와 SK는 올해 12월 발표될 예정인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권 심사를 신청했다. 앞서 롯데·SK는 지난해 말 시내면세점 사업특허가 만료돼 면세점 1곳씩 문을 닫았다.
검찰은 이들 기업이 올해 면세점 사업을 추진한 배경에 불법청탁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미 안 전 수석에게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올해 말 새로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도 지난해 7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정부에 부탁하고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국조서 밝히고 특검서 처벌

또 기업들은 주요 총수들이 국회국정조사에 증인으로 불려 나가는 상황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이 이 부분에 대해 강도높은 비난 여론을 만들고 있는 것도 유념할 사안이다. 

대표적 인물이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는 최근 언론을 통해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재벌의 탐욕”이라며 “최순실 배후에 재벌이 있다. 재벌이 박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찾아 돈으로 매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당은 구체적인 행동까지 돌입한 상태다. 심상정 대표·노회찬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건을 ‘박근혜·최순실·삼성 게이트’로 규정하는 한편, 전경련 해체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도 ‘재벌 피해자 코스프레 현상’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내면서 향후 진행될 검찰수사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안이 중대한 만큼 검찰과 특검·국정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져야 하지만 가뜩이나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 기업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조사는 포토라인 앞에서 한마디 하는 정도지만 국조는 시간대별로 생중계된다. 불미스러운 사태로 질타 받는 총수 모습이 지상중계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업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국조가 진행되기 전 사태가 조속히 마무리됐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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