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슈 건드렸다가 혼쭐난 기업들
정치 이슈 건드렸다가 혼쭐난 기업들
  • 남동희 기자
  • 입력 2016-11-25 18:54
  • 승인 2016.11.25 18:54
  • 호수 1178
  • 3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촛불민심 비난 글에 성난 소비자들 ‘불매운동캠페인’ 진행
Daum 아고라 천호식품 불매 서명 운동.

천호식품 촛불집회 민심 지적했다가 회장이 사과
뉴발란스, 트럼프 지지로 애꿎은 운동화만 수난
“기업의 정치적 시선을 보다 냉정하게 봐야한다”는 지적도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이 자신의 인터넷 카페에 ‘최순실 게이트’에 항의하는 촛불집회를 비난하는 글과 동영상을 게재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 회장이 사과문을 게재했으나 성난 민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천호식품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이처럼 오너의 정치적 발언이나 정치적 민감 사안을 건드린 광고, 모델 기용 등으로 수난을 겪은 기업들이 있다. 일요서울은 정치 이슈를 건드렸다가 혼쭐난 기업들에 대해 알아본다.

천호식품은 우먼솔루션, 녹용홍삼, 흑염소, 산수유 등의 건강식품 판매를 주로 하는 식품 기업이다.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은 지난 2011년 자사의 TV 광고에 직접 출연할 정도로 기업 홍보에 적극성을 보여 왔다.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 <뉴시스>

당시 홍보한 산수유 제품 카피인 “남자한테 최곤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로 유명하게 됐다. 김 회장은 평소 오너로서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뚝심이 있어야 부자된다’를 통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데 앞장서 왔다. 김 회장은 이 카페에 자신의 생각과 경영 철학을 밝혀 왔다.

논란은 지난 4일 김 대표가 ‘나라가 걱정 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시작됐다. 해당 글은 “뉴스 보기가 싫어졌다. 촛불시위, 옛날이야기를 파헤치는 언론 등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국정이 흔들리면 나라가 위험해진다”고 촛불집회 참가 국민과 언론 등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그가 함께 올린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이하 부추연)’가 만든 동영상은 여론의 비난을 거세게 만들었다. 부추연이 제작한 해당 영상은 부추연 회장인 윤용 전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시국 관련 발언을 녹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윤 전 교수는 동영상에서 “대통령이 사람을 잘못 쓸 수도 있는 것,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힐 사건이 아니며 하야 하라 탄핵해라 할 사안은 더욱 아니다”며 “대한민국이 단체로 최면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김 회장은 정치성향을 드러낸 글과 동영상을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곧바로 삭제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 19일 게재한 사과문에 “우연히 접한 동영상을 올렸고 내용을 파악하고 보니 의도와 다르게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이 많아 바로 내렸다”며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고 모든 것이 스스로의 잘못이고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여론은 싸늘했다. 지난 20일부터 온라인에서는 천호식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네이버·다음 등 주요 포털 사이트와 트위터에도 천호식품 제품을 알리며 불매운동을 벌일 것을 주장하는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대표의 정치적 소신… 회사는 낭패

오너의 이번 촛불집회와 관련된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기업은 또 있다. 스페인 SPA(디자인·생산·유통 등 전 과정을 하는 의류 전문점) 브랜드 자라(ZARA)다.

이봉진 자라리테일코리아 사장은 최근 한 대학교 특강에서 “여러분이 시위에 나가 있을 때 참여 안한 4900만 명은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서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ZARA 매장. <뉴시스>

당시 강의를 듣던 학생 중 하나가 지난 22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 사장의 발언을 비판하며 문제는 커졌다. 이 학생은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촛불집회에 나서는 것”이라며 “이 사장의 발언은 촛불집회에 참여한 100만 명은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으로 평가절하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논란이 일자 이 사장은 이 학생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 집회 참여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직장인은 일을, 회사는 사업을, 학생은 공부에 최선을 다해야 미래를 더 나아지게 바꿔갈 수 있음을 강조하다 보니 해석 상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사장은 덧붙여 “본인도 지금의 정치 상황은 매우 부당하고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사태이며 이번 같은 일이 반드시 명명백백하게 진실이 밝혀져 정의가 바로 잡혀야 하며 이를 위한 집회나 국민운동은 정당하다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사장의 발언을 비난 섞인 어조로 해석하는 의견은 각종 온라인 사이트를 타고 퍼져 자라 불매운동에 나서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故 노 전 대통령 비하로 시끌시끌 

네네치킨은 지난해 7월, 10월 올해 2월까지 총 3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한 홍보와 전단지로 문제가 됐다. 지난해 7월 네네치킨 경기서부지사 홍보용 SNS에 “닭다리로 싸우지 말자. 닭다리는 사랑”이라는 문구와 함께 故 노 전 대통령의 합성 사진을 올린 것이 시초였다. 사진 속에는 故 노 전 대통령이 인상을 쓰며 커다란 네네 치킨을 안고 있다.

이 광고를 본 소비자들은 고인을 조롱하는 의도가 분명하다며 항의했다. 이에 네네치킨은 본사 SNS를 통해 “이는 네네치킨 전체의 의견이 아니다”고 해명해 소비자들로부터 무책임한 태도라며 질타를 받았다.

