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박근혜 정권이 비선 실세 최순실 씨에게 본격적으로 국정을 농단 당하게 된 시점은 정확히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의 2선 후퇴 시점과 맞물려 돌아간다.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비선조직인 정윤회-최순실, 문고리 3인방과 7인회 간 권력 암투가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 지시로 작성된 문건 파문은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행정관을 청와대에서 떠나게 만들었고 김기춘 비서실장마저 옷을 벗으면서 비선그룹의 승리로 전반전은 막을 내렸다. 비선 실세로 지목된 정씨 역시 문건 파문으로 권력의 핵심에서 물러났지만 막후 비선 실세였던 최 씨에게는 문건이 터지기 전에 이혼한 상태로 이미 ‘버리는’ 카드였다. ‘현재 진행형’인 김기춘 7인회와 최순실 팔선녀 간 치열한 권력 암투 속으로 들어가보자.

- 2016년 10월 최순실 국정 농단과 7인회의 ‘반격’
- “유령과 싸우는 것 같다!”
2014년 12월3일 7인회 멤버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정윤회 문건 유출과 관련해 이 같은 심경을 토로했다. 정 씨 문건 파문은 아무 직책이 없는 정씨가 문고리 3인방을 통해 국정개입은 물론 공직인사에 개입했고, 이를 공직기강 차원에서 조사한 박지만 씨의 측근이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사건이다. 당시 김 비서실장은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수수방관’했다는 점을 들어 정치권에서 책임론이 일었다.
문건에는 정 씨가 청와대 문고리 3인방과 정기적 모임을 갖고 김기춘 비서실장 경질을 모의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어 충격을 줬다. 당시 검찰은 정 씨 문건 파문을 ‘카더라식’ 지라시로 규정해 유야무야했다. 하지만 최근 정 씨의 전 부인인 최순실 씨가 박 정권의 비선 핵심 실세로 국정농단한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면서 정윤회 문건 파문은 김기춘 ‘7인회’와 최순실 ‘팔선녀’간 보이지 않는 권력 암투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정윤회 문건 파문… 승자는 ‘최순실이었다’
정 씨 문건 파문의 시작은 2013년 말 여의도 증권가와 정치권에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이 돌면서 김 실장이 공직기강실에 조사를 의뢰하면서부터다. 이를 담당한 박관천 행정관은 2014년 1월 정윤회 보고서를 작성해 조응천 공직기강 비서관에 제출했고 이는 김 실장 손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김 실장은 내용이 황당하고 증거도 불확실해 대통령에 보고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문건에는 “7인회 멤버인 최병렬 전 대표가 추천해 대통령 비서실장이 됐고 김용환 새누리당 고문도 최근 김 실장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내용도 담겨 있어 7인회 멤버 간 이간질 시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해 당시 최병렬 전 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육두문자를 내뱉으여 “X같은 사람의 XX가 어딨나? 희한한 세상이다”고 대로했다. 특히 최 전 대표는 “청와대에는 가지도 않는다”면서 “나쁜 사람들이다. 마음대로 하라고 해라”고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최 전 대표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2013년 8월 청와대에 들어갈 당시만 해도 7인회가 추천한 게 아니냐는 본지 기자의 질문에 “근래에는 김 실장과 함께 밥 먹은 적도 없다. 언젠가는 먹겠지만…”이라고 웃어넘기는 등 여유가 넘쳐났다. 결국 7인회는 박 대통령 취임한 첫해인 2013년 8월까지는 관계가 원만했다. 그러나 정씨와 최씨 등 비선 실세와의 갈등설은 4개월도 안 된 2013년말 ‘김기춘 교체설’이 나돌면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권력 암투의 시작은 김 전 실장이 자신을 흔드는 배후세력에 대한 진상조사를 지시하고 2014년 1월 정윤회 문건이 작성되면서다. 그리고 2014년 11월28일 세계일보 보도로 ‘정윤회 문건 파문’은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김기춘 전 실장의 7인회와 비선 실세인 최순실 ‘팔선녀’간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황이었다. 당시 김용환 고문은 “7인회와 거리를 두는 것은 잘은 모르지만 뭔가 좀 이상하다”며 “전에는 밥먹고 편안하게 조크도 하면서 잘 지냈지만 청와대 들어가면서 달라졌다. 무서운 분이다”고 평할 정도였다.
한편 김 실장의 7인회와 비선 실세였던 최 씨의 팔선녀사이 갈등의 핵심은 공직인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정윤회 문건이 터지기 직전 7인회와 비선 실세 최씨와 관련해 부딪친 인사는 크게 두 건이 었다. 하나는 내정 단계에서 낙마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임명이었고 하나는 “북한의 핵무기 소유는 생존권과 자립을 위해 약소국의 당연한 추구”라고 주장한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인사다. 김 전 수석은 최순실 인맥으로 최측근인 ‘문화계의 황태자’로 불린 차은택 씨의 외삼촌이다.
김 전 수석 인사는 김 전 실장과 무관하게 최순실 씨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강경보수’로 알려진 김 전 실장 정체성과 상반되는 인사로 김 전 실장은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석비서관을 꿰찼다는 것은 당시 최 씨가 어느 정도 비선 실세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7인회 멤버인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과 ‘서울고 선후배’관계라는 점에서 7인회가 추천한 인사로 알려졌다. 하지만 KBS가 ‘친일사관’을 담은 문 후보자의 동영상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면서 인사청문회도 거치기 전에 자진사퇴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7인회’와 관계 있는 문 후보자는 낙마했고 박 정권과 북핵 관련 배치되는 주장을 한 김 전 수석은 살아남았다.
결국 2015년 2월 김 비서실장은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김 실장의 마지막 고별사는 “박 대통령을 잘 보필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최근까지 김 전 실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 씨의 존재는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민정수석실에 근무한 한 인사는 TV조선과 인터뷰에서 “김 전 실장에게 ‘최 씨에 가까이 가면 다 죽는다’고 구두 보고했다”고 증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7인회’ 멤버 최병렬 조카 민정수석 임명
특히 최 씨와 함께 호가호위한 팔선녀의 존재는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 부인을 비롯해 고위층 인사의 부인이 최 씨와 함께 이른바 ‘팔선녀’ 모임을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팔선녀 멤버로 지목된 3명은 모두 최 씨에 대해 본 적도 통화한 적도 없고 팔선녀 관련 들어본 적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최 씨 역시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팔선녀는 소설이고 그런 그룹을 만든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공개된 우 전 수석 부인을 비롯해 박 대통령의 숨은 실세로 불리는 Y대 교수 부인, 금융권 H 전 회장 부인, 전 차관 부인, 전 장관 부인 등 5인방은 압구정동 여성 사우나실과 신라호텔 ‘팔선’ 중식당에서 수시로 만나 최씨와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C그룹 부회장, H기업 회장 부인은 부정기적으로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7인회 멤버’인 최병렬 고문의 조카인 최재경 변호사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후임으로 들어가면서 최 씨 등 비선그룹에 대한 ‘7인회’의 반격이 시작된 게 아니냐며 권력 암투 후반전이 시작됐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