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토종브랜드의 몰락
국산 토종브랜드의 몰락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6-11-04 18:37
  • 승인 2016.11.04 18:37
  • 호수 1175
  • 4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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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마저…‘토종(자)부심 사라진다’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국내 토종브랜드들의 몰락이 이어지고 있다. 일명 ‘토종(자)부심’을 자랑하던 완구업체 손오공과 카페베네는 경영난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외국계 자본에 넘어갔다. 하나 둘 쓰러지는 토종브랜드 때문에 유통업계의 표정도 어둡다.

국내의 대표 완구 기업 손오공이 ‘바비인형’으로 유명한 글로벌 완구 회사인 마텔에 매각됐다.

손오공은 지난달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최신규 손오공 회장이 마텔에 자신의 지분 16.99% 가운데 11.99%를 매각하기로 했다”며 “최대주주가 최 회장에서 마텔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2대 주주가 됐다. 손오공은 변신 자동차 로봇 ‘터닝메카드’ ‘헬로카봇’ 등으로 유명한 국내 1위 완구 기업이다. 지난해에는 매출 1250억 원을 달성했다.

마텔은 레고·해즈브로 등과 함께 세계 3대 완구 업체로 불린다. 마텔은 지난 한 해 국내에서 약 280억 원 매출을 올렸다. 손오공 측은 “마텔 측의 제안으로 지분을 넘겨주게 됐다”며 “향후 경영은 김종완 대표 등 현재 경영진이 그대로 맡고, 마텔 완구의 국내 독점 유통권도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손오공과 함께 국내 완구산업을 이끌던 ‘영실업’도 홍콩 사모펀드인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으로 넘어갔다. 이에 따라 국내 완구산업이 외국계 자본에 완전히 종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한 국내 토종기업들은 키덜트시장의 성장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떠오른다.

유아용 시장만 뜬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완구시장은 1조2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90% 이상이 외국산 제품이 차지한다.

국내 토종회사들이 만든 완구제품은 ‘뽀로로’와 ‘로보카 폴리’, ‘로보트 태권브이’ 등이 있지만 이들은 유아용 제품이 대부분으로 키덜트 족을 위한 제품은 전무한 상태다.
국내업체들도 과거보다 자체 브랜드를 확보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국내 캐릭터산업은 ‘뽀로로’를 중심으로 유아용 캐릭터에 집중돼 있다.

그나마 최근 카카오나 라인이 개발한 이모티콘 캐릭터가 키덜트 사이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국내 캐릭터 개발자들이 창의적 아이디어와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제도적 환경이 미흡하고 인프라 확충을 위한 자금지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캐릭터 산업은 성장하고 있지만 고유의 캐릭터가 없다 보니 대부분이 수입산”이라며 “국내 캐릭터 산업이 뽀로로 같은 유아형 캐릭터에 치중해 있어 ‘키덜트’ 족을 잡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토종 브랜드의 몰락이 완구 및 캐릭터 사업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종의 자존심 ‘카페베네’ 역시 외국계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겼다.

김선권 창업주는 카페베네를 선보인 지 5년 만에 세계 곳곳에 1000개 매장을 내며 ‘프랜차이즈 신화’를 이끌어 낸 인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무리한 브랜드 확장에만 치중한 탓에 신규·해외사업에서 커다란 손실을 봤고, 결국 지난해 12월 말 사모펀드 ‘K3 제5호’로 경영권을 넘겼다. 동시에 김 회장의 지분율도 49.5%에서 7.3%로 하락, 한때 뜨겁게 주목받던 ‘김선권 신화’도 막을 내렸다.

마찬가지로 토종 속옷업체들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
지난해 8월 말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국산 간판급 속옷 브랜드인 남영비비안, BYC, 좋은사람들 등의  상반기 매출이 전년도보다 일제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영비비안의 상반기 매출은 1060억 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1155억원)보다 8.2% 줄었고 영업손실도 16억 원을 기록했다. BYC의 상반기 매출은 813억원으로 전년도(825억원)보다 1.5% 감소했고. 좋은사람들 매출도 같은 기간 676억원에서 601억원으로 11.1% 떨어졌다.

동종업계 전문가들은 토종 속옷 브랜드의 부진과 관련해 “속옷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분석한다. SPA(제조·유통 일괄형)브랜드 유니클로의 경우 ‘히트텍’ 에어리즘’ 등 기능성 속옷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것과 비교된다는 것이다.

기사회생 브랜드도 있다

반면 새로운 인수자를 만나 국내에 다시 안착한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여성 최장수브랜드 ‘톰보이’다.

톰보이는 2006년 창업주 최형로 씨의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타계하면서 생긴 경영공백으로 사세가 기울었다. 이후 전문경영인을 영입했지만,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수익성이 악화돼 결국 32년 만에 주인이 바뀌었다.

문제는 과도한 부채, 금융권 출신의 새로운 오너였던 신수천 씨도 부채를 이겨내지 못하고 2010년 최종 부도를 맞고 말았다. 2009년 1600억 원대였던 매출은 2010년 820억 원, 2011년 259억원으로 곤두박칠쳤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톰보이는 2011년 새 주인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을 만나 부활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톰보이를 살리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2012년 180억 원이었던 매출이 지난해 860억 원으로 늘었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950억 원이고 내년 목표는 1200억 원이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톰보이는 내년 론칭 40주년을 앞두고 브랜드명을 스튜디오 톰보이로 바꾸고 새 옷을 입었다.

또 다른 토종브랜드인 프로스펙스도 모 그룹인 한일그룹이 외환위기 여파로 부도가 나자 분사되어 2006년 LS그룹 계열사인 E1(옛 LG칼텍스가스)에 매각되었다가 2007년에 정식으로 인수됐다. 이후 사명을 LS네트웍스로 개칭하고, 현재 프로스펙스W와 프로스펙스R 라인을 런칭중이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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