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 9월 7일 충남 청양 군민체육관에서 열린 전국복싱우승권대회서 고등부 학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던 김정희 선수는 시합을 마치고 갑작스럽게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다. 복싱계는 유독 선수들의 사망사고가 잦다. 김득구·최요삼·배기석 등 많은 복싱선수들이 사망했지만 선수들의 의료체계는 변한 게 없다. [일요서울]에서는 안전사각지대에 놓인 복싱선수들의 삶을 조명해 봤다.
현장 의료진 인원 부족 등 현장 대응 문제
화성시·화성시체육회 ‘소속 논란’에 책임 회피
16살이었던 고 김정희 선수는 시합 후 관중석의 아버지 품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뇌출혈로 쓰러진 김 선수는 헬기를 이용해 천안 단국대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병원에서 한 달여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지난달 9일 오전 결국 숨을 거뒀다. 김 선수의 어머니는 주검이 된 아들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김 선수는 헤드기어를 착용했고, 의료진 또한 링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김 선수 어머니는 “사고 당일 애 아빠만 있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정희가 경기를 마치고 아빠 옆에서 쉬던 중 쓰러졌고,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를 타고 경기장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달렸다. 허나 출발 전 정희의 상태를 미리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는 산소 및 장비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정희는 1시간 30분 만에 헬기로 단국대 병원으로 옮겨졌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막 수술실에 들어가고 있었다.”고 밝혔다.

국가대표를 꿈꾸던 소년의 죽음
화성시는 ‘나 몰라라’
또, 김 선수의 집 근처 체육관 관장이자 당시 코치인 P 씨는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정희의 사고는 너무나 안타까워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참았다.
김 선수는 지난해 전국소년체전 60kg 복싱 선발전에서 예선부터 결승까지 KO승을 차지해 1위를 하는 등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평소 활발하고 자신감이 많았으며, 국가대표를 꿈꾸는 학생이었다.
사고 이후 복수의 언론매체 보도에 따르면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의료진이 휴대전화를 만지며 딴청을 피우고, 인원도 규정에 미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의료진과 심판의 발 빠른 대처가 아쉬운 대목이다.
이 밖에도, 고 김정희 선수 유가족은 지난 18일 채인석 화성시장에게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민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회 당시 김 선수는 ‘화성시체육회’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화성시는 ‘화성시복싱협회’로부터 김 선수의 출전사실을 사전 보고를 받지 못해 ‘개인자격’이라며 사망사고를 도외시했다. 두 기관은 과거 김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둘 때 화성시의 이름을 높였다는 기사까지 실을 정도로 김 선수를 홍보하고 응원했으나, 사고가 발생하니 ‘나몰라라’ 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후 화성시는 민원을 접수하고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화성시체육회 관계자는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자칫 잘못하면 저희가 정말로 잘못이 있는 걸로 비춰질 사안이 돼서 그게 민감하다.”고 밝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 김정희 선수의 어머니는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화성시와는 민원 진행 중이며, 화성시복싱협회장과 연락을 통해 대면을 약속 받았다.”고 전했다.
복서들은 뇌 손상이라는 위험요소를 안고 링에 오른다. 그러나 과거 복싱선수들의 사망사고는 프로경기에서 많이 나왔다. 아마추어 복싱대회에서 김 선수와 같은 사고가 난 경우는 드물었다. 일반 아마추어 복싱대회는 3분 3라운드가 기본이다. 12라운드까지 치르는 프로복서와 비교하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뇌 손상 위험 안고 링에
김득구·최요삼·배기석 선수도 사망
과거 링에서 사망한 선수들로는 김득구·최요삼·배기석 등이 있다. 1982년 동양챔피언 김득구 선수는 세계권투협회 타이틀 매치에서 라이트급 챔피언 레이 맨시니 선수와 경기를 진행했다. 김 선수는 상대선수와 난타전을 펼쳤지만 이후 그로기 상태로까지 몰렸다. 결국 14라운드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턱에 맞고 바닥에 쓰려졌다. 의식을 잃은 김 선수는 뇌수술을 받았으나 4일간의 뇌사상태 끝에 사망했다. 당시 세계 복싱계는 거센 논쟁에 휩싸였고, 선수가 위험한 상태임에도 계속 시합을 강행시킨 심판은 죄책감에 사고 7개월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김 선수의 사망은 복싱의 룰까지 바꿔놓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복싱계는 기존 15라운드로 진행된 경기를 12회로 줄였다.
최요삼 선수는 2007년 세계권투기구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털 타이틀 1차 방어전에 나섰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8일 만에 뇌사판정을 받았다. 더욱이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30여 분 떨어진 병원으로 이송하는 등 안전 조치미숙으로 논란을 빚었다. 이후 허술한 응급의료체계가 세간의 질타를 받았고, 링 의료진에는 반드시 신경외과 전문의를 앉히게 하는 등의 여러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2010년 한국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 나섰던 배기석 선수가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를 받았지만 숨을 거뒀다. 배 선수는 사고 이전 2경기 연속 KO패를 당하고 체급까지 올린 상태였다. 그럼에도 한국 타이틀전으로 치러지도록 승인한 것은 선수 보호시스템의 문제다. 복싱이 위험한 스포츠인 만큼 응급의료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건·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