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속된 공사 연기…올 7월 내부 비리 터져 또 중단
법인 이사진 전전긍긍…차남 김현철 “정상화 전념”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애와 치적을 기념하고, 주민생활시설을 목적으로 추진된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이 아직도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2012년부터 추진된 이 사업은 지난해 준공 허가를 받아 올 2월 개관 예정이었으나 여전히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계속된 공사 연기에다 지난 7월 터진 내부 직원 비리 문제가 컸다. 오는 22일 김 전 대통령 서거 1주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최근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57) 국민대 특임교수는 이에 대해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버님 생전의 소원이셨던 기념도서관이 현재까지도 완공이 되지 않고 있다”며 “1주년이 다가오는데 흉물로 변해가는 도서관을 보니 마음이 무척 무겁다”고 했다.
지난 1일 오후 찾아간 서울 동작구 소재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의 외관은 화려했다. 콘크리트 벽돌을 쌓아올린 듯한 세련된 외벽은 주변 건물들보다 단연 눈에 띄었다. 하지만 감상도 잠시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공사용 칸막이가 처져 막혀 있었고, 다른 회전문 역시 안전용품 라바콘이 세워져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밖에서 건물 내부를 들여다보니 공사가 중단된 듯 각종 자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화려한 외관과는 정반대 모습이었다. 좀 더 자세히 보고자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건물 경비원이 극구 제지한 탓에 들어갈 수 없었다. 마주친 2명의 경비원은 사진 촬영과 내부 진입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주변을 통제했다.
기념사업·주민시설 위해 시작했으나…
기념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운동 과정과 문민정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추진돼 2012년 첫 삽을 떴다. 김 전 대통령의 재산과 민간 모금, 국고를 합쳐 총 280여억 원이 모였다. 도서관 건립에 들어가는 공사비는 총 265억 원으로, 이중 75억 원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 1~2층에는 고인의 생애를 담은 전시관이 들어서고, 나머지는 도서관 등 주민들이 이용할 공간으로 계획됐다.
기념도서관은 당초 2013년 5월 개관 예정이었지만 공사가 계속 연기됐다. 마침내 지난해 9월 준공허가를 받고, 내부 인테리어·전시·조경 등의 작업만 남아 올 초 개관하는 듯했다. 하지만 다시 미뤄지더니 지난 7월 사고가 터졌다. 사업을 주도했던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 내부 직원의 횡령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간 공사가 연기될 때마다 ‘재원부족설’이 제기됐지만 해당 법인은 이를 부인해왔다.
김영삼 민주센터 김 모 사무국장이 공사비 일부를 가로챘다는 고발장이 경찰에 접수됐고, 관련 정황을 포착한 경찰은 법인 사무실과 김 씨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사정기관에 따르면 김 씨는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40여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김 씨에 대해 구속 수사 중”이라며 “아직 기소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겉만 멀쩡한 흉물로
이 사건으로 또다시 공사가 중단됐다. 국고가 투입된 전직 대통령의 기념사업이 다시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김영삼 민주센터 관계자는 “7월 이후 공사가 진전된 게 없다”며 향후 계획 등 추가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다.
김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교수에 따르면 상황은 심각해 보인다. 민주센터 이사인 김 교수는 “기념도서관이 각종 세금과 공과금도 제대로 못 내 과태료와 압류조치를 받는 한심한 처지가 됐다”며 “기념도서관이 점점 흉물로 변해가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이어 그는 사단법인의 그간의 비상식적 행태에 대해 지적했다. 김 교수는 “법인설립 6개월이 지나서야 이사 취임이 가능했고, 아버님이 기부한 거제도 땅을 우리 가족과 상의도 없이 매각처분하는 등 도저히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며 “이후 2013년 9월 긴급이사회를 소집해 기존 이사회 개최 운영 방식의 문제점과 거제부동산 매각 등을 따져 이에 대한 책임을 해당 사무국장에게 물어 해임코자 했다. 하지만 일부 이사들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돼 결국 횡령과 같은 불상사가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사진은 현재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런 지경이 될 때까지 무얼 했는지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돌아가신 아버님께 송구한 마음 그지없다”고 밝혔다.
오는 22일은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다. 경상남도 거제에 있는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에서는 서거 1주기를 맞아 11월 한 달간 추모 사진전을 열고 있다. 굳게 닫혀 있는 동작구 기념도서관과 대비된다.
기념도서관을 두고 하루 빨리 정상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동작 주민 김모씨는 “어서 도서관이 개관을 해 지역 시민들이 책도 보고 공부도 하며, 역사와 민주주의를 알아갈 수 있는 소중한 서울의 랜드마크 도서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다른 주민 홍모씨도 “어서 개장해 거제처럼 사진전도 열고 주민들을 위한 지역시설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관련해 김 교수는 “우선 당장 서거 1주년 준비에 전념하고 이후 현 이사회체제를 새롭게 개편해 기념도서관을 하루 빨리 개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