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박근혜 정권도 집권 4년차 징크스를 피해 가지 못할 전망이다. 1987년 5년 단임제 대통령제가 도입된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박 대통령까지 임기말 측근 게이트와 비선 실세 비리로 레임덕을 피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집권 4년차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여당은 참패했고 대통령 탈당으로 이어졌다. 또한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 초반 누렸던 높은 지지율이 폭락하고 레임덕 방지를 위해 검찰 발 사정 정국과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박 대통령 역시 ‘임기말 레임덕은 없다’, ‘측근 비리는 없다’고 단언했지만 최측근 비선 실세인 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전직 대통령의 전철을 밟게 됐다. 박 정권과 역대 대통령 집권 4년차를 비교분석했다.

- 측근·비선 실세 비리 MB 빼고 2盧·2金 ‘탈당’
- 레임덕 차단 ‘사정 정국’, ‘개헌’ 소진…다음 카드는
역대 대통령의 집권 4년차 복병은 측근 비리였다. 노태우 정부 4년차였던 1991년 서울 강남구 수서·대치지구 불법개발 사건인 ‘수서비리’ 사건이 정권을 뒤흔들었다. 검찰은 장병조 청와대 비서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국회 건설위원장이던 민자당 오용운 의원, 이태섭·김동주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5명을 구속하면서 노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을 떨어뜨렸다.
이 밖에 홍성철 전 청와대비서실장, 이승윤 부총리와 전·현직 장관급인 이연택·권영각·김용환 씨 등이 소환조사를 받았다. 차관급에서도 이상배·김대영·윤백영 씨 등이 검찰에 불려갔다. 택지개발 허가를 누가했느냐를 놓고 고건 전 서울시장과 박세직 당시 시장도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처발 받은 인사는 국회의원 5명과 장병조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뿐이었다. 이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은 91년 2월 말 대국민 사과담화문을 발표, 92년도에는 결국 민주자유당을 탈당했고 임기 후에는 통치자금 조성혐의로 감옥에 가야 했다.
측근비리→ 사과문 발표→ 탈당, 단임제 한계
1996년 3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영원한 정치적 맞수였던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장학로 청와대 제1부속실실장의 거액 축재 비리를 폭로했다. 장 실장은 20년 가까이 김 대통령의 집안 잡무를 맡아온 ‘상도동 집사’로 YS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제1부속실장으로 들어가 일정과 친인척 관리를 해왔다. ‘청렴한 정부’를 강조해온 YS는 진노했고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고 성역 없는 조사를 주문했다.
검찰은 관련 의혹이 제기된 지 10일 만에 장 실장이 30억 원 가까운 돈을 기업인, 정당관계자 등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검찰은 이중 효산그룹 등 17개 기업체로부터 받은 6억2000만 원에 대해서만 기소하고 나머지는 대가성 없는 ‘떡값’으로 보았다.
하지만 검찰의 이런 수사발표는 이회창 선대위의장뿐만 아니라 박찬종 선대위원장 등이 반발하면서 김 대통령의 권위가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차남인 김현철씨가 연루된 ‘한보게이트’까지 터지자 YS는 1년간 식물대통령으로 남았고 끝내 신한국당을 탈당해야만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4년차를 맞던 2001년은 ‘게이트’ 정국의 연속이었다. ‘이용호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에 재차 ‘진승현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까지 되살아나 DJ를 압박했다. DJ정권에 치명타를 입힌 것은 이용호 게이트다. 이 씨의 주가조작 및 횡령 혐의로 수사를 한 검찰은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 씨가 로비스트 역할을 한 것이 드러나면서 대형 게이트로 발전했다.
결국 검찰은 승환 씨를 구속했고 신 총장은 옷을 벗어야만했다. 검찰수사 뒤에 다시 구성된 특검에서는 이 씨 주가조작과 관련된 전남 진도 앞바다에 매장된 ‘보물선’의 발굴 사업에 청와대·국정원·해군 등의 비호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 씨와 아태재단과의 돈거래 의혹이 일면서 DJ 장남 홍업 씨가 구속됐다.
‘윤태식 게이트’로는 주식로비를 받은 청와대 경호실 직원과 윤씨가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 박준영 청와대 공보수석이 옷을 벗었다. ‘진승현 게이트’는 검찰이 재수사를 통해 김은성 전 국정원2차장과 김 전 차장으로부터 5000만 원을 받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구속기소했다.
‘정현준 게이트’는 단순한 신용금고 불법대출 사기극에 국정원·국세청·금감원 등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DJ는 대통령으로서 권위가 추락했다. DJ 역시 대국민사과를 했지만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야 했다.
‘386운동권’ 세력을 중심으로 ‘도덕성’과 ‘개혁’을 국정과제로 삼은 노무현 참여정부는 집권초기부터 측근비리에 시달렸다. 취임하자마자 염동연 전 노무현 대선후보 정무특보가 나라종금에서 부정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더니 안희정 현 충남지사는 불법대선자금 수사에 발목이 잡혀 2003년 구속됐다.
또한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SK에서 1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역시 불법대선 자금 수사를 받았지만 구속은 면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역시 집권 4년차에 터진 사행성 게임인 ‘바다이야기’ 사건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웠다. ‘바다이야기’ 배후에 노무현 대통령 조카를 비롯해 노사모의 전회장, 청와대 행정관, 친여 386인사 등이 있고 관련 업체의 인·허가나 도박판 이권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권력형 게이트’화 되지는 못한 채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유야무야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역시 열린우리당 내에서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하자 결국 탈당을 선택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집권 4년차에는 ‘영포(경북 영일-포항) 게이트’와 ‘저축은행 비리 사태’를 목도하면서 “저 자신도, 국민도 분노에 앞서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무색하게 측근인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의 비리가 불거졌고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역시 구속기소되면서 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청·내각 쇄신’에 ‘거국중립내각’ 수용하나
또한 그해 9월에는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 김재홍 씨가 저축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아 구속되고 이 대통령의 손윗동서 황태섭 씨가 수사를 받은 데 이어 신재민 전 문체부 차관도 이국철 SLS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탈당을 하지 않았다.
결국 역대 대통령 측근 비리는 지지율 폭락을 가져왔고 레임덕을 초래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모두 검찰 발 사정카드를 들고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패청산’, 이 전 대통령은 ‘토착·교육·권력형’ 3대 비리와의 전쟁이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말 ‘원포인트 개헌’을 외쳤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개헌 카드를 내놓은 것 역시 노 전 대통령과 같은 정국돌파용이었지만 마찬가지로 역풍을 맞고 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임기 3년차인 2015년 3월에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역대 정권에 비해 1년 빠르게 사정카드를 뽑은 셈이다.
바야흐로 집권4년차인 박 대통령이 측근 비리를 돌파할 카드는 사실상 모두 쓴 것이나 진배없다. 하지만 역대 집권 4년차 대통령과 다른 것은 ‘거국중립내각’ 요구와 ‘하야 요구’를 동시에 받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여야와 국민들의 성난 민심에 ‘숙고’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