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비선 실세로 불리는 최순실 씨를 둘러싼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자고 나면 새로운 의혹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안보·경제·사회 등 전 분야에 걸친 국가적 난제들을 ‘최순실 블랙홀’이 모조리 빨아들이는 양상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1년 이상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모든 국정 과제를 삼켜버리게 되면 그 피해는 또다시 국민의 몫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사유화해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정윤회 특검과 우병우·안종범 수석 그리고 ‘문고리 3인방(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부속비서관)’ 축출을 첫 단추로 박 대통령이 국정 쇄신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朴, 대대적인 쇄신 통해 국정 위기 극복해 나가야”
- “SNS 통한 근거 없는 루머 양산은 또 다른 국정농단”
최순실 씨의 충격적인 ‘국정농단’ 정황이 잇따라 폭로되었다. 과연 그의 손발 노릇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참모진은 누구일까? 국정 개입을 제대로 차단하지 못한 우병우·안종범 수석을 비롯해 청와대의 중요문서를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 그 장본인들이다.
‘인연’ 악용해 권력의 사유화로…
우병우 민정수석은 최씨와 주변의 국정 농단을 막기는커녕 검찰을 방패막이 삼아 국기 문란을 방조해왔다.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은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의 두 축인 미르·케이 스포츠 재단의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대통령 권력을 등에 업고 최 씨 일파의 불법행위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또한 대통령에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들 3인을 먼저 거쳐야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인 ‘문고리 3인방’은 이 같은 권력을 악용했고 국정을 농단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의 악연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대통령이 1998년 정치에 입문할 당시 그의 곁을 지켰던 인사는 이춘상·정호성·이재만·안봉근 등 4인방이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춘상 보좌관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며 현재는 이들 세 명만 남았다.
그런데 이들을 뽑은 사람이 바로 최순실 씨의 전 남편이자 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 씨다. 이들 3인방은 정 씨를 ‘사수’라 부를 정도로 따랐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18년 동안 박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했다. 최 씨와 3인방 관계도 막역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욱이 최 씨는 1987년 잡지에 쓴 기고문에서 “꿈 많은 대학 시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그분을 처음 만났고 꽤 많은 인연이 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두 사람 관계는 1998년 박 대통령이 재보선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에도 계속됐다. 특히 박 대통령이 2006년 지원 유세 도중 면도칼 테러를 당했을 때에도 최 씨가 병간호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들은 악용했고 권력을 사유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정윤회 국정 개입 사건’ 부패 세력 척결할 기회였지만…
이들의 국정 농단은 비단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2014년에도 이들은 비선 실세로 지목됐고 그해 11월 28일 세계일보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된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을 공개하면서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폭로했다.
또한 국회 운영위 회의에서는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매일 내부 서류를 갖고 외출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 가운데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이 밤에 번갈아 서류를 들고서 어디론가 나간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시 박 대통령 집권에 기여한 원로 7인회 멤버였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응천 당시 민정수석 비서관, 박 대통령 친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등은 국정 농단의 주범으로 지목된 ‘문고리 3인방’과 정윤회 씨를 축출해 국기를 바로 세우려 했지만 실패했다. 2014년 당시 ‘정윤회 국정 개입 사건’은 박 대통령 측근 인사의 폐해를 극복하고 부패 고리를 잘라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그러다 결국 미르·케이 스포츠 재단의 비리를 캐는 과정에서 최순실 씨를 비롯해 이들 3인방과 우병우·안종범 수석의 국정농단 전말이 낱낱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표면에 나타났던 정윤회 씨는 허수였던 셈이고 진짜는 최순실 씨였다.
이에 한 정치권 인사는 “바른말 하는 참모가 있었다면 이런 황당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며 “대통령에게 짐이 된다면 진작에 스스로 물러났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문고리 3인방 수족을 출범 초기 진작 잘랐다면 ‘십상시(十常侍)’며 ‘문고리 내시’며 ‘팔선녀’라는 기상천외한 조어로 정권이 희롱당하는 운명과 맞닥뜨리진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최순실 씨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사과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들의 국정농단으로 빚어진 안보·경제·사회 등 전 분야에 걸친 국가적 위기를 박 대통령 스스로 결자해지하는 일이다. 그 첫 단추가 대대적인 인사 쇄신과 최순실 특검을 통한 미르·케이 스포츠 재단 관련 비리 척결이다.
