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변화된 시위 문화 속 껑충 뛴 일대 상권
[르포] 변화된 시위 문화 속 껑충 뛴 일대 상권
  • 남동희 기자
  • 입력 2016-11-18 19:20
  • 승인 2016.11.18 19:20
  • 호수 1177
  • 3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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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같은 시위’에 편의점·상인 ‘웃프다’

전기초, 1인매트, 주류 등 시위 당일 품절
음악이 흐르고, 가족 단위에 강아지까지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지난 12일 주최 측 추산 100만 명이 모인 광화문 일대 촛불집회로 인근 상권이 때아닌 특수를 누렸다.

생활용품점은 집회 용품을 사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였고, 노점상들은 이른 시간부터 집회가 열리는 근처로 집결했다. 시위 종료 후에도 많은 인파가 허기진 배를 달래러 인근 음식점과 주점을 가득 채웠다.

이날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집회였지만 상인들은 늘어난 매출로 들뜬 표정이었다.

서울 종로1가 음식점 사장 김 모씨는 “이 일대는 원래 주말에도 사람이 많아 장사가 잘되지만 확실히 이 주변 밥집, 술집 매출은 늘었을 것”이라며 “테이블이 모자라 못 받고 돌려보낸 손님이 태반”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특이한 점은 일행이 아닌 손님들끼리도 집회 내용으로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많았다”며 “심지어 어떤 나이가 있으신 분은 기특하다며 학생들 테이블 계산도 대신 해주더라”고 말했다.

인근 편의점 직원은 주말에 소진된 주류를 냉장고에 채워 넣느라 오전까지 바빴다고 했다. 그는 다른 품목도 판매가 늘었지만 주류 판매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했다.

그는 “막걸리는 아예 동이 나서 새로 들여왔다”며 “주말에 이 근방은 원래 유동인구가 적지 않아 주류 판매가 꽤 되는데도 이렇게 냉장고 전 주류가 다 팔리긴 일을 시작하고 처음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코리아세븐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2일 광화문 인근 편의점 세븐일레븐 10여개 점포의 맥주 매출은 전년 동요일 대비 208.8% 증가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편의점 GS25의 광화문·시청 주변 20개 점포도 매출이 평소보다 2~3배 증가했다고 말했다.

종로 일대 음식점·주점 문전성시 이뤄

집회는 노점상들도 이동하게 했다. 지난 12일 집회 당일에는 많은 노점상들이 집회 집결지인 광화문 일대로 모였다.

호두과자를 판매하는 A씨는 “종로 3가 쪽에서 팔았는데 주말마다 시위하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서 옮겨왔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시위 때도 이 자리에 있었냐는 말에 “아니다. 지난주에는 있던 장소에 그대로 있어서 평소랑 별다를 게 없었다. 이제 당분간 나같이 장사하는 사람들은 전부 이 근처로 몰릴 것”이라고 답했다. 위험하진 않겠느냐는 질문에 “폭력 시위도 아닌데 괜찮다”고 대답했다.

청계천에서 시청 부근으로 이동하다 보니 곳곳에 노점상이 보였다. 커피와 간식거리를 팔고 있는 B씨는 요새 장사가 잘 되느냐는 질문에 “좋은 일도 아닌데 장사는 잘돼 웃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지고 나온 건 다 팔리는 것 같아 가볍게 돌아가는 편이다”라고 했다.

또 그는 지난 12일 집회 날에도 가져나온 것들이 일찌감치 다 팔려 돌아가려 했지만 사람이 많아 11시가 넘어서 갔다고 했다.

종로 일대 노점상에서는 야외 행사인 집회에 대비한 마스크와 핫팩, 모자 등을 진열해놓고 파는 곳도 있었다. 그중 한 곳 주인인 D씨는 “평소에 팔리지도 않던 마스크나 핫팩 등이 불티나듯 팔리는데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원래 가격보다 500원 내려서 판다고 했다”고 했다.

맞은편 대형 생필품 판매점 직원은 입구에 핫팩을 진열해놓고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집회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이 사갔다”며 “이 것도 얼마 남지 않아 새로 들여와야 한다”고 했다.

전기초와 1인매트는 시위 당일 매진되기도 했다. 박 모 학생은 1인매트와 전기초를 사기 위해 종로에 대형 생활용품 판매점을 두 군데를 넘게 돌아다녔지만 매진돼 사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전기 초가 안전할 것 같고 첫 집회를 참여한 기념으로 사려고 했다”고 말했다.

집회 당일 서울 시청 부근엔 각양각색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집회 분위기는 엄숙했고 어두운 표정의 참가자들도 있었지만 한복을 입거나 바디페인팅을 하고 포즈를 취하며 인증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다. 가족단위의 참가자들은 아이에게 집회를 경험시켜 주고 나라 일에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지게 하려 참여했다고 말했다.

변화된 시위 ‘그날의 분위기’

집회가 종료 된 9시 종로 1가 부근에서 만난 정모씨는 집회에 참여한 친구들과 맥주를 한잔하러 간다고 했다. 그는 “답답한 마음도 달래고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한잔하고 들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불과 1년 전 2015년 11월 14일 전국에서 13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 시민들이 모여 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날 총 19대의 살수차가 배치됐고, 총 202톤의 물에 부상자는 30여 명이 넘었다. 집회 현장은 아비규환이 됐고, 故 백남기 농민은 이날 살수를 맞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사망했다.

1년 만에 시위 현장은 180도 달라졌다. 마스크는 바디페인팅으로 바뀌고, 화염병과 몽둥이는 피켓과 초로 변했다. 외신들도 연일 한국의 평화적이고 축제 같았던 시위 문화에 대한 보도를 내보냈다.

CNN은 이날의 시위 분위기를 “대통령 퇴진이라는 심각한 사안임에도 시위의 분위기는 밝았다며 “다수가 강아지를 데리고 나왔고, 라이브 음악도 흘렀다”고 보도했다.

남동희 기자 donghee07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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