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바보가 아니다. ‘기름장어’라는 별명대로 정치적 처세에 능하고 정치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내년 대선을 향한 본인의 집념과 의지가 확고하다면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만신창이가 돼버린 여권은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이 현실화된 마당에 망해가는 새누리당과 손잡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반기문 총장의 선택지에는 예측 못할 반전카드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

- ‘불안했던’ 반기문·친박 밀월설 ‘이상 기류’
- 潘 결별 선언시 대선지형 요동…제3지대론 유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최종 행선지는 과연 새누리당일까? 최순실 게이트가 온나라를 뒤흔들면서 내년초 귀국 이후 반기문 총장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는 것은 물론 새누리당마저 지지율 붕괴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반 총장의 마음이 새누리당을 떠났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와 박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새누리당이 난파 직전의 상황에 내몰리면서 반 총장이 전혀 다른 선택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반 총장의 또다른 선택지는 제3지대가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는 반 총장이 새누리당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무소속 대선후보로 나서 대선 막판 보수후보 단일화 차원에서 새누리당과 결합할 것이라는 과거 시나리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 더구나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가 어디까지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데다 내년 초 전개될 개헌 정국 등 정치지형의 유동성이 너무나 커졌기 때문이다. 반 총장으로서는 또 하나의 꽃놀이패를 쥐는 것이다. 다만 새누리당이라는 정치적 기반을 포기할 경우 자칫하면 유동적인 대선 지형에서 정치적 미아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순실 게이트'로 與와 결별 임박
반기문 총장은 여권의 구원투수로 대권가도에 합류했다. 친박계 일각에서 제기된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설이 대표적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뒷받침과 친박계의 연이은 러브콜은 반 총장을 여권을 대표하는 대선후보로 끌어올렸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반 총장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조직과 후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 친박계 역시 마땅한 대선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반기문 총장만큼 매력적인 카드는 없었다.
반 총장은 각종 여론조사기관의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놓친 적이 거의 없었다. 총선과 마찬가지로 문재인·안철수라는 야권 분열 구도 속에서 반기위 1위라는 차기 지지율 구도가 이어진다면 반 총장과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결정타는 지난 4월 20대 총선이었다. 반기문 총장은 총선 이후 여권의 확고부동한 대권주자로 여겨졌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하면서 과반이 붕괴된 것. 더구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야권을 분열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새누리당의 참패는 상상 이상의 충격이었다.
총선 이후 대권경쟁 구도에서 새누리당은 늘 야권에 밀렸다. 문재인·안철수라는 야권의 투톱에 유력 주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유승민 전 원내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은 비교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죽하면 현역 광역단체장인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에 대한 조기 등판론마저 흘러나왔다.
이후 반기문 총장에 대한 새누리당의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여권의 정권재창출을 담당할 구원투수로 확실하게 떠오른 것. 반 총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5월 제주포럼 참석차 5박 6일간 방한한 반 총장 역시 강력한 권력의지를 보였다. 충청권의 맹주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비밀회동한 것은 물론 여권의 텃밭인 대구·경북(TK) 지역을 주로 방문하는 기성정치인 뺨치는 정치적 행보를 보여줬기 때문.
반 총장에 대한 새누리당의 기대감은 이른바 ‘반기문 예우법’ 해프닝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종배 새누리당 의원이 ‘전직 국제기구 대표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안’ 대표발의를 추진했다가 야당의 비판을 산 것. 핵심은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기구 대표를 전직 대통령에 준하는 수준으로 국가 예산을 통해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 만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그동안 쉬쉬해왔던 최순실 게이트가 현실로 드러나면서부터다. 반 총장과 새누리당의 밀월은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을 대혼란에 빠뜨린 최순실 게이트의 후푹풍으로 박 대통령은 탄핵과 하야가 거론된 정도의 위기 상황이다. 패닉에 빠진 새누리당은 우왕좌왕하면서 당의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반 총장과 새누리당의 결별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예정 순서라는 전망이다.
‘지지율 붕괴’ 집권여당, 반기문 선택 ‘안갯속’
새누리당은 다급해졌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재창출 가능성이 극도로 희박해졌기 때문. 여권 주자로 반 총장을 제외하면 새누리당 차기 주자들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비교할 때 게임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반 총장의 새누리당 합류는 어려워진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재창출을 염원하는 새누리당으로서는 반 총장에게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새누리당의 현 상황은 20대 총선 참패 때보다 더 큰 위기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끝없이 추락하면서 새누리당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누리당은 총선 참패 이후에도 평균 3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정당 지지율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최근에는 지지율이 역전됐다. 더불어민주당에 1위 자리를 내주고 만 것.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의 10월 4주차 주중집계(10월 24∼26일,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5%p)에 따르면, 새누리당 26.5%, 민주당 30.5%로 각각 나타났다.
