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유은영 기자]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을 조사한다고 밝혔다. 최순실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혐의를 밝히기 위해 박 대통령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것. 헌정 사상 유례없는 첫 ‘현직 대통령’ 검찰 수사다.

- 퇴임후 盧 대검찰청에서 12시간 ‘소환 조사’
- 당선자 MB 제3의 장소에서 3시간 ‘방문 조사’
검찰이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을 상대로 칼을 겨눈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검찰은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비자금 수수와 쿠데타 관련 내란죄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 후 기소한 바 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대통령들의 검찰 조사 잔혹사는 계속 이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각각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현재 검찰은 헌정사상 유례없는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한다.
검찰은 이번 박 대통령 조사와 관련해 나름 칼을 갈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순실 사태’에 대해 명쾌한 결과를 내놓지 못할 경우 ‘정치검찰’이라는 꼬리표를 얻는 것으로 검찰의 신뢰도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을 조사하는 것 자체는 정치적 부담도 클 것이라는 평가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두고 외줄타기 하는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피의자’신분 전직 대통령, 강도 높은 검찰 수사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후인 2009년 4월 30일, 서울 대검찰청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당시 대검 중수부(부장 이인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재임 중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와 500만 달러 등 총 600만 달러를 사실상 받은 혐의를 추궁했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 사건이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칼날은 매우 날카로웠다는 평가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취임 당시부터 검찰과 대립각을 세웠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검찰이 복수전을 시작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검찰의 과도한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에 대해 우려하며 인사권자로서 ‘검찰 개혁’을 줄곧 주장했고, 이 같은 태도는 검찰과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검찰총장보다 후배인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해 서열 중심의 검찰조직에 큰 반발을 샀다. 또 서열 파괴의 첫 검사장 인사에 대해 간부들이 ‘밀실인사 정책’이라며 강력히 반발에 나서 난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는 발언으로 유명한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도 열렸으나 둘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당시 김각영 검찰총장은 이 같은 노 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공개적인 반대의사를 표하며 자진사퇴를 했다. 그 밖에도 기소 독점권을 가진 검찰에 대한 견제로 공직부패수사기구 설치,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 등을 추진하며 참여정부 내내 검찰과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검찰이 반격에 나선 것은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검찰이 ‘박연차 게이트’의 핵심으로 노 전 대통령을 지목하면서부터다. 이 사건으로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강금원 창신섬유회장,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광재 민주당 의원 등이 줄줄이 구속됐다.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자식들도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2008년 4월 30일, ‘피의자’ 신분인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직접 조사가 이뤄진다. 오전 8시 봉하마을 사저를 출발한 노 전 대통령은 오후 1시 20분경 대검찰청 청사에 출두해 대검찰청 11층 1120호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전 민정수석으로 유명한 우병우 당시 중수 1과장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신문을 하고, 이선봉, 이주형, 김형욱 검사가 돌아가며 조사에 참여했다. 조재연 부부장 검사는 조사실 옆 사무실에서 수사 상황을 지켜보며 보강서류를 준비해주는 등 수사를 도왔다. 노 전 대통령의 변호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담당했다.
당시 검찰은 이례적으로 피의자 신문조서 내용 중 일부와 박연차 회장이 노대통령과 대질신문을 원했다는 내용의 사실관계 확인서를 공개하며 노 전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대해 검찰 일각에서도 ‘그 동안의 특수 수사와는 달리 검찰이 수사과정을 지나치게 자세히 공개했다’, ‘범죄혐의와 관련이 없는 내용도 자세히 흘리며 여론재판을 이끌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후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자살로 검찰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일단락됐다.
예비 대통령 MB, ‘당선인 신분' 고려 '유연 대응'
한편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조사를 받았다. 2007년 12월 19일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후보와 관련해 2007년 12월 26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특검법’이 가결된 것. 당시 이명박 당선인은 ‘피내사자’ 신분으로 ‘진술 조서’를 작성했다.
조사방식은 ‘방문조사’였다. 당시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당선자의 소환조사’ 가능성도 언급됐으나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조사에 정치적 요건들이 고려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이에 특검이 당선인을 최대한 배려해 서면조사보다는 한발 더 나아가지만 소환조사보다는 한 발 양보해주는 방문조사를 택했다는 것.
2008년 2월 17일 저녁, 정호영 특검팀은 제3의 장소인 서울 시내 모처에서 이 당선인에 대해 약 3시간 가량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는 1팀(BBK 의혹), 2팀(도곡동 땅 및 다스 차명보유 의혹), 3팀 (상암동 DMC 특혜분양 의혹)에서 각각 수사를 맡고 있는 특검보 3명과 수사관 2명이 참석했다.
방문조사가 이뤄진 이유에 대해 김학근 당시 특검보는 “수사팀에서 판단한 것으로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겠다”며 “당선인이 방문조사를 요청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3시간이라는 비교적 짧은 조사시간에 대해서는 “검찰발표 이후 새롭게 제기된 의혹 사항과 특검 조사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또 조사과정의 녹화나 녹음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특검은 2008년 2월 21일 오전, "주가조작 및 자금세탁은 김경준이 독자적으로 저지른 범죄로서 당선인이 주가조작에 관여한 사실이 없음이 확인됐다"고 결론내리며 이 당선자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
‘살아있는 권력’ 현직 대통령 조사
앞선 사례들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이다. 헌정 사상 처음 겪는 ‘현직 대통령 검찰 조사’를 두고 법조계 내부에서도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우선 대통령의 불소추특권과 관련한 해석이 문제가 됐다. 우리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며 불소추특권을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 내부에서는 이 규정을 두고 ‘수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과 ‘소추’만 불가능할 뿐 수사는 가능하다는 입장이 갑론을박을 벌였다.
검찰 역시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이며 ‘현직 대통령’의 딜레마에 빠졌다. 당초 법무부와 검찰은 “박 대통령은 수사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으나 헌법학자 다수가 ‘수사대상’에 포함된다는 입장을 밝히자 다시 ‘수사는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 또 박 대통령에 대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다 11월 18일에는 “박 대통령은 이미 구속된 피의자의 범죄 사실에 대해서는 중요한 참고인이자 (본인의) 범죄혐의도 문제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사실상 피의자’에 가깝다는 듯한 어조로 말끝을 흐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러한 검찰의 태도에 대해 법조계 한 관계자는 “임기 말이라도 권력은 권력”이라며 “살아있는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검찰에게도 매우 버거웠을 것”이라며 검찰 나름의 고충에 대해 이해한다고 밝혔다.
유은영 기자 yoo5611@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