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전, 박공주헌정시, 시일야방성대곡 등 대학가 풍자글 화제
각종 패러디 사진, 신조어, 최순실 게임까지 등장
"풍자와 해학 통해 사건 핵심 요소들 널리 환기시켜"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어떤 공적 직책도 없는 ‘민간인’이 국정을 농단한 초유의 사건이 한국 사회를 강타한 가운데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이를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패러디들이 여러 형태로 쏟아지고 있다. 특히 대학생들은 시국선언을 넘어 재치와 유머가 깃든 각종 풍자물을 창안해 SNS를 통해 소통하며 큰 공감대를 얻고 있다.

지난 30일 페이스북 커뮤니티인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계정에는 '공주전'이라는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공주전은 '옛날 헬-조선에 닭씨 성을 가진 공주가 살았는데 모친을 잃은 공주가 스물셋이 되던 해 신분 세탁의 기회를 엿보던 무당 최씨가 공주를 뵙기를 청했다'는 식으로 전개하며 최순실 게이트를 조목조목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이 글은 2일 오후 1시 현재 1만9000여명이 공감했고, 5450회 공유됐다. 게시물을 본 시민들은 글쓴이의 해학에 감탄하며 4000여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출중한 필력으로 최순실의 비선실세 의혹을 풍자한 '공주전'을 쓴 학생이 현재 이탈리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커스뉴스에 따르면 세태풍자 글을 쓴 이 학생은 이탈리아에서 공주전을 직접 써 올렸다는 것.
포커스뉴스는 2일 "'공주전'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학생을 인터뷰하기 위한 언론들의 관심을 집중되자 이 여학생의 부모와 인척들은 조심스럽다는 반응을 전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박공주헌정시'(朴公主獻呈詩)라는 제목의 한시도 인기다. 내용을 살펴보면 '근혜가결국 謹惠家潔國(가정을 사랑하고 국가를 단정히 함을 삼간다면)', '해내시어타 該奈侍於他(그 어찌 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오)'와 같이 한자의 독음과 해석이 맞물려 현 시국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또 1905년 장지연의 항일 논설을 패러디한 성균관대 학생들의 '시일야방성대곡' 대자보도 등장했다. 학생들은 "오천만 꿈 밖에 어찌하여 비선 실세 개입이 사실로 나타났는가. 이 진실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온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조짐인즉, 그렇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본 뜻이 어디에 있었던가"라며 통탄했다.
최순실과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을 풍자해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은 교내에서 '시굿선언'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우리가 살고 있다고 믿었던 민주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시국선언을 낭독하고 경기도당굿 부정놀이, 통영오광대 문둥춤, 동해안 오구굿 등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이밖에 각종 패러디 사진들과 신조어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장 많이 통용되고 있는 신조어인 '순시리(순 Siri)'는 최씨의 이름 순실과 애플의 음성인식 서비스인 Siri를 합성한 단어다. 애플 사용자가 시리에게 물어보듯 대통령이 국정 현안을 최씨에게 모두 물어본다는 조롱이 담겨져 있다.
황당한 시국을 풍자해 '어이상실'을 대신해 '어이순실'이라는 표현도 나돈다.
또 지난달 31일 최 씨가 검찰에 출석할 당시, 벗겨진 신발 한 짝의 모습을 두고 최씨를 '순데렐라'라고 비꼬는가 하면 '악마는 프라다를 신는다', '프라다가 순실을 벗었다' 등의 패러디 사진들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구글 앱스토어에서는 '순실이 닭 키우기', '최순실의 말 키우기', '슈팅순실' 등 모바일 게임까지 연이어 출시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풍자 열풍에 대해 젊은이들 또는 민초들의 적극적이고 유쾌한 저항의 방식이라고 분석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참담한 상황을 방관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나서서 풍자와 해학을 통해 사건의 핵심적인 요소를 재미있게 짚어주면서 환기시키고 있다"며 "이제는 사람들이 수동적인 입장에서 단순히 뉴스를 통해 사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건을 재해석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설, 사진 등 패러디물로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진부 시국선언보다 날카롭고 기지가 넘치는 풍자가 훨씬 더 사람들의 허탈한 감정을 달래줄 수 있고, 공감대 형성에도 효과가 크다"고 덧붙였다.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