새누리당은 3.1% 포인트 떨어지고 민주당이 1.3% 포인트 반등하면서 나타난 지지율 역전이다. 리얼미터 측은 “민주당이 정당 지지율에서 새누리당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것은 4월 3주차(민주당 31.5% > 새누리당 28.1%)와 5월 3주차(민주당 29.5% > 새누리당 28.4%)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라고 설명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새누리당의 텃밭 붕괴와 민주당의 약진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 특히 민주당은 서울, 경기·인천, 충청권, PK, 호남에서 1위로 나섰다. 새누리당의 텃밭으로 여겨지던 PK지역이 야당 강세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 반면 새누리당은 PK와 TK, 호남, 경기·인천, 20대와 30대, 50대, 보수층에서 주로 이탈해 4주째 하락하면서 올해 최저치를 경신했다. 특히 PK와 수도권, 충청권에서 민주당에 선두를 내주고 TK와 강원에서만 1위 자리를 유지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 총장의 영입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반 총장이 굳이 망해가는 정당에 제 발로 들어갈 리는 없을 것이라는 상식적인 추론이다. 새누리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는 비주류 4선 중진인 나경원 의원은 “반기문 총장이 유력 대선 후보군으로 늘 언론에는 나오기는 하지만 어느 당으로 나오신다고 아직 말씀 안 하셨다”며 “반기문 총장을 대선경선 후보로 영입하는 것부터가 아마 첫 번째 임무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고 말했다. 나 의원의 언급은 향후 반기문 총장 영입의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나 의원의 표현대로 실제 반 총장은 언론과 여론 사이에서 여권 후보로 여겨졌을 뿐 본인 스스로가 여야 정당에 입당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반, 이미지 관리·지지율 유지 독자 행보 시동
차기 지지율을 살펴보면 반 총장의 경쟁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반 총장은 해외에서 유엔 사무총장의 직무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정치상황은 신경 쓸 겨를도 없다. 그러나 별다른 정치 행보 없이도 여전히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앞선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은 여권 지지층의 이탈에도 문재인 전 대표에 오차범위 내로 앞섰다.
문제는 반 총장을 뒷받침할 여권 주자들이 없다는 것. 1위 반기문 21.5%, 2위 문재인 19.7%, 3위 안철수 10.0%, 4위 박원순 6.3%, 5위 이재명 5.7%, 6위 안희정 4.7% 등의 순이다. 반 총장을 제외하면 모조리 야권 차기주자다. 오세훈, 유승민, 김무성 등 여권 차기주자들은 7위, 9위, 10위에 불과하다. 그만큼 여권 차기주자에 대한 여론의 거부감이 큰 상황이다. 반 총장으로서는 여권 후보로 대권 도전에 나서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반 총장은 올해 말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마무리된다. 본인이 공언한 대로 내년초 1월 귀국 이후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설 전망이다. 반 총장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다. 최순실 게이트 정국과 이후 전개될 개헌 정국의 여파로 정치권의 풍향계를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 총장이 새누리당과 결별을 선언하면 결국 남은 것은 제3지대론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주목할 점은 9월 25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만찬회동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반 총장의 정치적 멘토인 김 전 총리와 국민의당 중심의 제3지대 확대론을 강조하고 있는 안 전 대표의 첫 만남이었기 때문. 특히 김 전 총리는 대한민국 정치권을 대표하는 내각제 개헌론자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김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반 총장의 대권 도전과 관련, “반 총장이 유엔에서 이제 할 일이 끝났기 때문에 귀국하더라도 지금 생각한 대로는 어려울 수가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가 언급한 ‘지금 생각한 대로는’라는 표현은 ‘반 총장의 귀국 → 새누리당 입당 → 대선 경선 참여와 승리 → 대선 본선 도전과 승리?’로 이어지는 반 총장의 정치입문 시나리오를 의미심장하게 압축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한 대로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은 결국 반 총장에게 다른 대안의 모색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반 총장이 새누리당을 버린다면 선택지는 크게 둘이다. 기존 여야 정당이 아닌 제3지대를 선택해서 독자세력화에 나서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른바 역단일화론으로 불리는 반기문·안철수 연대론이다.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개헌을 연결고리로 삼으면 실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김영환 국민의당 사무총장은 “지금 상태에서 새누리당의 재집권은 어렵다. 이번 대선에서는 제3당의 집권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면서 “반기문 총장이 새누리당에 갈 것이라는 생각을 전보다 덜 할 것이다. 새누리당을 선택하지 않기만 해도 대선정국에서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희민 언론인 ilyo@ilyoseoul.co.kr
웃자.
눈까리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