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노소영·고현정, 교통사고, 혼외자식, 이혼 등
최은영, 남편 뜻 이어 회사 경영 큰 소리 쳤지만…
지난 4일 이재현 CJ 회장의 맏며느리 이래나 씨가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래나 씨는 ‘손에 손잡고’를 부른 혼성그룹 코리아나의 멤버 이용규 씨의 딸이다. 이 씨는 지난 4월 ‘문화계 재벌’ CJ그룹의 맏며느리가 돼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할리우드 부럽지 않은 재계 며느리들의 삶은 대중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하지만 늘 순탄치만은 않다. 일부는 성격차이로 이혼하거나 부끄러운 가정사가 만천하에 공개되기도 하며 경영 일선에 나섰지만 자질 부족으로 질타를 받는다.
이 씨는 CJ그룹 맏며느리가 되기 전부터 스타의 ‘엄친딸’로 유명했다. 2014년 1월 3일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 아버지와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됐다. 이 씨는 미국 아이비리그에 속한 명문대학인 예일대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수재였다. 방송에서 그는 하루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을 정도로 노력한 일화를 공개해 ‘이래나 공부법’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방송 후 2년 뒤인 지난 4월 이 씨는 돌연 CJ그룹 맏아들 이선호(26) 씨와 22살의 어린 나이로 결혼했다. 둘은 결혼 전 2년의 연애기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부가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을 서두른 이유는 아버지인 이재현 CJ 회장의 재촉이 있었다. 이 회장은 기업비리 혐의로 기소된 상태에서 건강이 악화돼 맏아들인 이 씨가 하루빨리 가정을 꾸리길 바라는 마음을 부인 김희재 씨를 통해 전달했다.
직계가족만 참석한 조촐한 결혼식을 마친 둘은, 친정 가족과 함께 8월부터 예일대가 있는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자택에서 거주했다. 하지만 3달이 지난 4일 이 씨가 돌연 사망해 세간에 충격을 줬다. 미국 교민들과 예일대 한인 학생회에 따르면 이 씨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경쇠약을 앓아 학교를 휴학했다고 전해진다.
CJ 측은 유족들에 뜻에 따라 사인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씨의 시신은 오는 17일 국내로 운구된다.
급작스러운 죽음
원로 배우 故 김혜정 씨도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재계 며느리 중 하나다. 지난해 11월 19일 김 씨는 새벽기도를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1941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의 부재로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내다 영화배우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한다. 당시 영화감독들에게 무작정 자필 편지로 자신을 어필해 1958년 이만흥 감독의 영화 ‘봄은 다시 오려나’로 데뷔, 이후 128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했다. 김 씨는 당대 최고의 육체파 배우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던 그가 돌연 1969년 최원석 동아그룹 전 회장을 만나 연예계를 떠났다. 이들은 ‘연예인과 재벌 1호 부부’로 불리며 많은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김 씨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재벌가의 며느리로 평탄한 삶을 사는 듯했으나 5년이 지난 1974년 파경을 맞았다. 김 씨는 이혼 후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지난해 돌연 사망해 팬들에게 더욱 안타까움을 줬다.
스타와 재벌가의 만남 중 세간에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이들은 배우 고현정(45) 씨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48)이다. 고 씨는 1989년 고교 시절 미스코리아 선에 당선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 후로 ‘전국은 지금’의 리포터와 ‘쇼! 토요 대행진’ MC로 활약하며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통해 배우로 성장했다. 이후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 히트작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인기 절정에서 그는 1995년 5월 정 부회장과 돌연 결혼을 발표했다.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를 떠난 고 씨는 슬하에 두 자녀를 뒀지만 결혼 8년 6개월 만인 2003년 ‘성격차이’를 이유로 이혼했다. 이혼 후 ‘집안에서의 왕따설’ 등 그의 이혼 사유로 무수한 소문이 돌자 그는 직접 매체에 나와 “정 부회장은 따뜻한 사람이며 시댁 식구들 또한 예의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안방 단속 실패
노소영(55)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이면서 서울대학교를 졸업해 능력과 배경을 모두 갖춘 일등 며느릿감이었다. 이런 그가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시카고대학 박사과정에서부터 연애하고 결혼까지 골인해 세기의 정재계 커플로 주목을 받았다.

결혼 후 노 관장은 재능을 발휘해 SK그룹의 아트센터인 나비를 맡으며 ‘아트앤테크놀로지’ 전문가로 성장해 남편을 지원했다.
또 노 관장은 최 회장 구속 당시 차녀 최민정 씨가 해군을 지원하는 등 다른 재벌 자제들과 다른 독립적인 행보를 보여 자녀교육까지 인정받아 재계 내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최 회장의 혼외자 파문으로 이혼 위기에 직면했다. 최 회장이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공개한 것이다.
그는 한 언론사에 직접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그 안에는 아내 노 관장과의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았고, 그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노 관장과의 관계를 잘 마무리하고, 어린아이와 아이 엄마를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후 최 회장은 이혼 의사를 밝혔으나 노 관장이 이를 거부해 두 사람은 아직 법적으로 부부다.
경영 자질 논란
남편 여읜 시련을 극복하고 야심차게 그룹 경영에 도전했으나 경영 자질 논란으로 두 번째 시련을 겪고 있는 이도 있다.
최은영(54) 전 한진해운 회장이다. 최 전 회장은 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셋째 며느리로 삼남 故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의 부인이었다. 그는 2006년 남편이 별세한 후 2007년 한진해운 경영권을 승계했다.

당시에는 해운업 호황에 “남편을 대신해 한진해운의 대모 역할을 하겠다”는 최 전 회장의 당찬 모습은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았고, 감성경영을 내세운 그가 경영하는 한진해운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이 추락하기 시작하자 리스크 대응의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에 한진해운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최 전 회장은 경영권을 한진그룹에 넘기며 책임을 전가했다. 이후 최 전 회장은 남은 자회사들을 중심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경영을 맡은 기간 동안 한진해운의 부채 규모가 1460%으로 폭증하는 등 붕괴가 확실시됐지만, 홀로 살 궁리만 한 것이다.
최 전 회장의 개인 재산이 자택과 자회사 지분을 포함해 350억 원에서 400억 원가량으로 알려지자 업계와 정치권에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최 전 회장은 지난 9월 27일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서 한진해운에 책임을 느끼고 사재 출연에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바닥에 고개를 묻으며 눈물을 쏟아내는 것으로 대답을 회피해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지난달 24일 법원이 최 전 회장의 경영상 불법행위를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손해배상, 고소 등 민·형사상 조치를 할 계획을 발표함으로 최 전 회장은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남동희 기자 donghee070@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