그러나 정작 이번 논란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 씨는 연설문 수정을 제외한 나머지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외교안보 문서까지 봤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다”며 “뭐가 진실인지 잘 모르겠다”고 발뺌했다. 또한 강남 사무실에서 정호성 청와대 비서관이 들고 온 청와대 보고서를 매일 열람했다는 증언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된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성한 전 미르 재단 사무총장을 지칭)”이라며 “저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협박도 하고 5억을 달라고 했다”고 되레 쏘아댔다.
최 씨는 태블릿 PC를 통해 대통령 보고서를 미리 보았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최 씨는 “나는 태블릿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것을 쓸줄도 모른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이 같은 최 씨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태블릿 PC 이름이 최 씨의 딸 정유라 씨(20)의 개명 전 이름(유연)을 딴 ‘연이’인 데다, 태블릿 PC에서 최 씨의 셀카 사진도 발견됐기 때문이다.
검찰도 문제의 태블릿 PC 소유주를 최 씨로 보고 있다. 태블릿 PC를 입수해 분석 중인 검찰은 27일 “(최 씨가 실제 사용자라는)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청와대 참모진들의 안하무인격 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25일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들을 불러모아 대책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 이 실장은 여론을 수습하기 위해 자신과 수석비서관 10명 전원의 동반 자진사퇴를 추진했다. 김재원 정무수석도 동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주요 교체 대상인 우병우 수석과 안종범 수석은 “지금 다 나가버리면 수습을 할 사람이 없어진다”고 참모진 총사퇴 및 비서진 교체에 반대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정치권의 한 인사는 “비리를 일일이 나열하기도 너무 많다”며 “온갖 의혹에다 비선 단속에도 실패한 우 수석 아닌가. 참 뻔뻔한 모습”이라고 비난했다.
이미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기 위한 특검 도입에 여야가 뜻을 모은 상태다. 또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최 씨와 결탁해 심부름꾼 노릇을 한 ‘문고리 3인방’, 권력을 악용해 국정을 농단한 우병우·안종범 에 대한 비난 여론은 여전히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에 한 정치권 인사는 “박 대통령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정책 과오를 바로잡고 대통령에게 충언과 직언, 고언을 할 인사들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하는 것이 급선무다. 박 정부가 기사회생할 마지막 기회”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팔선녀, 굿판 등 근거 없는 음해 공세 도 넘어…
한편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26일 "비밀모임인 팔선녀를 이용해 막후에서 국정 개입은 물론 재계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엽기적인 보도마저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 9단’이라 불리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역시 “박 대통령이 최태민, 최순실의 사교에 씌어서 이런 일을 했다”고 발언했다.
이에 해당 인사들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최순실 씨를 전혀 만난 적도 없고, TV에서나 봤다. 팔선녀 루머는 소설도 아닌, 악의적인 정치공작”이라며 비난했다.
또한 해당 루머에 직접 거론된 A 그룹 관계자는 “우리 그룹이 박근혜 정부 들어 당한 어려움을 생각하면 도저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음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C 그룹 측도 말이 안 되는 정치 공작이라며 반발했다. 해당 그룹 관계자는 “L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 씨의 팔선녀 모임 멤버였다면 L 회장이 현 정부 들어 재계 총수 중 유일하게 구속됐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추 대표와 박 비대위원장의 발언 이후 카톡 등 SNS에선 근거 없는 루머를 이용한 박근혜 정권 음해가 도를 넘고 있는 모양새다. 심지어 이 루머에는 박 대통령이 최 목사 사망 20주기를 기념하는 굿판을 벌였다는 내용을 한 언론사가 보도할 것이란 말도 나왔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선 북한 공작원의 개입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 국가단체와 일부 좌파세력들이 박근혜 정권 무력화, 정쟁 격화 등을 노리고 악의적으로 루머를 유포하고 있다는 말마저 나온다.
이에 정치권의 한 인사는 “추미애 대표나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고, 무책임한 음해 공세를 부채질하고 있다”며 “아무리 정치권이 공작정치에 오염됐다고 해도, 집권을 바라보는 당의 대표들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직언했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