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채무면제유예상품 논란에 소비자 부글부글
카드사 채무면제유예상품 논란에 소비자 부글부글
  • 남동희 기자
  • 입력 2016-10-28 19:43
  • 승인 2016.10.28 19:43
  • 호수 1173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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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하듯 빨리 말하더니 “가입됐다고요?”
민혜영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심사과장이 지난 1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여신전문금융약관을 심사해 채무면제 유예상품의 가입 사실을 알리지 않는 조항, 선불카드의 잔액환불을 제한하는 조항 등 43개 약관 및 표준여신거래기본약관 상 13개 유형의 불공정약관조항에 대해 금융위(금감원)에 시정 요청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매달 카드 사용금액의 0.5% 수수료 명세서에만 기재

공정거래위원회 ‘가입여부 고지할 것’ 약관 수정 촉구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채무면제유예상품은 신용카드사에서 제공하는 일종의 보험 같은 서비스다. 하지만 지난 5월부터 이 상품이 불완전판매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소비자들의 쏟아지는 비난으로 지난 8월 카드사들은 채무면제유예서비스의 신규 판매를 중단했고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기가입자들의 서비스는 유지하고 환불 기준도 모호한 데다 지난달 첫 주에 있었던 카드사들의 재판매 눈치작전은 뿔난 소비자들에게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3일 금융위원회에 카드사의 채무면제유예상품 약관 시정을 요청했다. 공정위의 이번 요청으로 재조명 된 채무면제유예상품 논란에 대해 되짚어봤다.

#1. 소비자 A씨는 10여년 전 신용카드회사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직원은 사고나 질병으로 신용카드 대금을 납부하지 못할 시 카드사에서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서비스를 설명했다. A씨는 별도 비용에 대한 언급이 없어 흔쾌히 서비스 가입에 동의했다.

그런데 며칠 전 우연히 카드명세서를 확인해본 A씨는 매달 1만 원이 넘는 돈이 10년이 넘게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A씨는 해당 카드사에 연락해 녹취를 확인해보니, 알아들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말하는 부분에 금액이 설명돼 환불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2. 소비자 B씨는 우연히 카드 명세서를 확인하다 2011년에 본인이 채무면제유예상품에 가입돼 그 후로 매달 서비스 비용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본인이 가입한 기억이 없는 상품이라 환불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해 녹취록을 요구했다.

녹취록에는 처음부터 보험이 아니라 카드 값을 면제해주는 혜택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1분 40초쯤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유료 서비스라는 말과 소정의 수수료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바로 ‘우수 고객에만 제공하는 서비스로 저희 카드 해지하지 말고 오래오래 사용하시라는 뜻에서 가입을 권해드리는 겁니다. 괜찮으시죠?’라고 말하며 마치 카드 사용 시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일종의 혜택인 듯 가입을 유도했다.

B씨가 억울함을 따지자 카드사 직원은 50%만 환불해주겠다고 답했다. 이에 B씨는 수긍할 수 없다고 했고 오랜 말씨름 끝에 57회 중 45회분을 환불받았다. 하지만 카드사 측은 이마저도 5회는 3일 안으로 20회는 7일 뒤 13회는 회의 후 3일 뒤 입금해준다는 식으로 환불 절차를 혼란스럽게 설명해 B씨를 더욱 화나게 했다.

위 사례들은 지난 1년 동안 공정거래위원회의 1372소비자보호센터에 접수된 카드사의 채무면제유예상품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항의 사례 중 일부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2부터 2015년 3월까지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카드사의 채무면제유예상품 관련 소비자상담 544건 중 79.3%가 불완전판매와 연관된 불만이다.

채무면제유예상품은 신용카드사가 고객이 사망, 질병으로 인한 장기 입원, 또는 사고를 당해 채무 불이행 상태 시 납부할 카드 결제 금액을 면제하거나 유예해 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가입하면 매월 카드 결제금액의 0.5% 정도를 수수료로 낸다.

문제가 된 것은 이 상품의 판매과정이 ‘불완전판매’라는 것이다. 불완전판매는 소비자에게 금융사가 지켜야 할 중요사항들을 누락했거나 허위·과장 등으로 오인을 유발하는 판매행위를 말한다. 채무면제유예상품이 불완전판매라는 주장이 제기된 원인은 주요 판매채널이 텔레마케팅이기 때문이다.

전화상에서 판매원은 중요사항을 올바로 전달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고 소비자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을 경우 바로 가입됐기 때문이다. 또 가입 후 서비스 진행이 카드 이용명세서를 열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는 점도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원인이 됐다.

환불 요청 쇄도

2015년 2분기 7개 카드사(롯데, 삼성, 신한, 하나, 현대, BC, KB국민)를 통틀어 집계된 채무면제유예서비스 가입 유지자 수가 345만9000명, 올해 2분기 312만9000명으로 1년간 33만 명이 줄었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불완전판매로 인정된 채무면제유예상품을 구매한 고객들게 환불을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환불 과정은 거의 모든 카드사가 비슷하다고 말했다. 환불은 고객의 가입 당시 녹취를 확인하고 불완전판매 여부를 판단한다. 이 관계자는 녹취 속 불완전판매 여부를 판단하는 자세한 기준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현재 각 카드사들은 채무면제유예서비스 해지나 환불 관련 연결 번호를 따로 개설해 고객의 문의에 응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고객들은 불완전 판매가 인정된다 해도 소멸형 상품이기 때문에 돌려줄 수 없다는 이유로 환불을 거부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익성 높아 포기 못해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카드사와 ‘불합리한 영업 관행 개선방안 이행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채무면제유예서비스 가입자에게 수수료율과 수수료 액수를 알리는 것을 의무화했다.

금융당국의 감독이 강화되고 소비자들의 채무면제유예상품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새 가입자들의 유인이 줄어들자 카드사들은 지난 8월부터 신규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하나카드와 BC카드는 지난 7월부터 현대카드, 삼성카드와 신한카드는 지난 8월부터 채무면제유예서비스의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 뒤이어 롯데카드와 KB국민카드도 8월 말로 해당 서비스의 신규 판매 중단을 발표했다. 우리카드는 처음부터 판매하지 않았다.

신규 판매는 중단했지만 기존 가입자들에 대한 서비스는 유지 중이다. 당시 카드사들은 해지를 원치 않는 고객들도 있기 때문에 기가입자들에 대한 서비스는 지속할 것이라 밝혔다.

이처럼 기존 서비스가 유지되고, 채무면제유예서비스를 통한 수입이 적지 않기 때문에 신규 상품을 재판매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한 카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초 2~3곳의 카드사들이 온라인으로 채무면제유예상품을 재판매하려 해 한 차례 소동이 있었다. 해당 카드사들은 소비자들이 항의하자 재판매 움직임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채무면제유예서비스가 카드사들에게 가져다주는 수익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재판매하려던 의도는 확실히 있었으나 소비자들의 반발이 너무 거세자 일단 부정한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3일 금융위원회에 채무면제유예 상품에 가입 사실을 소비자에게 반드시 알리도록 신용카드사 약관 자체를 바로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5월 금감원과 카드사의 MOU로 수수료와 수수료율 통보가 의무화되고 카드사들이 신규 판매는 중단했지만 가입 사실을 통보할 의무가 없는 약관 자체로 언제든 다시 문제가 될 여지가 있어 약관 수정을 금융위원회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현재 약관 시정을 검토 중이며 업계는 바뀔 채무면제유예서비스의 약관을 기다리고 있다.

남동희 기자 donghee07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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