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번엔 당선될 수있을까요?”
“나 이번엔 당선될 수있을까요?”
  • 이인철 
  • 입력 2004-01-29 09:00
  • 승인 2004.01.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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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당선될 수 있나요?’17대 총선을 불과 3개월 남겨놓고 유명 역술인들의 집은 정치권 인사들로 문전성시다. 대선자금파문, 측근 비리 특검, 당내 신구갈등 등 정치권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고 있어 역술인을 찾아 앞날에 대한 궁금증을 듣고 있는 것. 특히 최근 각 당마다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이어지면서 ‘공천 여부’를 묻는 정치신인들도 상당수 있다는 게 역술인들의 전언이다. 유명 역술인들을 통해 이같은 세태를 취재했다. 오는 4월 15일 17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변호사 A씨. 그는 요즘 희색이 만면하다. 사실 A씨는 모 정당으로부터 공천을 약속 받고 입당했지만, 정국이 급변하고 당 내 분위기가 어수선해 내심 공천문제로 속앓이를 했었다. 그래서 최근 답답한 마음에 역술인을 찾았다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건네 받았기 때문이다.

정치신인 현역의원 문전성시

최근 총선정국이 다가오면서 A씨처럼 정치권 인사들이 역술인들을 찾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현산역학연구소 김현우(현산)소장은 “6개월 전부터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늘고 있다”며 “사주를 보러 오는 정치권 인사들 중에 현직 의원들은 물론 이번 총선에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정치신인들도 있다”고 말했다. 김광일 철학원 김광일 원장도 “대개 총선 3개월여 전부터 정치인들이 많이 찾아온다”며 “현역의원, 낙선한 뒤 재기를 노리는 정치인, 새롭게 입문하는 정치신인 등 공천과 당락을 묻기 위해 오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역술인들에 따르면 정치인들이 자주 묻는 내용은 신인들의 경우 ‘공천을 받을 수 있겠느냐’, ‘어느 당으로 가는 것이 좋겠느냐’,‘정치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느냐’등이다. 이에 반해 현역의원들은 ‘당선될 수 있느냐’, ‘정치인으로서 롱런(오랫동안)할 수 있느냐’, ‘누가 앞으로 당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것으로 보이느냐’라는 물음들이다.

역술인을 접촉하는 스타일도 신인과 현역의원 간에 차이가 있다. 김소장은 “신인들은 주로 40대가 많고 본인이 직접 찾아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만, 현역의원들의 경우 비서관이나 부인을 통해 묻기도 한다”며 “정치신인들은 주로 변호사, 구의원, 시의원 등이 많고 의원들은 60대 이상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역 의원들은 주로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며 보좌관을 통해 ‘이 분 사주 어떻습니까’라는 식으로 신분을 감추며 접근하는데 ‘명예욕이 큰데’라는 말을 건네면 그 때서야 ‘현역의원인데 잘 되겠느냐’고 묻는다”고 전했다.

사주아카데미 김준구 원장도 “정치신인들은 직접 찾아오는데 각 당에서 영입대상으로 꼽히는 유명인사들이다”라며 “이들은 ‘어느 당으로 가는 것이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또 “현역의원들의 경우, 직접 오는 사례는 거의 없고 주로 측근을 통해서 물어 온다”며 “비서관이나 우리 쪽과 단골인 고급음식점 사장 등을 통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김광일 원장은 “부인이 찾아와 묻는 일이 많다”며 “종종 보좌관이 찾아와 묻기도 하는 데 이는 의원이 시켜서라기보다 자신들이 궁금하거나 모시고 있는 의원에게 미리 귀띔해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기는 비법’주문도 종종 있어

일부 정치신인들의 경우 단지 자신의 배경만 믿고 출마하겠다고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김광일 원장은 “단지 명문 S대 나와서 지연 학연으로 명함만 가지고 출마를 결심하는 이들도 있다”며 “의원 배지 달고 돈 벌려고 하는 사람, 아무런 배경도 없이 출마나 한 번 해보겠다고 객기로 찾아오는 이들도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사주아카데미 김준구 원장도 “몇몇 신인들은 출마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일부는 출마해도 괜찮겠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역술인을 찾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기존 정치인도 역술인에게 좋은 얘기를 듣지 못할 땐 불쾌감을 드러낸다.

김현우 소장은 “A 의원의 경우 보좌관이 찾아와 묻기에 ‘이 사람은 물러나야 할 것 같다’고 말하자, ‘우리 영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문해와 ‘그러면 떨어지겠는데’라는 말로 농담을 했던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유명 역술인 K 씨도 “예전에 모 당 중진 B의원의 부인이 찾아와 과거 대선 때 경선을 통해 모 당 대통령 후보로 뽑힌 사람을 두고 ‘상대당 후보에게 질 것 같다’며 ‘후보를 바꿀 수는 없겠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며 “‘마땅한 사람이 있냐’고 묻자 그 부인은 ‘자기 남편은 어떠냐’고 답했다”고 전했다.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비법을 가르쳐 달라는 주문도 종종 있다. 김광일 원장은 “민정당 시절 TK 지역에 출마했던 C 의원은 다 이길 것 같았는데 여론조사에서 지고 있어 비서와 부인이 올라와 ‘C 의원을 좋게 하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요청을 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사주아카데미 김 원장은 “정치인들이 자기를 좋게 하는 방법으로 자신과 어울리는 ‘색’에 대해 자주 묻는다”며 “총선 벽보 사진을 찍을 때 좋은 색, 자신에게 어울리는 넥타이 색, 홍보용 전단지에 넣을 이름의 색 등 ‘어떤 색을 써야 되는지’에 대한 문의가 많다”고 설명했다. 부적과 굿 등도 자주 이용되고 때로는 풍수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조상의 묘를 명당자리로 이장하기도 한다. 정도령 사무실 관계자는 “사주가 좋지 않게 나올 경우 일반적으로 ‘운맞이’굿을 한다”며 “일종의 자기상승세를 고조시키는 굿이라고 설명했다.역술인 D씨는 “거물급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알려진 역삼동의 유명 무속인은 한 번 사주를 봐주는데 500만원 이상을 받는다”며 “그곳에서 굿을 하는 정치인도 많은데 기본이 2,000만원이고 굿 종류에 따라 그 액수는 커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들은 황당한 비방법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현산역학연구소 김 소장은 “선거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주문도 있다”며 “일부는 심지어 상대 후보에 대해 비방법을 써 이기려고까지 한다. 그것은 학문적으로 죄를 짓는 일이라서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광일 원장은 “상대후보를 나쁘게 하는 비방법은 허황된 얘기로 결국은 자기가 당하고 만다”고 말했다. 김준구 원장도 “정치인들이 아무리 이기고 싶어도 비합리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지 않는다”며 “소용이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김 소장은 “17대 총선은 다른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보여 정치인과 역술인의 만남이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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