그 후 본사 측에서는 “정확한 경위를 파악해 책임 있는 조치를 하겠으며,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드린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노무현 재단에 직접 찾아가 사과도 하며 이후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3개월 만인 지난해 10월에도 네네치킨이 구인구직 사이트 잡코리아에 등록한 경력사원 채용 공고에서 ‘네네치킨’ 로고의 ‘ㅊ’부분에 故 노 전 대통령의 실루엣이 합성돼 논란이 일었다. 해당 게시물은 잡코리아 측의 실수인 것으로 밝혀졌다.

네네치킨도 사과문과 본사 측 강력 대응 카드를 꺼내며 ‘故 노 전 대통령 비방’이란 수식어를 떨쳐내려 애썼다. 하지만 올해 2월에 故 노 전 대통령 죽음을 희화화한 네네치킨의 전단지가 온라인에 또다시 돌자 소비자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소비자들은 시정조치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실수는 네네치킨의 본사 차원에서 관리가 미흡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네네치킨 관계자는 절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는 답변을 내놨지만 네티즌은 “네네치킨의 故 노 전 대통령 비하, 이쯤 되면 고의성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고,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선 불매 운동이 일었다.

모델의 정치 성향이 논란이 돼 손해를 본 기업도 있다. 지난 2013년 8월 인터넷 쇼핑몰 ‘옥션’이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와 논란이 있었던 걸 그룹 크레용팝을 홍보모델로 선정한 것과 관련해 일부 소비자들의 질타를 받았다.

‘일베와 연관됐어’ 홍보 모델 교체 요구   

크레용팝은 같은 해 6월 SNS에 일베를 상징하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멤버들이 일베 회원이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다. 일베는 극단적 정치 성향을 가진 이용자들이 과격하고 편파적인 글들을 게시해 여론의 비판을 받아 왔었다.

사건이 커지자 크레용팝 소속사인 크롬엔터테이먼트 대표는 “회사 측에서 시장 반응을 참고하기 위한 접속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일베뿐 아니라 대다수 유명 커뮤니티에 회사 홍보용 계정으로 가입돼 있다”며 “그렇지만 멤버들이 직접 일베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 멤버들도 자신들이 즐겨 쓰는 말투 일 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크레용팝을 비판했던 이들의 반감과 의혹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옥션 측이 크레용팝을 모바일 홍보 모델로 기용했고, 이는 일베에 반대하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낳았다. 그들은 강력하게 크레용팝의 광고 출연을 반대했고, 이에 옥션은 홈페이지에 “크레용팝은 옥션모바일의 신선하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며 모델 선정 이유를 밝혔다.

또 옥션 측은 “물론 최근 일베 논란으로 부정적 이미지의 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숙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향후 더 좋은 노래와 퍼포먼스로 팬들과 호흡을 하겠다는 그들의 자세를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다며 고객들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옥션 회원 대규모 탈퇴와 불매운동을 벌였고 결국 옥션은 5일 만에 크레용팝이 출연한 광고를 중단했다.

기업이 정치와 얽혀 논란이 된 것은 지난 8일 대통령 선거 인단 선출을 막 끝낸 미국에서도 있었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이자 운동화 제조사인 뉴발란스가 미국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와 관련해 선거 후폭풍을 맞고 있다.

매슈 로브레톤 뉴발란스 홍보 부사장은 지난 9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오바마 정부는 우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트럼프의 선거 승리로 모든 것이 올바르게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이 추진하던 정책 중 하나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대답이었지만 이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발언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논란이 일자 그는 “뉴발란스는 미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에 5개 공장을 두고 운동화를 만드는 대표적 제조업체다. 해외 공장이 많은 나이키나 다른 신발회사에 비해 TPP로 입게 될 타격이 크다”며 평소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해온 트럼프의 TTP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 동의한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뉴발란스 운동화를 국민 운동화로 하자며 환호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지지자들은 비판을 쏟아냈다.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트럼프를 반대한 이들의 원망은 뉴발란스에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뉴발란스 측도 뒤늦게 “뉴발란스는 트럼프 당선인이나 힐러리 후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무역에 대한 입장을 모두 지지한다”는 해명을 냈다.

또 뉴발란스 측은 “뉴발란스는 인종성별문화 등에 대한 어떤 형태의 편견과 혐오도 갖고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으나 트럼프를 반대하는 이들로부터 불매운동은 거세지기 시작했다.

불매운동뿐만 아니라 트럼프 당선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각종 SNS 상에 뉴발란스 운동화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진을 올렸다. 일부는 운동화를 불태우는 동영상을 게시하기도 했다. 미국 내 언론은 뉴발란스 사태가 쉽사리 잠잠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외로 정치적 성향이 급변하는 때에 기업이 특정 정치적 성향을 비치는 건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자칫 기업의 존폐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며 “이는 국내 기업과 글로벌 기업에게 모두 해당되는 사항이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이런 불안한 시국에는 홍보, 모델 기용 등과 관련해 안팎으로 더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기업의 정치적 시선을 보다 냉정하게 봐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 오너라도 개인이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것은 틀린 행동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그는 “물론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은 져야할 것”이며 “소비자들도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봐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남동희 기자 donghee070@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