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과 대통령간 긴밀 협조관계 없는 이원집행정부제는 분쟁과 혼란 야기
남의 나라 제도 모방 아닌 현실적 상황 반영한 독창적 헌법으로 개정해야
프랑스의 이원집행정부제
통치구조상의 특징
프랑스 제4공화국은 제3공화국의 구체제복고·독제정권의 출현 방지 등을 위하여 절대적 의회우월주의를 채택하였으나 제4공화국이 존속하던 13년 동안, 25차의 개각과 22회의 내각불신임으로 행정부의 불안정이 계속됨으로써 정치적 혼란이 만연하여 국민들이 의회의 방임적 자유보장 보다는 권위 있는 정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여 1958년 10월 드골을 대표로 선출하고 국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전폭적 지지를 받아 드골헌법을 채택함으로써 이원집행정부제라는 체제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가 대통령과 내각으로 분리되어 드골 같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지도자는 그 기능의 안정을 유지할 수가 없어 대통령과 내각의 갈등은 점차 정치적 혼란으로 재현되고 있다.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
대통령은 7년 임기(연임 가능)로 국민이 직접 선출하며, 권한은 의례적·형식적 권한 외에 평시에는 외교·국방에 관한 권한만을 가지나, 비상시에는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평시에도 대통령이 내각회의 주재권(제9조)을 갖기 때문에 행정권에 깊이 간여할 수 있는가 하면, 수상도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지도하며, 국방관리권을 가지고 최고국방회의, 국방위원회 등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기도 하여 실질적 행정수반으로서의 지위를 가짐으로써 실제 정치에서 자주 마찰을 빚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 의회다수파를 장악할 경우 내각을 보좌기관으로 장악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수상이 의회다수파의 지지를 받을 경우, 대통령은 내각책임제하에서의 대통령의 지위에 접근할 정도로 무력해진다. 그래서 더욱 마찰을 빚게 된다.
수상의 지위와 권한
▲ 수상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러나 수상도 각료의 임면제청권을 갖는 등, 광범위한 행정권을 행사함으로써 실질적 행정수반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지도하며 국방관리권을 갖고, 최고국방회의, 국방위원회 및 각의 등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기도 한다.
▲ 긴급조치 및 하원해산에 대한 건의권 등이 있다.
프랑스는 대통령과 수상의 권한을 헌법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해 놓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 제20조와 제21조를 모호하게 규정하여 그 해석에 따라 협조관계가 달라질 수 있게 한 결과, 정치적인 안정이 매우 불안정하게 되어 있다.
앞의 미국연방헌법의 대통령제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대통령이 실권을 갖는 대통령제에서는 정책정당제와는 상충되게 된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헌법이 프랑스의 이원집행정부제를 도입하였으나 독일의 제도를 다시 도입하여 상원의원을 임명제로 하여 연방옹호를 하게 하였는가 하면, 직선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등 의원내각제로 운영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입법부(立法府)
▲ 국회는 하원(下院) 중심의 양원제이고 상원은 단지 심사하는 기능만 보유한다.
▲ 국회는 헌법에 열거된 입법사항에 대해서만 법률로 제정할 수 있고, 그 이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행정부가 법규명령으로 집행한다.
▲ 대통령은 국회회기 중에도 법률안을 국민투표에 회부하여 법률로 확정할 수 있다.
▲ 국회의원은 국고수입의 감소 또는 국고지출의 증액을 초래하는 법률안을 제안하지 못한다.
▲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이 소정기간 내에 의결되지 않을 경우, 정부는 법규명령으로 집행한다.
▲ 하원이 내각불신임안을 채택하거나 내각의 시정방침 또는 일반정책설명에 대한 승인을 거부하면, 대통령은 내각을 사퇴시키거나 하원을 해산하거나 택일 할 수 있다.
▲ 국회의 자율적인 집회권을 제한하고 또한 임시회는 대통령이 재량으로 개·폐회할 수 있다.
▲ 국회 내부운영을 제한하여, 국회규칙은 헌법평의회에 사전에 합헌성심사를 받아야 하고, 상·하 양원의 상임위원회의 수는 각각 6개로 한정했다.
▲ 국회의원은 정부각료의 직을 겸하지 못한다.
우리가 프랑스 헌법제도를 채택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프랑스에서 드골헌법이 제 기능을 발휘하여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요인은 혼란했던 제4공화국에 대한 반작용도 있었지만, 드골이라는 인물의 탁월한 지도력을 통한 ‘권력의 인격화’를 통하여 혼란한 국회를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그렇지 못할 경우 프랑스 정치의 혼란은 미국의 대통령제를 다른 나라에서 채택했을 때와 같이 당연히 예정되는 것으로 보고 대폭적으로 개편해야 할 것이다.
드골의 리더십이 끝나고 드골이 사라지자 국민에 이어 정치인들의 자유분방한 기질이 다시 살아나 국회의 권한을 지나치게 축소했다고 하여 복원운동을 계속하는가 하면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가 이 제도를 택할 경우, 앞에서 설명한바와 같이 우리 정당제도의 불안정으로 인하여 훨씬 많은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음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를 택할 경우 프랑스 헌법 제20조와 제21조 등 권력구조전반에 대한 대폭적인 개편을 하지 않으면, 현재의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보다 더욱 불안정할 수 있다. 프랑스의 이원집행정부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미국의 지방분권적 연방제(支邦分權的 聯邦制)를 단일국가인 프랑스에 적용하기 위하여 미국연방정부대통령의 제한된 역할과, 미국 지방정부(支邦政府)의 준 독립적인 역할을 모방하여 행정부에 수상(首相)을 중심으로 하는 내각을 두어 대통령에 대응하는 실질적 행정수반을 둔 것 뿐이다.
그러나 다행히 양자가 긴밀한 협조관계를 가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최초로 프랑스 정치학자들이 비평한 것처럼 ‘두개의 머리를 가진 독수리’와 같이 끊임없는 분쟁과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히 예상된 것이다.
결론
세계 선진국들의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성숙할 수 있었던 것은, 헌법 때문이 아니라 그 헌법이 그 국가의 역사에서 정치·경제·문화를 숙성시킨 사실을 그대로 담아 놓았기 때문에 현실정치에서 굳이 헌법의 원칙을 위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유럽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영국·독일·프랑스 등을 보아도 그 국가들은 서로 인접해 있으면서도 헌법은 인접국의 것을 모방하지 않고, 그들 국가의 고유한 역사와 민족성 등 그 독특한 요소들을 그대로 살리면서 독창적인 헌법을 창안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후진국에 속하는 남미나 아시아 국가들은 그들 국가의역사와 전통과는 관계없는 미국이나 유럽의 헌법을 그대로 모방했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 좋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하여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이 헌법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치권은 헌법의 원칙을 벗어나 진영논리와 상황논리에 얽매어 극한적인 투쟁일변도로 치닫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번에 헌법을 개정하게 되면 신생국이나 후진국들이 택하는 혼합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 아니라 근 70년 동안 경험한 민주정치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국가가 처하고 있는 현실적인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타개할 수 있는 독특한 제도를 창안해서 아시아의 가장 선진민주국가 헌법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장석권 단국대 명예교수 전 한국헌법학회장
장석권 단국대 명예교수 전 한국헌법학회장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